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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랑무 Sep 08. 2024

참빗


봄의 문턱, 마을 입구에 붉게 핀 동백이 서럽다.

冬栢은 겨울 끝자락에 봉오리를 품었다 이른 봄에 붉은 꽃을 터뜨린다. 

윤이 나 짙은 이파리 덕에 꽃은 더 붉다. 

동백기름을 짜 두고 참빗으로 가지런히 빗어내려 쪽을 찌던 외할머닌 고왔다.  


아침에 일어나 빗어 올리는 머리단장은 의식과도 같았다. 

마치 오늘 하루도 가지런하고 정돈된 삶을 살리라 다짐하는 듯한.

반백이 올백이 되고 숱이 줄어도 쪽머리는 한결같았다. 

딸아이 데리고 할머니 문병 갔을 때 비로소 당신의 의지가 꺾인 걸 보았다. 

귀밑에서 낯선 세상이 출렁거리는 걸 보았다. 






돌담 낀 정갈한 골목을 들어선다. 

굽은 골목을 지나면 초록 낮은 대문이 보인다. 

안거리와 밖거리가 마주 보며 서 있고, 밖거리 뒤쪽은 귤밭이다. 

외등 하나 밝힌 제삿날 밤쯤은 사촌들과 놀기에 딱 좋았다.

숨바꼭질은 귤밭 제외.  

   

精銅火爐 빨간 숯불에 딱 소리를 내며 익던 밤과 할머니가 내어주던 살구빛 비파는,

화로 앞에서 잠에 기울던 내겐 퍽 따뜻하고 나른한 기억으로 남았다. 

문명의 소리란 없이 두런두런 말소리만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나직해갈 때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화로 안을 뒤적일 때마다 잿빛가루 보란 듯이 발갛게  숯불이 커졌다 작아지고, 

비파 단물 한가득 손에 든 충만함은 '등 따시고 배부른' 잠을 불렀다.


두런두런 따듯한 온기에 추운 몸 데워지는 평화가 이런 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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