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올해는 작년보다 더
더울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매년 반복되고 있는 기상 전망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올해도 역시나
더 뜨거워진다고 한다.
이런 속도라면
21세기가 지나기 전 지구 상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몇이나 남게 될 지
걱정이 앞선다.
6월이 되기도 전인데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
이문냥이의 걱정 또한
많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 동안 냉방비로만
200만 원 이상을 지출했던 것을 보면
올해는 또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눈앞이 어두워진다.
사람이라면
얼음물 한 사발과 부채질 몇 번으로
어떻게 해 볼 수도 있겠지만,
털로 덮인 고양이들은
그럴 수도 없으니
결국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으로
하루 종일 식혀주는 수밖에 없다.
남아 있는 아이들 숫자가
작년 이맘때보다 많이 줄어든 까닭에
다행히도 올여름이 지나면
이문냥이 프로젝트 역시
잘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는
한 줄기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 그나마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튼튼한 보약이다.
'다 잘 될 거야.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쁜 일 한 적이 없으니...
다 잘 될 거야.
조금만 더
아이들만 생각하고
힘을 내서 걸어가 보자...'
에스펜과 모모는
지금까지 믿지 않았던
하늘이라는 존재가
그래도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마치 겨울이 지나 조용히 피어나는 봄꽃들처럼
그렇게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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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아이들 -
우주
우주는 항우만큼 겁이 많았다.
숨숨집을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던 우주는
하지만 요즘 많이 달라지고 있다.
보호소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고양이들의 안부를 묻곤 하는
즐거운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사실 우주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보호소 사람들의 노력이 큰 몫을 했다.
아침마다 이름도 불러주고
반갑게 얼굴 인사 하기를
일상의 시계추처럼 반복했다.
집에서 나오지 않는 우주였지만
그래도 케이지 문을 잠그는 경우는 없었다.
우주가 원하면 언제든
나올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주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된 듯
보호소 모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멋진 고양이가 되었다.
태평이
태평이는 동두천에서
본인 발로 보호소 차량에 탑승하여
이곳에 합류했던
인간 같은 고양이다.
보호소에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보호소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관리소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기특함이
유명한 아이다.
하지만 요즘은
몸 여기저기 아픈 일이 많아졌는데,
입안 염증도 가시지 않고 있고
면역력도 부쩍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
병원 갈 일이 많아진 태평이 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
마치 인간인 듯 즐기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로키
로키는 생김새가
도토리와 매우 비슷하다.
이들 둘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마치 한 배에서 나온 아이들 같다.
로키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탓에
다른 고양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만의 조용한 사색과 명상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구석에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고독자는 아니다.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즐거운 고독을 즐기는
사색가라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
건강한 아이다.
초롱이
초롱이는
죽음의 강을 여러 번 넘어온 아이다.
재개발 3구역과 큰길을 두고 재개발 중인
1구역에 살던 아이인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미로부터 떨어진 후
비 내리는 어느 날
위험한 찻길을 건너와
상가 나무 계단 밑에 들어가 있던
어린 새끼 고양이였다.
워낙 체구가 작은 아이라
아직까지도 얼핏 보면
어린 고양이 같아 보인다.
아침마다 에스펜이
보호소 건물에 들어설 때면
어찌 알았는지 알아채고
반갑게 문 앞에 나와
목청을 높이는 귀여운 아이다.
보호소 아이들 중
사람과의 친화성도 좋고
머리 또한 뛰어나
상위 랭킹 인기그룹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태백이
태백이는 하늘빛 눈을 가진
순백의 천사다.
성격이 워낙 착해서
다른 고양이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없다.
재개발 지역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그런 성격 탓에
다른 아이들이 먼저 먹으면
한 참을 기다렸다가 뒤늦게 나타나
먹고 가곤 했던 아이다.
사람들에 대해서도
호감이 많은 아이인데,
아침마다 코인사는 기본이고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심 있게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친구다.
보호소에 들어올 때부터
뒷다리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치료 시기가 그만 지나서
이대로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야 하게 되었다.
늘 온화하고 푸근한 표정의 태백이는
이문냥이 보호소의 맘씨 좋은 아저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