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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의 김실장 Feb 27. 2022

2019' 제주를 떠올리며

다시 가고픈 제주, 다시 하고픈 라이딩.

2019년에 썼던 제주도 여행기입니다.

다시보니 새로워, 용기내어 브런치에 올립니다.



기회

아내가 1박 2일 친구들 모임이 있단다. 장모님이 손주들을 봐주신다고 김서방도 어디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라고 하신다.

이게 도대체 무슨 횡재냐..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있구나. 무얼 할까 어디로 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곧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기 위해서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금, 토, 일. 그렇게 금요일 아침 비행기로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에 도착하여 미리 예약해둔 자전거를 렌탈했다. 자전거 렌탈 해주는 곳.  "용두암 하이킹".  사장님이 좋은 자전거라며 '자이언트'를 추천해 주셨고 나는 자이언트에게  잘해보자며  일주를 시작했다.

렌탈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50대 남성. 중문에 세미나가 있어서 차 렌트해서 가느니 자전거로 간다는 이분.. 알고 보니 부산에서 오신 베테랑 라이더 의사 선생님.

이 분 말에 의하면 제주도 일주는 딱 2개의 도로만 알면 된단다. 1132 지방도로(일명 일주도로)와 그와 연결된 해안도로. 이 두 도로만 오가면서 반시계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끝이라고 한다. 이후 첫 자전거 일주 여행이었지만 그 말대로만 하니까 정말 쉽게 했던 것 같다.


여행


1. 첫날 코스(용두암 ~ 산방산. 약 80킬로)


본격적인 첫날 일정이 시작된다. 용두암에서 시작을 알리는 인증샷과 인증 도장을 수첩에 찍고 본격적으로 페달을 돌렸다. 도로도 좋았고, 바람도 상쾌했고, 마음도 들떠서 다른 여행객들에게 일일이 파이팅을 외쳐주며 나는 바람을 가르며 페달을 굴렸다.

용두암, 출발직전 한컷


애월과 한림 사이 어디쯤일까 이런 사진관이 보인다. 예전에 내가 아는 어떤 분도 '풍류 발전소'라는 멋진 사진관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술 대신 차를 마시며 풍류를 돌렸던 곳으로 기억한다.

애월과 한림 사이 어디쯤에 있었던것 같던 '청춘사진관'. 문은 닫혀있었다


협재해수욕장. 바닷물 색깔이 부산과 다르다.



용두암 인증센터에서 시작하여 다락쉼터 인증센터, 해거름 인증센터까지 총 42킬로를 달리니 슬슬 배가 고파왔다.

사실은 애월 부분부터 배가 고팠으나 두 곳 정도는 인증한 후 점심을 먹어야 하지 않겠나 해서 해거름 인증센터까지 온 거였는데... 이런 젠장 이때부터 맘에 드는 식당이 안 보인다. 그전까지 그렇게 많이 보였던 해안 도로의 감성 밥집들이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좀만 더 가면 있겠지 있겠지 하며 거의 1시간 30분가량을 더 간 후에 배고픔이 극에 달 했을 때 발견한 '육거리 식당'.


름이 심상치 않다. 비록 내가 찾던 해안도로의 감성 밥집은 아니지만 모진 풍파 다 겪으며 육거리에서 살아남았을 것 같은 동네 식당이었다.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켜니 몸이 풀린다. 더 바랄 게 없다.



살 것 같았다. 허기가 채워지니 갑자기 고교 선배 K가 생각났다. 2년 전 그 선배가 제주도에서 생활할 때가 기억이 나서 지금은 서울에 있는 줄 알지만 문자를 보내봤다.

"형의 마음의 고향, 제주도에 왔어요. 안 계신 줄 알지만 그래도 신고합니다."

바로 걸려온 선배의 전화. "야,, 나 오늘 제주도 내려왔다. ㅋㅋㅋ"

주말 보내려고 서울에서 오늘 내려왔단다.. 아 놔... 언제부턴가 선배하고 타이밍이 잘 맞고 있다. ㅎ


오후 5시경 도착한 오늘의 숙소 "산방산 별이 스트 하우스". 조용한 곳이다. 선배와 만나기 위해 밤길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도착. 중문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우리가 간 곳. 중문에 위치한 "목포 고을".

내가 지금껏 먹어본 돼지고기 중 거의 탑이라고 말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지금도 입맛이 돈다. ㅎㅎㅎ

여행, 운동, 건강, 책, 명상 등등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상보다 술을 더 마셨다. 여행은 종합예술이라며 혼자만의 자전거 일주를 택시비까지 챙겨주며 물심양면 응원해준 형님께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하단 말씀 전한다. 이렇게 첫날 일정은 훌륭하게 끝났다.



2. 둘째 날 코스(산방산 ~ 성산일출봉. 약 95킬로)

어제보다 훨씬 힘들다. 어젯밤 숙취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코스가 지속적으로 오르막이 많았다.

패드 바지를 입었지만 안장통은 심해졌고 시작부터 머릿속엔 힘들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도 다음 코스는 내가 2년 전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법환 바당(법환포구)'이다. 나는 그곳에서 마음먹고 늦장을 부리기로 마음먹었다. 다리도 아프고 엉덩이는 더 아프고.. 그냥 오전에 여기서 보낸 뒤, 점심까지 먹고 출발하자 생각하고 법환 바당 최고 장소인 야외 목욕탕에 몸을 담근다. 야~ 역시 최고다. 어제의 피로와 숙취가 가신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동네 사람들도 다 이용하는 물이기에 깨끗하고 시원하다.

이곳이 법환바당 동네 목욕탕. 남탕만 있다. 정말 아는 사람만 안다는 최고의 냉욕.
법환바당 굴짬뽕. 맛이 괜찮다.


열심히 페달을 굴린다.  목욕탕 물이 효과가 있었을까... 열심히 쉬었으니 쉬지 않고 가자.. 계속되는 업힐 도로... 가다 보니 이중섭 공원도 나오고 쇠소깍도 나온다. 헉헉대며 컥컥 대며 열심히 페달을 굴렸다. 많이 왔다. 드디어 해가 저물 무렵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와 드디어 끝이 보인다.

이중섭 공원
쇠소깍
저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내자..헉헉 ㅎ


오늘의 숙소는 "성산 녘 게스트하우스"


파티가 있단다. 참석여부를 묻는 문자가 왔다. 도대체 게하의 파티는 어떤 느낌일까.. 어떤 사람들과 어떤 느낌의 대화를 나눌까.. 내 나이로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더 늦기 전에 한번 맛보고 싶었다. 용기 내어 "참석"으로 답장을 보낸다.


2만 원을 내면 아래와 같은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다. 자리는 사장님이 임의적으로 정해놓는다. 일부러 같이 온 사람들은 찢어 놓는다고 했다. 우리는 총 8명이었고, 남자 5 여자 3이었다. 놀라운 것은 모두 90년대 생 ㅋㅋㅋㅋㅋ. 나만 70년대 생 ㅋㅋㅋㅋㅋ 젤 어린 여자분이 95년생이고 중앙대 4학년 학생이란다. 내가 아는 95는 학번뿐이었는데... ㅋㅋ


술잔이 몇 순배 돌고 나니.. 어영부영 나는 그들의 대화에 동화되고 있었고 분위기 좋게 따라가고 있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부터 시작해 어떻게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 제주도의 무엇이 좋아 또 오게 되었는지 등을 이야기한 후, 그 끝에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살짝궁 보태기도 한다.


나와 다른 공간의 사람을, 같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매력.


내일이면 각자 다른 로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부담이 없다.


얕지만 때로는 묵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툭 던지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툭 던졌던 서울 청년. 다음날 이른 아침, 자전거에 짐을 꾸리고 있는 나에게 조심히 가시라며 조용히 생수병을 건넨다.


고마운 마음이다.



3. 마지막 날(성산일출봉 ~ 다시 용두암. 약 70킬로)​


비가 예정되어있었다. 비행기 시간과 비를 생각하면 아침 일찍 서둘러야 했다. 7시에 일어나 7시 30분에 바로 출발했다. 오늘 가야 할 인증센터는 두 곳. 두 곳에서 도장을 찍고 처음 출발지인 용두암 관광안내센터에 수첩을 들고 가면 최종 인증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수중 축구나 수중 달리기처럼, 수중 라이딩도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는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탔다. 다음 노래가 생각나지 않으면 무의식에 저절로 나오는 노래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 요즘 6살 둘째가 줄기차게 밀고 있는 이 노래.. 입에 달고 살아서 인지... 무의식 중에는 여지없이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혼자 피식피식 많이 웃었다.

내려다 보이는 제주항
다시 돌아온 용두암. 마지막 한 컷

여행을 마치고


김녕해수욕장 화장실에 이런 말이 있었다. "여행을 하면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게 된다".

여러 가지로 처음인 여행이었다.

첫 자전거 여행.
첫 제주도 여행.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

이번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를 찾고 싶다거나, 나는 누구인가 같은 것은 처음부터 생각지도 않았다 ㅎ

그저, 내 두 다리의 힘을 동력으로 제주도를 느끼고 싶었다. 이 좋은 느낌의 섬과 같은 호흡으로 숨 쉬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비록 시간에 쫓겨 그 호흡을 놓칠 때가 많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안장 통과 허벅지 통증에도 제주도의 마지막 바다 냄새가 여전히 코끝을 맴도는 것을 보니 나름 괜찮은 여행이었던 것 같다.

훗날 다시 기회가 온다면 뚜벅이로도 한번 가보고 싶다. 다시 볼 때까지 안녕 제주!


Ps. 글속의 점포, 식당, 게스트하우스 등 상호는 모두 실제하는 곳입니다. 어떤 협찬도 받지않았으며, 좋은 기억을 만들어 줬던 장소이기에 실명 그대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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