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원기 Mar 14. 2022

내가 지켜줄게 13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열세 번째 이야기 : 보호소 매뉴얼의 진화 1 -


보호소의 첫 시작은 어린이 도서관으로 쓰였던 한 칸짜리 컨테이너였다. 곧 철거될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잠시 운영했던 매뉴얼은 큰 의미가 없다. 


제대로 된 매뉴얼은 이문냥이 보호소를 임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문냥이가 추진된 지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지만, 처음 1년은 각종 매뉴얼을 만들고 수정해 가는 기간이었다. 


이문냥이 사람들 중 지난 시간들이 어떻게 자나 갔는지 제대로 느끼고 있는 사람은 없다. 속도감이 높아질수록 시간성에 대한 느낌 또한 줄어들게 되는 물리학적 이치처럼 그저 일, 일, 일만이 바쁘게 넘쳐나던 시기였다.


초기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구조된 고양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일손이 많이 필요했다. 사람은 많았지만 일손이 남는 날과 부족한 날의 격차가 너무 컸던 것이 문제였다. 봉사자가 없는 날에는 오롯이 셋이서 모든 일을 해야 했고 커피 한 잔의 여유와 점심은 사치였다.


네트망으로 만든 케이지 내부에는 두꺼운 종이상자를 크기에 맞게 잘라 넣어주고, 이 또한 수시로 교체해 주어야 했다. 두꺼운 상자를 구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마치 옷을 재단하듯 크기를 맞춰 자르는 일도 여간 아니었다. 


종이상자를 교체할 때면 흩어져 날리는 온갖 먼지와 털들이 공간을 가득 매웠고 알러지가 심한 사람들은 약기운으로 일하기도 했다. 


케이지를 덮고 있는 천 또한 일거리를 보탰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얻어 온 이불과 천들을 사용했지만 날이 더워지면서 얇은 광목천으로 모두 교체했다. 


사용한 이불을 버리는 것도 일이었고, 두루마리 형태로 감겨 있는 광목천을 케이지 크기에 맞게 일일이 잘라 덮어 씌우는 것도 큰 일이었다.


고양이 화장실 청소는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이었다. 길고양이들이었기 때문에 사료만 먹고사는 집고양이들과 달리 배변 냄새가 강했다. 


대소변 덩어리를 치우고, 화장실 통 주변에 묻어 있는 이물질을 알코올을 이용하여 닦은 후 모래를 보충해 주면 되었는데, 1 묘 1 화장실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문냥이의 운영 매뉴얼은 그렇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진화해 갔다. 우후죽순 열정만으로 시작한 구조와 보호 업무에 시스템이라는 것이 서서히 자리하기 시작했다. 


기부금은 1원도 사적 용도로 사용될 수 없도록 했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활용하여 입양에 대한 문의와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했으며, 자원봉사 신청도 가능하게 했다.


냥이들 건강 상태는 수시로 체크하여 이상 징후가 확인되면 즉시 협력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보호소 고양이들과 입양 간 아이들 소식도 온라인을 통해 서로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입양 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입양을 원한다면 대부분 쉽게 받아들였는데, 이 부분은 이후 파양과 실종 등 몇 번의 아픈 경험을 거치면서 입양 자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했다.    

----------------------------------------------------

 

에스펜은 이 일을 주도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그 누구보다 일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을 크게 가지고 있었다. 기부금 관리와 물품 구매, 대외 홍보와 지원금 문의, 보호소 관리, 협력병원 관리 및 아이들 치료에 이르기까지 에스펜의 신경이 쓰이지 않는 곳은 없었다.


모모는 힘이 강했기 때문에 주로 몸을 움직이는 일에 집중했다. 아이들 구조부터 관리와 보호, 청소, 케이지 수리 등이 주 역할이었다. 고양이들에 대한 연민 또한 누구보다 강해서 누군가 이문냥이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할 때면 앞장서서 싸워주는 사람도 모모였다. 


가장 젊은 세 번째 공동운영자는 구조와 보호, 청소, 케이지 수리, 병원 이송 등에 부가하여 온라인 홍보, 입양, 기부금 모집 등에 집중 했다.  


외대, 과기대, 한예종의 캣 동아리 학생들은 시간이 될 때마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해주었다. 구조부터 청소와 케이지 관리, 병원 이송 등 모든 일을 마치 자기 일 하듯 열심히 해주었다. 


외대 동아리 회장은 온라인 입양 홍보를 맡아 주었고, 과기대 학생들은 힘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밤을 새 가며 도와주었다.


이런 인연으로 인해 구청에서는 에스펜을 통해 이들에게 표창장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고, 1년이 지난 어느 봄날 두 학생이 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마치 이문냥이 모두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이전에도 신문, 방송 등에서 이문냥이 사례를 소개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공공기관이 나서서 인정해 준 것은 처음이었다. 


이를 계기로 이문냥이 사람들은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구조한 123 마리 고양이들 모두가 입양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처음의 약속과 더불어, 모두가 공유할 수 있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재개발 지역 길고양이 구조와 보호 매뉴얼을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굳은 다짐이었다.  


- (예고)열 네 번째 이야기 : 보호소 매뉴얼의 진화 2 -














작가의 이전글 내가 지켜줄게 1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