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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혜원 Feb 25. 2024

음악 에세이 '첫귀에 반한 재즈' 3

만델라 효과; 사실을 답해 줘요.

쳇 베이커 <I Wish I Knew> 들어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Mz2yXFLxQyA

 ‘Chet Baker Sings and Plays’ 앨범 들어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2coQYvn72cA&list=OLAK5uy_kbR-ETqZZmbY2HFRl6V6YAkqVWKhax34U

90년대 미국의 정치*사회*문화를 지적인 문체로 되돌아보는 척 클로스터만Chuck Klosterman의 책 <90년대>에는‘만델라 효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미국인들 중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서 석방돼 대통령에 당선되던 1990년대는 물론이고 그가 사망한 2000년대까지도 그가 감옥에서 일찍이 사망한 것으로 엉뚱하게 잘못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고 한다. 이 현상에 착안해 만들어진 용어를 ‘만델라 효과’라고 한다. 대중이 잘못된 사실 정보를 진짜인 양 기억하는 집단적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 되기 전이었던 1990년대, 아니 스마트폰이 보편화돼 사실 확인이 어디서든 즉석에서 가능해지기 전이었던 2000년대까지도 만델라 효과는 빈번히 나타났다고 한다.


199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재즈가 유행하던 시절, 재즈 팬들 사이에서도 만델라 효과 같은 게 있었다. 전설적인 재즈 트럼페터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ing 4부작’이라 불리는 4장의 시리즈 앨범 수록곡들이 모두 단 하루 24시간 내에 녹음됐다거나, 말년의 쳇 베이커Chet Baker가 마약에 너무 찌들어서 할아버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망 당시 나이는 겨우 40세였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그렇다. 둘 다 사실이 아니다. 과장된 말들이다.
‘-ing 4부작’은 단 하루는 아니고, 56년 5월11일과 10얼26일 이렇게 따로 녹음되었다. 쳇 베이커는 우리식 나이 셈법으로 딱 60세에 죽었다. 오랜 마약 중독으로 건강을 해친 탓에 60세치고도 그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이기는 했다.

90년대는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 접근도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라, 몇몇 재즈 평론가들과 기자들조차도 정보의 진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고 잘못된 정보를 음악 잡지나 재즈 앨범 속지에 싣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때문에, 어쩌면 아직까지도 쳇 베이커와 ‘-ing4부작’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진짜 사실인 양 잘못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적잖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돼, 어디에 있든 바로바로 정보를 검색하고 조사할 수 있게 된 요즘에는 만델라 효과가 사라졌을까?
만델라 효과란 용어는 이제 잘 사용되지 않을지 몰라도, 이런저런 가짜 뉴스는 더욱 범람하고 있다. 요즘은 그런 가짜 뉴스가 ‘대안적 사실’이란 그럴 듯한 이름을 달고 유통되기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잘못된 정보를 사실처럼 기억하며 사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진짜 뉴스를 두고 권력이 가짜 뉴스로 덧칠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게 요즘이기도 하니까. 또, 최근에는 생성형 AI의 할루시네이션 현상 때문에 정보의 사실 여부가 한층 더 불투명해졌다.

스마트폰이 나왔든 AI가 나왔든, 우리는 지금도, 또 먼 미래에도, 아니 영원히 거짓을 사실로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폰을 들고 손가락만 두드리면 모든 사실들이 있는 그대로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시대이건만, 역설적으로 사실이 사실이 되려면 이성보다 믿음이 먼저 더 필요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무언가 바로바로 잘 믿지 못하는 사람들, 그럴 듯한 표현으로는 회의주의자라고도 불리지만 실제로는 그냥 소심한 사람에 더 가까운 그들은 계속 헷갈리며 살게 된다. 마치 사랑에 빠진 소심이처럼.

앨범 ‘Chet Baker Sings and Plays’에 수록된 쳇 베이커Chet Baker의 <I Wish I Knew>는 젊은 시절의 그가 달콤하고 순수한 미성으로 사랑에 빠진 어느 소심이의 마음을 노래한 곡이다.
너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나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있는 것인지,

왜 헷갈리게 해서,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게 만드는지
계속 북 치고 장구 쳐도 되는지, 아니면 너를 잊어야 하는지
제발 답해 달라고 애원하는 게 가사 내용이다.
검색하면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이 진짜 어떤지도 딱딱 답해주는 스마트폰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마는, 실제 사실을 두고도 가짜 사실들이 대안적 사실이란 이름으로 퍼뜨려지고 기억되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마법과 요술을 부려도 그런 건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사실이 무엇인지 헷갈린다면 나 자신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사랑에 대해서든 뉴스에 대해서든 내 마음이 진실한지, 허튼 욕심 혹은 이기심 때문에 진짜 사실을 빤히 두고도 직시하기가 두려워서 내가 헷갈려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아예 더 나아가 거짓을 사실로 여기고 기억하기를 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I Wish I Knew>가 수록된, 쳇 베이커의 앨범 ‘Chet Baker Sings and Plays’는 1954년에 앨범 ‘Chet Sings’가 발매되어 대성공을 거두자 뒤이어 1955년에 나왔다. 한 해 전에 나왔던 ‘Chet Sings’는 쳇 베이커의 첫 번째 보컬 앨범이었다.
록큰롤이 본격 대중 앞에 등장한 것이 공식적으로 1955년이니, 그 한 해 전만 해도 록큰롤은 대중음악이 아니었고 리듬앤블루스R&B는 흑인 사회에 국한돼서 향유되고 있었기 때문에, 재즈는 계급과 인종으로 넘어 당시 미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대중음악이었다. 옆집 아저씨도 앞집 누나도 재즈를 들었고, 특히 가수가 노래하는 보컬 재즈는 더 폭넓게 사랑받았다.

재즈가 아직 대중음악이던 시절 쳇 베이커는 젊고 아름다웠다. 어릴 때 친구들과 놀다가 돌에 맞은 앞니가 하나 부러져서 맹구 같은 상태였지만, 트럼펫 부는 데에 방해도 되고 불편하기도 해서 의치를 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그의 미모가 내뿜는 아우라에 넋을 잃었다.

콤플렉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사진 찍을 때만큼은 두 입술을 꼭 다물었지만, 앞니가 없는 그 상태 그대로 쳇 베이커는 대중 앞에 서슴없이 서고, 인터뷰도 하고, 수없이 연애도 하고, 일찍 결혼도 했다. 바람도 수없이 피워서 아내한테 실제로 총 맞아 죽을 뻔한 뒤 이혼했지만.

피아노 없는 4중주단

원래 트럼펫만 불던 쳇 베이커가 노래를 하게 된 것은 그가 몸담고 있던 ‘피아노 없는 4중주단’의 주축 멤버인 바리톤 색서포니스트 제리 멀리건Gerry Mullingan이 1953년 4월 헤로인 투약으로 투옥되면서 4중주단의 활동이 중단된 탓이었다. 이들의 활동 근거지는 로스앤젤레스였고, 쳇 베이커는 이 피아노 없는 4중주단 활동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처음으로 할리웃 셀럽으로 발돋움했었다. 제리 멀리건과 개인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음악적 지향만큼은 서로 일치했고 연주도 합이 잘 맞았다.


그래서 다수의 재즈 팬들은 쳇 베이커가 이때 제리 멀리건한테서 마약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렇게 알고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쳇 베이커의 이 시절 사진들을 전속으로 찍으면서 유명해진 사진작가 윌리엄 클랙스턴William Claxton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때 쳇 베이커는 대마초만 피웠을 뿐 마약을 투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은 금세 끝이 났다. 제리 멀리건이 구속된 직후부터 쳇 베이커는 테너 색서포니스트 스탄 겟츠Stan Getz와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저널리스트 제임스 개빈James Gavin이 유려한 문체로 쳇 베이커의 생애를 담은 전기 <쳇 베이커 Deep in A Dream>에 따르면 쳇 베이커는 바로 이때 스탄 겟츠에게서 마약을 배우게 됐다고 한다. 스탄 겟츠는 구속된 동료 제리 멀리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마약 중독자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던 쳇 베이커와 스탄 겟츠는 미서부 할리웃 연예계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었고 라이벌 관계이기도 했다. 둘은 금세 갈라서게 되고 쳇 베이커는 자신이 이끄는, 이번에는 피아노를 포함한 4중주단으로 활동을 새롭게 시작한다. 보컬 앨범 ‘Chet Sings’와 ‘Chet Sings and Plays’는 바로 그 시기에 나온 앨범이었다.

왼쪽 사진은 피아니스트 딕 트워드직, 오른쪽 사진은 쳇 베이커와 딕 트워드직이 얘기 나누는 모습

쳇 베이커 본인은 몇몇 인터뷰에서 자신이 마약에 손 대기 시작한 게 1953년이 아니라 1957년부터라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1955년 10월 빠리에서 함께 활동하던 중, 마약 과다 투약으로 사망한 천재 피아니스트 딕 트워드직Dick Twardzick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게 훨씬 설득력 있는 설이다. 딕 트워드직이 빠리에서 죽던 밤 쳇 베이커도 한 방에서 같이 마약을 투약했다고, 당시 함께 마약을 투약하다 먼저 방을 떠난 같은 팀 멤버인 드러머 피터 리트먼Peter Littman이 훗날 증언했다. 다만 그날 밤 방에서 정확히 무슨 일어났는지, 쳇 베이커가 딕 트워드직의 죽음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정확한 사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1988년 사망할 때까지 쳇 베이커는 마약에서 헤어나오지 못 했다. 건강이 망가졌고 얼굴은 빠르게 늙어갔다.

빠르게 늙은 것은 얼굴만이 아니었다. 목소리도 진작에 쉬어 버렸다. 젊을 적의 순수하고 정갈한 미성은 자취를 감췄다. 영혼의 상체기들이 성대와 목구멍에 흉터로 남은 것처럼 목소리는 거칠어졌다.


그 거칠고 노쇠한 음색으로 쳇 베이커가 생의 후반기에 부른 노래들이 더 재즈 본연의 색깔에 어울리기는 하다. 실은 몇몇 재즈 근본주의자들은 젊을 적 쳇 베이커가 낸 초기 보컬 앨범들을 재즈로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앨범들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피아니스트 러스 프리만Russ Freeman조차도 아주 박한 평가를 내렸다. 녹음할 당시에도 좋아하지 않았고 수 십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쳇 베이커의 젊은 시절 보컬 곡들을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노래 하나하나로 듣기보다 쳇 베이커 전생애를 관통하는 음악 여정, 그 긴긴 드라마를 구성하는 연속성을 가진 중요한 소품으로 놓고 듣는다면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다. 마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 사탕>의 마지막 장에서 주인공의 청년 시절 모습이 주는 아픔 같은 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쳇 베이커가 젊은 시절 미성으로 부른 노래들을 듣고 나서 그가 인생 후반에 부른 노래들을 듣는다면 가슴에 더 큰 파동이 일 것이다. 극적인 대비감 때문이다.

부록4)
쳇 베이커가 제리 멀리건과 함께 ‘피아노 없는 4중주단’으로 활동하던 당시 대표곡 <Speak Low>를 들어보자.

이들 4중주단은 피아노가 빠진 구성이었음에도 완성도 높은 편곡과 빈 틈 없는 즉흥연주로 우아한 소리를 들려주기로 유명했다.

참고로 이 곡의 원곡은 독일의 유명한 현대 작곡가 쿠르트 바일Kurt Weill이 나치를 피해 미국에 망명한 후 한창 브로드웨이에서 음악 활동하던 당시 쓴 뮤지컬 <비너스의 손길>에 나오는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Ez4mXCY_pYw

 

부록5)

쳇 베이커가 딕 트워드직과 1955년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시절 녹음한 명곡 <Sad Walk>를 들어보자.
 쳇 베이커는 1955년에 프랑스의 재즈 레이블 바클레이Barclay와 계약하고 수 개월 간 빠리에서 활동하는데, 재즈게에서는 이 시기 앨범들을 쳇 베이커의 초기작들 중 최고로 꼽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fHW_WqXatMk&t=1s

부록6)
1950년대 실제 미국 청춘들의 모습이 담긴 진귀한 기록 영상을 쳇 베이커의 노래와 함께 감상해 보자.
쳇 베이커의 삶을 주제로 각색된 극영화 <Born to Be Blue>를 통해 유명해진 곡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가 쳇 베이커의 목소리로 흐르는 가운데, 지금은 100세 노인이 되어 있거나 이 세상에 없을 당시의 젊은이들이 그 시절 멋진 자동차들을 몰고 황량한 도로 위를 달리는 유튜브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yVDPo3pM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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