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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ho Mar 08. 2024

보건정책과로부터 온 고지서

“언제나 지나고 나서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는 법이지”... 하면서

킨츠기를 하고 있는 오전, 띵동_하고 벨이 울린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고 했는데, 우리 동네 포스트 맨도 역시 벨을 두 번 울렸다. 한 번이면 그냥 택배겠거니 하겠지만, 두 번 울린다는 것은 얼굴을 마주하고 볼 용건이 있다는 뜻.     


000 씨죠?      

남편이 현관을 나서니 이름을 확인시켜 준다.

보건 정책과... 로부터 온 고지서. 연노랑 봉투는 자동차세나 토지세 납부 등등인데, 이 봉투는 노랑 노랑 하다 못해 누렇다.      

보건 정책과로부터 올 고지서란 경험치가 내 머릿속에는 없으므로 빨리 펼쳐 볼 것을 재촉했더니,

길거리 흡연에 대한 벌금 부과 고지서란다.      


그럼 그렇지. 그럴만하네.


십만 원 부과받았으니 십만 원 더 내라고 강짜를 둔다. 가정 경제를 위해한 대가.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지만, 남편이 덧붙여 준 말은 더 웃펐다.      

남편은 종로의 어느 빌딩 숲에서 일하는데, 점심 식사 이후 흡연가들이 한 무더기로 몰려가 흡연을 하는 곳이 있단다. 전자 담배를 피우는 남편도 마찬가지. 요새는 거의 금연건물이다 보니 밖에서 피워야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곳을 2인 1조가 되어 단속을 하는 단속조원이 있나 보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이신데 한 분은 목걸이형 핸드폰을 달고 다니며 길 건너편에서 몰래 사진을 찍고, 한 분은 수첩에 그 사실을 기재한단다.      


어느 날 이 단속조에 남편을 비롯한 동료 직원들이 찍힌 모양.

아니 그런데 옆에 사람들도 있는데, 왜 우리만 이 벌금을 내는 것이냐고 일행 중 한 명이 궁금해하며 물었나 보다.      


“저기는 사유지라 단속 못해요.”     


단속조원의 말에 남편과 일행들이 옆을 보니, 나무를 뽑아낸 듯, 단이 올라가 지면과 격차가 있는, 화단과 같은 공간이 보이더란다. 성인 세 명 정도가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인데, 그곳에서는 단속조원과 자신과는 하등 상관없다는 듯 유유자적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제야 그곳이 눈에 들어오더란다.


그 일 이후 관찰을 해보니, 그 단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기 위해 암묵적으로 줄을 서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하더란다.


같은 공간이라도 여기는 공유지, 국유지, 저기는 사유지라 법이 적용 안 된다는 것도 우습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도 대가를 누군가 치르고 알아낸 것일 테니 뭐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애연가들에게는 언제나 지금, 오늘이 최고로 픽밥 받는 날.

웰빙, 헬시라이프, 복지가 강조될수록 흡연가들의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는 버스 안에서도 담배를 피웠었으니까. 기차에서도 태우고, 비행기에서도 태웠다고 하니까... (담배값도 이제 8천원으로 오른다고 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흡연가 처우에 대한 간극은 얼마나 큰 것인지.     


어쨌든 알기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이지. 시간이 지나야 보이는 것들.     

남편은 꽤 비싼 대가를 치루었다. 누군가는 말 한마디로 알아낼 수도 있었던 것들일 테니.


그래도 돈만 주면 알 수 있게 된 이번 것은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기회비용에 대한 아쉬움도,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도 필요없는, 순전히 운에 달린 문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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