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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의 김실장 Mar 26. 2022

이슬아 작가의 '심신단련'을 읽고

나는 에세이집이나 산문집, 수필집 등을 별로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이야기책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지식책도 아니어서 늘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읽어봤던 몇몇 작가들의 수필집이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에세이집은 굉장히 작위적이거나,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모르겠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것이다.

"때를 지울 수는 있어도, 시간에 의한 손상을 지울 수는 없다" 책의 첫 장에 있는 문장이다. 화장실 바닥을 박박 문대며 저런 생각을 하는 작가라면 끝까지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문장을 살리기 위해 이 에피소드를 맨 앞으로 뺀 것이라면 영리한 편집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독자는 저 한 문장에 끌려서 마음을 열고, 자세를 바로잡고 들여다봤을 테니까...

책은 재밌고, 독특하고, 때로는 비틀고 꼬집는 내용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은 쉽고 정갈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빙빙 돌리지도 않는다. 불필요한 여러 감정들이 한 개의 글에서 방황하지도 않는다. 꼭 필요한 한 개의 감정만 제대로 드러나도록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쓴 듯하다. 끝까지 읽어보니 그게 이슬아 글의 매력인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재미와 감흥을 느꼈던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나와 맞는 문체들이었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작가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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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는 망원동 월셋집의 화장실 타일은 낡은 편이다. 락스 물에 묻힌 솔로 아무리 박박 문질러 닦아도 아주 말끔해지지 않는다. 때를 지울 수는 있어도 시간에 의한 손상을 지울 수는 없다.  17p

다음 주면 다 져버릴 꽃길을 천천히 걸어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와 나란히 걸은 듯했다. 87p

엄마가 시켰어요..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아빠와 작은 아빠를 따라 복희를 대했다. 그것은 내가 복희를 일면 함부로 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99p

사춘기 내 몸은 마치 나랑 어색하게 지내는 친구 같았다. 예측할 수 없었고 딱히 좋지도 않았으며 같이 있으면 불편했다. 몸이 마음을 앞서가서인지 내 자세는 늘 엉성했다. 128p

혹시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가진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중요한가. 어른이 되어 읽은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처럼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 글쓰기일지도 몰랐다. 그날부터 나는 내 결핍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135p

(장애인 친구에게) 나는 분명 친절했지만 그 친절은 관대한 상사 같은 친절이었다. 권위를 쥔 친절이자 상대를 내려다보는 친절 말이다. 149p

행복도 불행도 언어와 함께 실체를 획득했다. 인간은 불행의 디테일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확히 불행해지는 존재 같았다. 151p

그런 일은 자꾸만 기억난다. 어떤 부끄러운 짓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152p

어떤 교사는 그들의 이름을 정확히 지칭하는 대신 '약한 친구들'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약한 친구들에게 폭력적인 말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나는 약하다는 말에 약했다. 이제는 안다. 약하다는 말은 강하다는 말만큼이나 소중히 내뱉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15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선생님께 물을 것이다. 왜 약한 친구라고 말하느냐고. 임과 준을 계속 초라한 자리에 두는 게 더 무례하다고. 153p

수줍은 희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었다. 가끔은 있는 듯 없는 듯하였으나 어떤 오후에는 훌라로 모두의 시선을 자신에게 모으기도 했다... 서로 다른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 뒤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189p

몇 마디 안 나눈 통화였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김, 너는 잘 지내고 있구나! 192p

일간 이슬아를 통해 내가 매일 쓸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믿게 되었다. 윗몸일으키기 횟수를 늘리듯 꾸준히 훈련하면 쓰는 근육도 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도 뜨겁게 달궈졌다. 매일 좋은 글이 완성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좋은 글을 쓸 확률이 높아지기는 했다. 217p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면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하거나 듣는 시간이 말하는 시간과 비슷해야 좋은 만남일 확률이 높았다. 발언의 지분이 균등한 대화에만 머물고 싶었다. 228p

그녀의 덕과 품으로 굴러가는 가게였다. 237p

사무실을 차릴 돈이 없어서 나의 서재는 작업실이자 사무실이자 택배 포장소가 되었다. 바로 옆에서 티격태격하는 부모에게 나는 대표의 말투로 주의를 준다. "소란스럽네요" 239p

그는 소통과 연결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고독과 고립의 시간을 꼭 확보하는 외톨이기도 하다. 사실 두 가지는 충돌하지 않는다. 고립과 연결은 서로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259

쉴 새 없이 연결된, 정보가 범람하는, 모두가 서두르는, 이런 세상에서는 무엇과 연결되느냐 보다도 무엇을 차단하느냐가 더 중요한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 262p

스스로를 나약하게 두지 않기 위해 청소를 한다. 공간이 좋은 긴장감을 품도록 정돈하는 것이다. 2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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