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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Mar 08. 2024

킨츠기 수리일기 2

마음 돌보기




칩이 나간 화소반 그릇들을 일괄 킨츠기했다.      

대략의 과정은 이러하다. 칩이 나간 부분들을 사포로 잘 문지르고 생옻을 바른 뒤 휴지로 찍어낸다. 

투명 아크릴판 위에 생옻과 목분을 부어 1:1로 섞어 놓는다.

토분에 물을 부어 5분간 휴지로 눌러 물을 흡수시킨 뒤, 앞서 섞어 놓았던 생옻 목분을 다시 합해 섞는다. 

잘 섞어 점토 느낌이 나면(?) 이가 나간 부분을 나무막대에 발라 잘 메운다.      

(여기서 실수, 가지고 있는 토분의 성분을 번역 못해(토분이 아닌 줄 알고), 1차 수리 시점에 토분이 아닌 밀가루와 목분 생옻 분을 섞어 칩에 올렸다.)

어쨌든 외관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여 사포로 문지르고 옻을 한번 발라준다.      

적칠(주칠이라고 하는 듯)이라고 빨간 가루를 옻과 섞어 바른다.      




1차 수리에서 만들었던 토끼 수저받침 귀 부분과 폴란드 그릇 굽 부분은 약한 듯 보여 토분을 넣은 칠로 보강을 해준다. 아쉽지만 최소 일주일은 더 묵혀 두어야 할 듯.      

킨츠기는 한번 하면 오래 걸린다. 내가 초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이런저런 기구 도구들과 자리 한 편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천연 옻이라 알레르기 옮길까 걱정하는 것은 보너스.     


그릇들을 사포질 하며 마음을 들여다본다.      

아이가 새 학기가 시작되며 부담감을 내비친다. 아이는 친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맘이 맞는 친구들의 수와 해당 학년의 즐거움이 비례한다. 

그런 아이가 2년 전인 초등 6학년 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이제 와한다. 집에 와서 자주 전화 통화하는 반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 말고는 맘 맞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고. 담임 샘이 좋아서 그나마 학교 다닐만했다고. 자신은 밥 먹을 때도 혼자 다니고, 어딜 가든 많이 혼자였다고. 

아이 케어는 내가 전담했기 때문에 2년 전의 아이를 떠올려 본다. 아이는 가지고 있는 질환으로 약을 먹는데, 우리 부부는 그 약의 부작용으로 얼굴 표정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밝게 웃는 표정과 달리 사진을 찍으면 늘 무표정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게 아니었구나.    

 

“왜 말하지 않았어?”

“사춘기가 시작되었었나 봐.”


아니지. 실은 그게 아닐 것이다. 아이는 그때 자기가 무슨 마음인지 몰랐던 거다. 이만큼 자라고 돌아보니 그때를 표현할 수 있는 근사치 말을 알아내게 된 거겠지. 


그때 나는 무엇을 했나. 담임 샘이 지인이라 무척 안심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아이를 위해 제대로 된 밥 한 끼를 차려 내곤 했다. 그 해 아이는 신장 대비 몸무게가 많이 나갔다. 다음 해부터 체중 조절을 생각 안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는 외동이고 우리 부부는 정말 아이와 많이 소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아이의 몸만 살이 오르고 마음은 말라가고 있었구나.      


그 해 가을께 아이의 할머니가 몇 달을 아프시기는 했었다. 그래도 그렇게 모를 수가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새롭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 본다. 

아직 공부보다 쉬거나 어슬렁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것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라도 함께 어울리는 것, 그리고 친구와 어울리는 것을 최고 좋아한다. 

가끔 닌텐도, 핸드폰으로 포켓몬 하는 것을 좋아한다.

검을 좋아해 검도를 사랑하며 친구들과의 수다를 좋아한다. 

고기와 생선 초콜릿을 좋아한다.

기타를 좋아하고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은 소박한데, 그때는 이런 것들을 안 챙겼던가.


아이가 어릴 때일수록 아이를 잘 알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몰라 갈 일만 남은 이 시점에서 잘 알 수 있을 때 그렇지 못하다니. 1년을 손해 본 느낌이지만 지나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 시점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이가 나간 것이 아닌, 귀가 떨어져 나간 수처받침 토끼는 만들어 놓은 옻분으로 형태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1차 성형에서는 역시 미흡함이 드러났다. 수분이 증발하고 나서는 모양이 쪼글쪼글. 나는 2차 성형을 해주고 빨리 완성하고픈 마음을 반으로 접는다.     

화소반 그릇들 이 메우는 것은 비교적 잘되었는데 1차 옻칠 후 하루 지난 2차 옻칠에서, 흑칠의 색이 제대로 안 올라온다.      

뭐가 문제일까. 


역시 지나가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 시점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수리와 보완을 마치고 이 나간 야나칸 접시를 집어 들었다. 이가 나갔고, 스푼은 밑동이 댕강 부러졌다. 

스푼의 나머지 부분은 없으므로 천천히 성형해 나가야겠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릇들을 만질 때마다 나의 소중한 이들의 마음도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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