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에스프레소 바
창작자의 고통?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마치 대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냐는 말이다. 그는 막 아침의 첫 커피를 내리러, 아니 내려받으러 공원가의 카페에 들어서며 생각했다. 결국에 누구도 읽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한 적 없는 걸 기어이 만들어내서 눈앞에 갖다 바치겠다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어디 고상한 척 말이라도 하나 더 붙여보겠다고 창작자 같은 소리나 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그도 결국엔 글을 쓰기 위해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자리를 찾던 참이었다. 자리를 탐색하기 위해서 가장 처음으로 찾게 되는 것은 결국 또 다시 콘센트였다. 그는 언제나 생각한다. 오늘도 딱 두 시간만 에너지를 쓰겠다고. 두 시간을 위해 충전이 필요한 노트북은, 글쎄, 좀 구식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은 조금 더 창작 욕구로 충만한 글이 너무도 잘 써지는 하루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자리를 탐색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얘기하곤 한다. 본인은 창작 욕구를 잠재울 용기도 재능도 없어서 항상 통장의 돈이나 까먹으면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그럼에도 은밀하게 간직하고 있는 속마음은, 아직 피지 못한 꽃몽우리일 뿐이니, 조용히 그날만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할 뿐이다.
커피 내리는 소리는 지독하게 시끄러운 공사판 소리와 다를 바를 못 찾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결국 또 딱딱한 나무의자의 입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선을 연결한다. 도대체가 노트북의 생명선을 위해 엉덩이와 허리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게 무슨 논리인가, 하면서도 본인 자신의 우선순위를 바꾸지 못하며 또, 또, 또 한 번 아니 또다시 그는 그런 자리를 고집한다. 카페의 몇 안 되는 하지만 너무도 안락해 보이는 저 소파자리는 결국 창작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안일한 자들의 차지일 뿐이지라고, 화가 잔뜩 난 채 그는 소파자리의 연인들을 흘깃 보고는 앉는다. 그는 커피의 맛을 한 번도 음미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어디서 본건 있어서 이따금씩 에스프레소를 시켜놓고선 코를 몇 번 킁킁거려 보긴 한다. 맛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작은 잔에서 오는 키치함을 버리지 못하고 한 껏 고상한 티의 티끌만큼이라도 제게 떨어지기를 바라며 반복하는 행동 중 하나이다. 그래도 오늘은 우유라도 양껏 탄 카푸치노를 시켜서 앉았다. 하얀 커 품사이 뿌려진 향긋한 가루가 주는 야릇한 행복은 오늘 본인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묘하게 의자가 흔들리는 것 같은데,라고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는 그의 앞에 꽤나 예쁘장한 외모의 직원이 커피잔을 들고 왔다. 또 오셨네요, 오늘도 작업할게 많으신가요? 아 네, 그러게요, 진전이 도통 없어서 참 하하, 커피 감사합니다. 더 이어가 보고 싶은 그도 영 연애에 대해 감각이 없는지라, 멋쩍게 웃으며 대화에 마침표를 쿵하니 찍어버렸다. 글쎄, 더 이어가 보고 싶은 쪽은 직원일지도 몰라,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 꽤 코디가 좋았는지도 모르겠군, 하며 으쓱해하는 그였다. 커피 향은 옅었고, 시나몬가루는 가벼웠다. 커피에 일가견이 없는 그여도 이 카페가 원두에 진심을 쏟는 곳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5천 원짜리 작업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향을 내어줘야 하는 공간이 또 얄미워져서 썩 표정을 풀지 못하는 그였다. 적어도 5분, 아니 10분은 직원의 어여쁜 외모에, 아니 친절함에, 아니 외모에, 아니 그의 걸음걸이에 몽글거리는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기에 그는 잠시 멍하니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초점을 잃었다. 아차, 초점을 다잡고 해야 할 일을 해야지. 두 손을 키보드에 올려두고 마음을 다잡으려는 그는, 어쩐지 직원에게 뺏긴 짧은 시간조차 묘한 짜증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며, 쟤도 뭐 뻔하디 뻔한 한없이 얕고 의미 없는 연애상대를 수년째 갖고 있을 테지,라는 속마음을 빙자한 저주를 퍼붓는다.
그는 언제나 예술을 하는 이들을 질투하며 선망하며 바라만 보다가 기어이 안정적인 소득을 포기하고선 글쟁이의 길로 들어섰고 얄미운 시간은 어느새 반년을 흘려보냈다. 수개월을 흘려보낸 게 대수랴,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들어서기까지도 그는 벌써 하루의 반을 낭비하고도 쉬이 불평을 위해 수분을 더 소비해 버릴 수 있는 이였다. 커피도 준비되었고 노트북은 어젯밤 충전된 상태로 그의 손길만을 기다리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한들 바로 흘러나올 수 있는 글이었으면 등단은 누구보다 쉬웠을 것을, 그는 기어이 세상에 온갖 트집을 잡으며 손을 물어뜯었다. 이 얄궂은 주의력 결핍으로 내가 놓친 시간이 얼마일까, 이 시간만 살렸어도 어제의 등단 작가에는 내 이름이 걸려있었을 텐데. 결국에 이런 정신적 불편함 자체가 흔히 ‘달란트’라고 부르는 것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것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자기 위로를 하던 그는 우스운 듯 입을 삐쭉거리더니 드디어 손을 타자 위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