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성년 예식은 고대 사회에서부터 있어 온 풍습이다. 성인식 문화는 종교 의례 속에 흡수된 곳이 있고, 혼례식에 흡수된 예도 있다. 성인식은 단절이며 동시에 결합을 의미 한다. 유년 시절을 마감하고 성년에 편입되는 과정으로 일생에 한 번 경험한다. 새로운 세대의 리듬 극화되고 연출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성인식을 통해 그 속에 담겨진 교육적의미를 알아보겠다.
1. ‘통곡의 벽’에서 성인식을 갖는 유대인
유대인 소년들은 13세에 ‘성인식’을 치른다. 성인식은 히브리어로 ‘바르 미츠바’인데 이는 ‘계약의 아들“을 의미 한다.
부모들은 훨씬 전부터 성인식을 준비하는데 기도생활에 익숙해지도록 돕고, 성인식 날 사람들 앞에서 《토라》(모세가 기록한 율법 책)를 읽을 수 있게 훈련시킨다.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격읽기란 곧 성경 암송을 의미한다. 또 랍비의 도움을 받아 준비한 설교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거쳐야만 ‘어른’이 된다.
이 과정을 통해 한 아이는 성인으로 인정받으며 직접적으로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맺게 된다. 성인식이전에는 ‘아이’로서 부모의 책임하에 있었지만, 성인식이 지나면 스스로 책임과 의무를 지니게 된다. 즉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보다 성숙하며 신중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물론 외국에 사는 유대인들도 자녀를 성인식을 위해 가족과 친지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적지 ‘통곡의 벽’으로 간다. ‘통곡의 벽’ 앞에서 갖는 성인식이 그들에게는 무척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성인식을 치른 후 부모들은 자녀에게 선물을 주는데 대개 여행을 보낸다.
이 과정을 통해서 신앙의 상징인 ‘통곡의 벽’은 공동체의 일원인 것임을 일깨우고 혼자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통해 인생(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을 배운다.
2. 할례의 아픔을 감내하는 마사이족
아프리카의 성인식은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통과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 의식 중에는 할례를 치르는데, 남자는 물론이며 여자에게도 행해진다. 일병 ‘여성 할례’라고도하는 성기 정제 수술은 아프리카 전역에 퍼진 성인식 풍습이다.
마사이족 남자아이들은 12살이나 16살 될 때까지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할례를 한다. 함께 할례 받은 젊은이들은 일생 동안 지속되는 집단을 구성한다.
남자아이들은 온몸에 흰색 진흙을 바르고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은 채 두 달 동안 여러 지방을 옮겨 다닌다. 그리고 의례가 치러지기 전날 찬물에 온몸을 깨끗이 씻고 할례를 한다.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황소 가죽에 담아 소년의 머리 위에 붓는다. 한두 주일 후 할례 받은 성기가 나으면 머리를 삭발하는데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후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 받으며 ‘모란(전사)’ 이 된다. 통과의례의 하나로서 신체의 여섯 군데를 송곳 같은 불 칼로 찢어 흠 자국을 남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며, 소년들을 용맹하게 키우는 게 교육의 제일 목적이다. 다른 부족과의 분쟁에서의 이기려면 용맹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할례와 같은 고통을 이겨내어 용맹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황소의 뿔을 쓰고 춤을 추는 수단의 성년식
아프리카 대륙 동북부에 위치한 수단에서는 춤을 통해 한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독특한 성인식을 치른다. 캄발라라는 춤을 통해 의식을 치르는데 남성을 상징하는 황소의 뿔을 쓰고 춤을 추는 의식을 치르는 것과 칼을 들고 추는 춤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성년식이 한 부족인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한 문화에 들어가는 의식으로 간주된다. 또한 사냥도 시작할 수 있는 의식이다.
이 과정은 소년들이 그들의 가족을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한 남성으로서 준비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또한 부족을 지키는 전사로 새롭게 사회에 귀속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4. ‘번지점프’로 성인식을 치르는 바누아투
남태평양의 섬나라인 마누아투의 펜타코스트 섬의 원주민들은 성인이 되는 자격요건으로 체력과 담력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이 섬의 주민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발목에 포도 덩굴이나 나무줄기, 칡뿌리 등을 감고 30미터 높이의 대나무 탑에서 뛰어 내린다. 그들은 지상 1미터 정도의 높이가지 뛰어 내리는데 바닥에는 아무것도 깔지 않는다. 전해지는 얘기에 따르면, 옛날에는 어떤 공주가 자신을 쫒아오는 포악한 남편을 피하기 위하여 덩굴로 몸을 묶은 다음에 나무에서 뛰어 내렸다고 한다. 이후 번지점프의 모태가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강인한 도전력과 의지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족의 여자들은 남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후에 남자들의 통과의례로 변하였다.
5. 승려생활을 체험하는 미얀마의 ‘신쀼’의식
10~15세 정도의 미얀마 청소년들은 거의 대부분 부모의 권유로 ‘신쀼’라고 하는 득도식 내지는 일종의 성인식을 치르고 불문에 들어가 승려로서 탁발구걸을 시작한다. 신쀼는 ‘승려가 된다.’라는 의미로, 며칠 또는 몇 주간 사원에서 수련을 쌓으며 승려생활을 체험하는 것이다.
소녀의 경우는 신쀼식 대신에 귀에 귀걸이 구멍을 뚫음으로써 성인식을 대체하는 이 의식을 ‘나뜨윈’이라고 한다.
신쀼 의식이 치러지는 전날 밤 친지와 지인들을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하곤 한다. 의식을 참가하는 청소년은 왕자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실크 등의 값진 옷으로 성장하고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하며 머리에는 왕관을 쓴다. 당사자는 흰 말이나 기타 탈것을 타고 온 마을을 돌면서 친지와 이웃을 방문하고 인사한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승려나 손님에게 잔치를 성대하게 베푼다. 이 의식 마지막 단계에서는 삭발 의식이 있고, 가사를 걸침으로써 승원에서 수련승으로서 계율을 지키면서 생활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독립된 젊은이로 인정되어 결혼자격이 부여된다. 또한 붓다가 한 것처럼 모든 세속적 욕망과 쾌락적 삶을 포기하고 열반의 경지를 구득하고자 한다. 이로써 항상 붓다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적으로 항상 불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하는 것이 미얀마의 성인식이다.
6. 유럽, 미국과 호주의 성년의 날
유럽에는 특별히 성인의 날을 제정해 행사를 갖지 않는다. 독일과 스위스 경우에는 지능과 정신 연령을 측정하여 통과된 사람은 18세부터 성년 신고를 할 수 있다. 성년 신고를 마친 사람은 20세 이전이라도 성인 대우를 받는다. 프랑스는 15세 이상 되는 사람들을 독립된 법률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며 결혼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성인으로 대우한다.
유럽과 달리 미국은 1940년 의회에서 매년 5월 셋째 주 일요일을 ‘시민의 날’로 정해 새로 선거권을 갖는 성년에게 축하잔치를 베풀어 왔다. 이 기념일은 1952년에 9월 17일로 변경되었다. 성년이 되는 연령은 주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18세가 되는 해의 생일로 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오래 전에 미국에서 전해진 무도회가 성인식을 대신한다. 17~19세의 소녀들은 흰 드레스를 입고 진주 목걸이를 걸고는 무도회에 참석한다. 이 무도회에는 지역 유지와 학부형도 초대하며, 소녀들은 이날 마음에 드는 청년들과 춤을 춘다. 한동안 무도회, 사교춤, 드레스 등은 성차별의 산물이라고 거부됐으나 최근 성인식으로 가고 있다.
유럽, 미국과 호주의 성년의 날은 성인이 된다는 것보다 나이와 정신연령수준에 따라 성인으로 인정해주고 선거권을 주는 행사에 불과하다. 따로 행사를 통한 것보다 가벼운 파티를 통해 성인된 것을 축하해준다. 하지만 평소 교육을 통해 성인으로써 해야 할 규범이나 책임, 의무에 대해서 배우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주지 않는다.
7. 우리나라의 전통 성인식 ‘관례’
우리나라에서는 ‘관례’, ‘계례’라는 이름의 성인식을 치렀다. 관례란 미성년에서 성년이 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는 예식이다.
남자는 1세~2-세 사이에 땋아 내렸던 머리를 올리고, 머리에 복건, 초립, 사모, 탕건 등의 갓을 씌었다.
조선시대에 관례는 남자라면 누구나 다 치르는 일상적인 의식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천민 사회에서는 천민에서는 관례가 없었다. 관례는 지배계급 안에서만 행해졌고, 이는 조선시대만이 아니라 고려시대나 삼국시대에서도 특권적인 의식으로 행해졌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동안 지역과 가문의 특성에 따라 차츰 변모되어 갔다. 조선조 숙종 이재가 편찬한 《사재요람》에 적인 관례 의식은 매우 번거롭고 복잡했다. 그대로 따르기 힘들어 갑오경장을 전후하여 개화사상이 퍼지면서부터는 그 의의를 잃어갔다. 그리고 고종 32년인 서기 1895년에 단발령이 내린 후로는 우리나라에서 관례 의식이 사라졌다.
이 과정을 통해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예의를 지켜야하며,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 사회에서 맡은 일을 스스로 할 수 있음을 알리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어엿한 성인으로서 대접받게 된다.
관례는 지배계급에서만 행해진 성인식으로 평민이나 천민들은 치를 수 없었다. 그러나 신체가 건강하고, 사리를 분별할 수 있으면 농촌에서는 2월 초하루 날에 노비일이라 하여 놀이를 했다. 이제 서서히 농사 준비를 하는 시기이므로 앞으로 바빠질 노비들에게 위로를 겸하여 노비를 위로해준다. 이때 술과 음식을 마련하고 농악을 해준다.
이날 육체적으로 커서 일을 할 수 있는 남성에게 큰 사발에 술을 주며 ‘고개를 돌리지 말고 먹어라’ 하고 술을 내린다. 이 술을 마신 이는 성인으로 인정받고 그로부터 어른과 품앗이를 하게 되었다. 소박하나마 성인식의 일종이었다.
여성의 경우에는 성인식을 치르는 시기는 가슴에 젖멍울이 설 무렵이었다. 이때 동네의 먼저 성인된 처녀들이 찾아와 성인식을 주관한다. 물론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고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전통이었다. 성인식을 치를 소녀가 있는 집에서는 다듬이치마(치마 윗부분이 넓고 다난한 치마)를 준비한다. 치마를 입히고 치마 윗부분에 달려있는 네 개의 끈이 있는데 이 끈을 네 처녀가 양쪽에서 잡아당긴다. 이때 비명을 지르면 지르지 않을 때까지 다시 조인다.
이 과정을 통해 유교적인 관념이 정절을 강요받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때 고통을 겪으면서 따끔하게 충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8. 우리나라 현대 ‘성인의 날’
정부가 주관하는 기념일로, 5월 셋째 주 월요일이다. 문화관광부가 주관하며,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짊어질 성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을 부여하는 각종 기념행사를 한다. 공휴일은 아니다. 1977년 3월 30일 대통령령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공포하여 이 날을 정부 주관 기념일로 정하였다.
예로부터 만 20세가 되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음을 마을 단위로 축하하는 의식을 치렀는데 이러한 전통을 오늘날까지 계승하여 기념하는 날이 바로 성년의 날이다. 현대에는 서양의 성년식에 밀려 자취를 감춘 상태이고 간혹 향교나 민속행사를 주관하는 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맺음말
앞의 여러 국가의 성인식을 보았다. 대부분 그 나라의 문화, 종교, 생활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수렵이나 농사가 중요한 요소인 경우에는 한사람의 일군으로서의 의미가, 전투가 중요한 요소인 경우에는 한사람의 전사로서의 의미가, 종교가 중요한 요소인 경우에는 하나의 종교인으로서 성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는 대부분 그저 옛날의 성인식에 대한 전통으로서의 기념행사로 전락하고 그 의미나 정신이 많은 부분 퇴색 되었다.
*2010년 전후에 학부 토론용 소논문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