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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Feb 16. 2024

매 번이 첫 만남

허삼관 매혈기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사람에게 가장 갈급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돈’ 일 때가 많다. 

중한 병에 걸렸는데 돈이 없다거나, 좋은 학교에 붙었는데 돈이 없다거나, 이사를 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거나....      

이  책에는 중국의 허삼관이라는 사람의 일대기가 나오는데(청년 때부터 노년 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대에 걸쳐 몇 번의 중요한 순간에 있어 허삼관이 피를 팔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꼭 울게 만드는 책이 있다.      

울음을 터뜨리는 그 순간, 그 책은 내 기준 좋은 책이 된다. 죽어있는 물성의 것이 살아 움직이는, 말 그대로의 활(活) 자가 되어 내 마음을 파고들기 때문에. 근간 읽었던 책 중에는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초반부부터 눈물을 흘렸고, ‘스토너’ 또한 그러했으며, 최은미 작가의 ‘마주’도 마찬가지였다.      


(이하 스포가 있음)

허삼관 매혈기에서 허삼관은 허옥란과 결혼하지만 허옥란의 몸에는 이미 다른 사내 하소용의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자랄수록 허삼관이 아닌 하소용을 닮아가는 일락에 대해 마을에는 소문이 돌게 된다. 

모든 일의 경위를 알게 되고, 허삼관은 큰아들 일락을 하소용에게 보내려 하지만 하소용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물어 끼니조차 잇기 힘든 나날들, 하루는 허삼관이 일락이에게는 고구마 한 개를 사주고, 이락 삼락 자신의 친아들들과 아내를 데리고 중국집에 국수를 먹으러 가버린다. 일락은 이 때문에 사고를 치고, 사고를 친 일락을 업고 돌아오며 허삼관은 마음속으로 일락을 친아들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느덧 일락은 자라 타지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다 간염을 앓게 되어 큰 병원에 가야 하자, 허삼관은 일락을 위한 매혈을 시작한다. 석 달에 한 번이나 가능한 매혈을, 매혈 병원만 달리하며 며칠 간격으로 뽑아대다 허삼관의 몸은 나날이 축이 난다. 

일락이 방황하며 슬퍼하던 순간과 허삼관이 친아들도 아닌 일락을 위해 매혈을 결심하며 길을 떠나는 순간에 눈물이 흘렀다.   

  

 




책 본문 일부 발췌     


(일락이가 입원한 상하이에 가려면) 그중에 린푸와 바이리, 쑹린, 황뎬, 치리바오, 창닝은 현 정부 소재지라 그는 그 도시들에 들러 피를 팔면서 상하이까지 갈 작정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그는 한기를 느끼고 나무에 기댄 채 웅크리고 앉았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으면서 주머니에 있는 돈을 전부 꺼내 세어보았다. 삼십칠 원 사십 전, 그가 피를 세 번이나 팔아 번 돈이 결국은 한 번 판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돈을 다시 잘 싸서 주머니에 넣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지나가던 겨울바람이 그의 눈물을 땅에 흩뿌렸다. 그는 그렇게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계속 앞을 향해 걸었다.      

허삼관은 말을 맺지 못하고 또 눈물을 쏟았다. 그러자 허옥란이 핀잔을 주었다. 

“여보, 당신 왜 또 울어요?”

허삼관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아까는 일락이가 죽은 줄 알고 운 거였고, 지금은 일락이가 살아 있어서 우는 거야......”     


허삼관이 내 이웃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런 인물을 그저 동네 아저씨로 치부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온 허삼관 그는 정말 당시 중국의 한 필부에 지나지 않으니까.      


책에는 빈민들이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매혈의 현장, 가족들끼리 서로 고발하고 의심해야 했던 문화 대혁명의 시기, 중국 현대사의 큰 사건 중 하나인 국공내전, 대약진운동도 담겨 있다. 십수 년을 점핑하며 이야기가 전개되어도 숨이 가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작가의 내공이 커서이겠지.


어떤 사람은 장편을 읽으면 장편 속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책장을 다 덮고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고.      


어느 판사가 법정에 선 노숙인에게 판결을 하며 차비와 이 책을 쓴 위화 작가의 다른 책 ‘인생’을 건넸다고 한다. 그 책의 글들이 어둡고 차가운 그이의 가슴에 얼마나 파고들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허삼관 매혈기를 다 읽은 지금 자연스레 그 일화가 떠오르며 수긍이 가는 것은 무언가를 알게 된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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