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아일랜드행 비행기를 타다.
내가 20대 초중반일 때의 일이다.
내 주변만 그랬는지 내 또래들이 모두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즈음에 이미 무언가 시작하기엔 늦었다는 소리를 참 많이도 들었다.
그래서 나조차도 나한테 일말의 기대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학교를 다니다가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휴학을 했고 엄마 고향으로 내려와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엄마는 이런 내가 불안했던지 여기저기 내 일자리를 알아보고 다녔다.
그중에 기억이 나는 일은 엄마와 엄마 친구랑 그냥 점심 먹으러 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를 학습지 선생님으로 써달라는 부탁을 했던 일이다. 옆에 있던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영어 학습지 지점을 오픈한 그 아주머니는 내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곧잘 한다고 했다. 나는 그때 be동사가 뭔지도 몰랐다. 무슨 테스트지를 받아서 풀아보라고 했는데 반이상 빗금이 그어지고 그분은 말했다.
'20대 초중반이면 영어 공부하긴 너무 늦었지, 하루에 영단어 100개씩 외워서 3개월 하고 시험 봐서 다 맞히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화가 나서 입을 꾹 닫았다.
그 뒤로도 엄마 친구가 제약회사 면접시켜주겠다고 했다고 나를 끌고 갔는데 웬걸 다단계 회사였다.
200만 원어치 제품을 사면 그때부터 나는 그 사람 라인이라 날 잘 이끌어준단다.
나는 이렇게 엄마 등쌀에 끌려다니는 와중에 내 친구는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왠지 멋있어 보였다, 그 전에는 워킹홀리데이라는 말도 몰랐었는데 그 영어학습지의 굴욕이 생각나면서 그래 나는 영어를 배워야 해! 라며 충동적으로 그 해 영어권 국가들을 모두 지원했고 다 떨어졌다.
특히 캐나다는 신청자가 너무 많아 사이트가 다운이 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해보고 날렸다. 그다음 해에도 날렸다. 그 해를 시작으로 나는 아일랜드 워홀 신청을 했다. 일 년에 두 번, 상반기와 하반기 200명씩 신청을 받던 게 다음 해에는 갑자기 상반기에 모든 인원을 받아버려 하반기 신청 예정이었던 나는 신청을 못했고 또 일 년이 흘렀다. 다음 해 상반기도 떨어졌다.
벌써 3번째 워홀 신청 여태까지 선착순 200명을 뽑던 방식을 랜덤 추첨제로 바꾸어 하반기 워홀 신청자를 받았기 때문에 여태 뭘 당첨되어 본 적이 없는 나는 아무 기대 없이 신청서를 보냈다.
얼마나 기대가 없었는지 합격 발표일도 잊어버리고 한참을 지나 우연히 확인한 메일함에 합격 메일이 와있는 것을 확인했다. 2차 서류 제출일이 고작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때의 난 한 '디자인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면접 볼 때는 자기 디자인 철학이 어쩌니 저쩌니 핀터레스트가 요즘 트렌드가 어쩌고 하고서는 주로 하는 일은 수건에 ' 축 칠순 하' ' 축 돌잔치 하 ' 이런 문구들 프린트하는 회사였다. 주 업무는 수건 박스 접기.
여기서 겪은 일이 많지만 길어질 것 같아서 그만하기로 하겠다. 그냥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라고만 하겠다.
합격 메일을 확인한 그날 회사에 반차를 내고 은행이며 경찰서며 돌아다니면서 허겁지겁 서류를 준비해 겨우 시간 맞춰 서류를 보낼 수 있었다. 그 후 2개월간 월급을 90% 모은 후 퇴사했다.
퇴사한 시점이 출국일을 2달쯤 남겨둔 상태였는데 퇴사 후 계획은 영어공부였다. 하지만 근처 영어학원이라고는 고등학생을 위한 입시 학원뿐이어서 집에서 혼자 독학해야 했는데 첫 일주일은 열심히 하다가 한 달을 내리 놀았다. 나는 한 달 동안 집 밖에 안 나가도 괜찮은 인간이란 것을 깨달았던 나날이었다.
영어는 하나도 늘지 않았는데 출국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가족들에게 나는 워홀을 갈 거라고 말했왔었는데 진짜 간다니까 다들 처음 듣느냐 놀랐다. 엄마는 출국일 전날 외할머니댁에 나를 데려가서 해외 나간다고 말하고 25만 원 정도를 타냈다. 그것이 내가 워홀전 다른 사람에게 받은 돈의 전부였다.
나는 속으로 모두 같이 인천공항에 가서 나를 배웅하는 그림을 기대했었는데 현실은 언니는 잠을 자느라 인사를 못했고 엄마가 나를 인천공항행 버스를 타는 버스터미널로 데려다준 것이 출국 전 마지막 인사였다.
5시간이 걸려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일부러 나는 내 생일을 출국일로 정했다. 내 인생에서 제일 비싼 생일선물. 88만 원짜리 인천-아일랜드 왕복 티켓.
내 계좌에는 350만 원이 들어있었고 영어는 못했지만 어쨌든 나는 간다 아일랜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