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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Feb 07. 2024

킨츠기는 처음이지만

2주 뒤에 만납시다

내일부터 3일간 친정 고향 집 대대적 정리를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가는 데만 해도 3시간 반거리이니 오후에 출발해 도착해도 본격적인 청소는 어려울 터다. 2014년에 부모님이 그 집에서 살기 시작하셨으니 근 십 년 살림이 집약되어있는 곳. 설 연휴 앞두고 평일은 이틀뿐이라 큰 짐은 정리를 못하고 냉장고 안, 서랍장 안, 신발장 안 등등 어딘가의 내부에서 소용과 쓸모를 기다릴 것들을 처분하는 일.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별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동동거리다 보면 늦은 오후. 

킨츠기를 위해 테라핀유와 강력분, 그리고 사포를 주문했다. 그것들이 오늘 도착했다. 사포는 몇 방을 써야 할지 몰라 150방을 주문했는데 낱장 주문도 안되어 큰 다시마 10장이 상자에 들어 있어 나를 기함케 했다. 

‘이것을 언제 다 쓰나. 10년을 해도 다 못 쓰겠네.’ 

가관인 것은 ‘사포를 잘못 주문했어.. 더 고운 것을 골랐어야 했는데.. 당근 마켓에 낱장 단위로 팔까..’ 다 쓰지도 못할 것을 이고 지고 있어야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내가 생애 맨 처음으로 킨츠기 할 것은 파스타 볼 크기의 꽃잎 모양 폴란드 그릇.

킨츠기는 작업 방식에서 간이 킨츠기와 혼 킨츠기로 나뉘는데, 직접적으로 먹는 음식이 담긴 용기나 접시가 아닌 것들은 간이 킨츠기라고 해서 합성용품들로 작업(단시간)을 하고, 먹는 음식이 직접 담기는 접시나 그릇들은 생 옻 등 천연 용품들로 혼 킨츠기로 작업(장시간)을 한다.      

새로운 그릇을 들이기 위해 기존 폴란드 그릇을 당근 했는데, 보낸 것 중 하나가 배달 과정 중 두 쪽으로 쫙 갈라져 깨져 버렸다. 나는 다른 그릇을 하나 보내 주고 그 그릇은 돌려받았다. 

일전에 원데이 클래스로 간이 킨츠기를 한번 배웠고, 일본에서 킨츠기 도구도 사 오고, 그래도 어떻게 할지 몰라 수십 번 여러 가지 영상을 돌려 보다가...

Let’s do it~! 

작가마다 킨츠기 방식이 달라서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활용 50리터 큰 비닐을 식탁에 깔고 도구들을 세팅한다. 양손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 생 옻으로 깨진 한 단면에 그것을 바른 뒤 생 옻과 강력분을 1:1로 섞어 다른 단면에 바른다. 두 개를 단차가 생기지 않게 잘 붙이고 그 위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 둔다. 탈락된 부분에는 목 분과 생 옻을 섞어 점토를 만든 뒤 깨진 부분의 모양을 잘 만들어 붙인다.      

일단은 이렇게 해두자.      


이렇게 해두고도 최소 2주는 있어야 하니까. 

내가 어떤 부분을 잘못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날도 2주 뒤이다. 


고향 집을 모두 정리하고, 부모님이 내가 사는 곳 인근에 사시게 되었으니, 그것이 우리를 위해서 부모님을 위해서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모시고 간다고 말씀드리고 두 달여 동안, 부모님은 마음과 신변의 정리를 잘하셨을까. 고향의 음식들도 빠짐없이 드셔 보시고, 지인들과도, 남은 친척들과도 작별에 관한 정담을 잘 나누셨을까. 

고향 집을 아직 정리하기도 전인데, 왜 좋지 않은 기시감이 드는 것인지. 


어쨌든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설령 생긴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겠지. 금 간 접시 이제 이어 붙일 수 있는 기술도 생겼으니, 마음도 접시처럼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네 마음도, 내 마음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미래의 나에게 부탁해 보는 수밖에.          


웁쓰~그러고 보니 저 두터운 폴란드그릇을 붙이는데 저 정도의 생옻과 강력분이었으면 정령 되었으려나... 

킨츠기는 처음이니 실수도 실패도 성공도 모두 처음처럼 처음인 듯 처음같이 

해. 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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