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것들을 오래 남겨두지 않으려 한다.
요즘 더욱 그렇다.
이십 년 이상은 족히 넘는 옷가지부터 자잘한 추억거리를 들고
이사를 여러 번 다니다 보니
짐만 된단 생각이 깊어져서이기도 해서.
맘 잡고 책상 앞에 앉으면
일 시작 전부터 정리모드다.
책상 위를 먼저 치우고,
보이지 않는 서랍 속이 궁금해 열었다가
괜한 상념에 잠기는 일도 다반사.
책상 속 물건들을 살핀다.
플로피 디스크 몇 장쯤 혹시 남아있나.
미처 못 쓴 녹화용 DVD만 서랍 구석에 있네.
그나마 남겨놓았던 건
빈 공책처럼 아마 언젠간 쓰겠지 했던 마음에서였을 거다,
플레이어는 벌써 가고 없는데.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결혼식비디오,
아이들 유치원 졸업식 사진 대신 새로웠던 CD,
몰래 저장해 두고 가끔 혼자 펼쳐보는 일기 같던
색색의 플로피 디스크,
추억 알맹이만 남았다.
usb도 머잖아 그리될 운명,
대용량 클라우드 저장도 가뿐하고,
챗봇이 음악도 만들고 글도 짓는 그런
인공지능 세상에선 어떤 알맹이가 남을까.
(사진 : 무료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