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키운다는 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키웠던 장수풍뎅이, 아내가 신혼 초에 시도했던 몇몇 식물들을 모두 저세상으로 보낸 뒤 우리는 오래전에 결론을 내렸다. 우리와 키우는 것은 맞지 않다고.
무슨 일인지, 얼마 전 아내는 화분을 하나 들여놓았다. 얼마나 갈까 싶었는데, 제법 오랫동안 잘 크고 있다. 비약적 발전이다. 자신감 충만한 그녀는 2개의 화분을 더 들여놨다.
삼겹살을 좋아하는 나는 어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도 베란다에 상추 한번 심어볼까??"
결혼 13년 차가 되니 관심 가는 것도, 그 시기도
얼추 비슷해진다.
이른 아침 투표를 마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모종, 화분, 흙을 사 와, 딸과 나란히 상추를 심었다.
물방울이 맺힌 상추 이파리는 그 자체가 싱그러움이었다.
축구 경기를 다 보지 못하고 잠이 든 날이면, 다음날의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각적 느낌이니 뭐라 설명할 수는 없다.
0.8%를 제외하고는 승자와 패자가 정확히 반반이란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슬픔 중 어떤 감정의 농도가 더 진할까? 오늘 하루 마주칠 수많은 사람들도 저 두 감정 중 하나일 텐데 눈치껏 잘 호흡하고, 적당한 간격으로 잘 뱉어내자.
"아빠, 얘네들,, 어제보다 조금 더 자란 것 같아..."
출근 전, 어린 딸이 말한다. 다행이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삼겹살과 상추들을 우리는 언제쯤 싸 먹을 수 있까?
그날이 오면, 딱 한잔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