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정리할 업무가 있어서 회사에 나왔다. 회사로 오는 차 안에서 우연히 벅의 '맨발의 청춘'을 듣게 되었다.
이게 얼마만인가!
내가 다녔던 대학 후문에는 꽤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알코올 랜드'라고 불렀다. 처음부터 알코올 랜드에서 술을 시작하는 경우는 정말 돈이 없는 날이었고, 대부분은 마지막 차수로 갔던 곳이 그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알코올 랜드의 기억은 항상 극적인 장면들 뿐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한 명을 콕찝어 쫒는 친구가 있었다.
이런 식이다. 5명이서 알코올 랜드에서 새우깡에 소주를 마시다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5초 이상 지그시 쳐다보면 시작되는 것이다. 아... 이놈 또 시작되는구나. 그 친구의 눈빛을 5초 이상 받은 친구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 쓰바... 오늘은 나구나.. 서서히 몸에 힘을 주고 언제든 도약할 수 있게 준비를 한다. 10초 안에 친구는 개가 되어 쫓아가고, 다른 친구는 도망가기 시작한다. 왜 쫒는지, 왜 도망가는지 모를 경주가 시작되고 나머지 친구들은 작은 안도감과 함께 다시 술잔을 부딪힌다.
우리들은 늘 같이 다녔다. 우리들의 거점지는 단독주택 2층 전체를 자치 방으로 사용했던 H의 집이었다. 자그마치 방이 2개, 거실이 하나였던 H의 집은 당시 수많은 지역에서 유학 온 촌놈들 중 가장 훌륭하고 넓은 자치 방이었다. 학교와도 적당히 가까웠다. 버스가 끊겨 집에 가지 못했던 숱한 날들을 그 집에서 보냈다.
우리 청춘의 3할은 그 집에서 지냈다고 해도 과장되지는 않은 말이다. 그 집은 우리에게 본부였고, 쉼터였고, 오락실이었고, 도박장이었고, 상담소였고, 술집이었다. 늘 돈 한 푼 내지 않고 숙식을 했으며, 가끔 장기 거주도 했었다. 그 나이였기에 가능했고, 그 친구였기에 또 가능했던 일들이었다. 여하튼 우리는 그렇게 그 집에서 청춘의 추억을 쌓아갔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다가 이렇게 주저리 적게 되었나... 맞다. 벅의 '맨발의 청춘'. 이 노래는 당시 우리가 노래방만 가면, 술만 마시면, 알코올 랜드에서 흥분하면, 항상 다 함께 떼창을 불렀던 노래였다. 다른 노래도 물론 떼창을 많이 했지만.. 유독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다들 광분을 하며 불렀다.
"이렇다 할 백도 비전도 지금 당장은 없고 젊은것 빼면 시체지만 난 꿈이 있어~~ 먼 훗날 내 덕에 호강할 너의 모습 그려봐 밑져야 본전 아니겠니 니 인생 걸어 보렴~~."
세상의 시선으로는 늘, 모든 것에서 부족했던 우리들을 대변하는 가사였다. 우리들의 학점은 늘 F를 달고 살았고 재학 시절 닥친 IMF로 학교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몸에서는 늘 최루가스 냄새가 났고, 냄새를 쫒는 사람들을 피해 군대를, 휴학을 선택했었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었으나 보이지 않았다. 나도, 친구들도 캄캄한 시절의 젊은 치기를 이 노래와 함께 달랬던 것 같다.
가끔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는다.
친구들은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비슷한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최루가스 냄새에 대한 생각이 여전한 친구들도 있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오늘 나처럼 우연히 '맨발의 청춘'을 듣는다면 녀석들도 나처럼 멈칫하지 않을까...?ㅎㅎㅎ
우리가 그토록 광분하며 불렀던 '맨발의 청춘',
'구두 신는 중년'이 된 지금, 그대들은 다들 안녕하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