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문화원 소장사료로 본 평택이야기
경주이씨 퇴제공 묘갈 건립 문서
부모의 후광으로 자손이 빛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자손이 명성을 얻어 부모에게 영광을 비추는 경우도 있다. 400여 년 전 진위현 여방면 방혜동(현 가재동)에 내려와 세거하기 시작한 경주이씨 가문이 후자의 예라 할 수 있다. 조선중기 문인인 오제공 이탕은 사직서령(종5품)을 거쳐 방혜동으로 낙향하였으며 이정함, 이정암, 이정형 등 아들들의 영광의 힘입어 의정부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장남 퇴제공 이정함은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고, 차남 이정남은 임진왜란 당시의 공으로 사후에 선무공신2등으로 월산부원군으로 추봉되었으며, 좌의정으로 추증되었다. 그리고 삼남인 지퇴당 이정형은 대사헌 등을 역임하는 등 이탕의 아들은 조선왕조에 큰공을 세웠다.
방혜동에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주이씨 가문의 자취가 남아있다. 이곳에 오제공 이탕의 사당이 남아 있고, 장남인 퇴제공 이정함의 묘와 묘갈이 있으며, 마을에 거주하는 경주이씨는 대부분 퇴계공파이다. 그리고 평택문화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주이씨 퇴제공 묘갈 건립 문서’를 통해서도 방혜동 경주이씨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이 ‘경주이씨 퇴제공 묘갈 건립 문서’는 1968년 퇴제공 이정함의 묘갈을 고쳐 세우면서 수입과 지출에 대한 문서이다. 문서 앞면은 묘갈을 세우는 취지문이며, 뒷면에는 결산내용이 적혀있다. 결산내용에는 묘갈을 개수하게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무신2년 평택군 송탄읍 가재리(방혜동) 경주이씨퇴제공파종회소’와 종회직인이 찍혀 있어 이 문서가 만든 시기와 발행인을 알 수 있다. 결산서를 살펴보면 수입은 성금수납액과 종회보조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출은 석물비, 각자비, 접대비, 통신비, 사례금 등으로 쓰여 총 121,862원을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평택에서의 한 가문이 어떻게 정착하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지역사를 연구하는데 의미가 있는 사료이다.
*이 글은 2015년도 지역신문에 연재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