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황모를 꿈꾸지 않았다

뱃심 두둑한 본심

by 달랑무

세상이 두 바퀴로 굴러가는 곳이라면 나는 반평생 세상의 문 앞에서 서성였을 것이다. 하늘에서 누군가 날 보고 있다면 시작도 못 하고 머뭇거리는 나의 등을 밀어주었을지 모르지. 마치 가는 길에 마른 잎을 만나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해도 방향을 못 찾고 더듬는 개미처럼 헤매는 나의 뒤를. 혹시 또 모른다. 안타까운 마음에 마른 잎을 치워주었는데 복병 사라진 길에서 해방된 더듬이가 그만 놀라 애초의 마음을 잊고 다른 곳으로 줄행랑을 쳤을지도.


“아래를 보지 말고 앞을 봐야지. 엄마가 잡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앞을 봐.” 보조바퀴를 떼고 두 바퀴에 몸을 맡기는 게 무서워 딸은 자꾸만 아래를 본다. 예닐곱 살 딸들에게 바퀴를 가르쳤다. 자전거, 인라인. 쌩쌩 바람을 가르며 자유를 누리는 딸들이 흐뭇했다. 동생을 뒤에 태우고 무겁게 바퀴를 굴리는 언니나, 언니를 꼭 잡은 동생의 작은 손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쌀 배달하는 짐자전거를 빌려 학교운동장에서 자전거를 배운다. 묵직하고 무거운 자전거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무서움이 인다. 나의 뒤는 동생이 봐줬다. “내가 뒤에서 잡고 있으니까 누나는 앞을 봐” 군데군데 녹이 슨 남의 짐자전거에 올라 흔들흔들 페달을 밟았다. 눈높이가 높아진 것도 무서운데 눈과 손발이 콜라보를 이뤄야 하는 메커니즘은 온통 혼란스러웠다. 앞을 보면 손발이 안 보였고, 손발을 신경 쓰자니 중심이 무너졌다. 한 번쯤 나도 모르게 삼박자가 맞았는지 굴러가기 시작했는데 어디까지 가야 할지, 코너를 어떻게 만날지, 어떻게 멈출지 두서없는 생각이 마음을 흔들었다. 이거 어떻게 멈추지? 뒤를 봐주는 동생에게 물으며 곁눈질하는데 동생이 저만치 있다. 순간, 동생을 믿었던 마음의 끈이 탁 풀리며 나는 넘어졌다. 동생은 “아니, 가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어야지 반대로 하면 어떡해!”나를 조망하던 동생의 핀잔. 짐자전거에 깔린 내 몸은 시퍼런 멍이 들었고 그 후론 자전거를 만지지 않았다. 열여덟의 일이다.


딸들은 내가 자전거에 무참히 패배한 엄만 줄 몰랐다. 어린 딸들의 눈엔 잡히면 뭐든지 한다는 무적함대의 정신이 곧 엄만 줄 알았겠지. 오십 줄에 들어서야 가나다라 자전거를 배운다고 낑낑대는 걸 보기 전까진. 언젠간 배울 거라고 마음을 품은 지 삼십여 년. 박경리 선생은 <토지>에서 말했다. ‘개꼬리 삼 년, 흰털이 검정털 되겄소’ 했지만, 무려 나는 삼십 년 묵은, 감히 황모를 꿈꾸지 않았던 개꼬리다. 그렇지만 무거운 발을 굴려보기로 마음 먹었다. 묵을 만큼 묵은 개꼬린데다 여기서 더 있다간 바퀴를 볼 때마다 신 입맛만 다시는 여우까지 되겠기에 이참에 자전거 타는 사람이 되기로 된 결심을 했다. 나이 오십에 자전거 타는 사람이 되는 과정은 지난했다. 맨날 꼴찌에다 긴장 백 배. 드디어 나는 바퀴에서 해방되기에 이른다. 나의 인생은 자전거를 타기 전과 그 후로 나뉜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는 말이 멍이었을 때로부터 ‘시작을 맘먹으니 뭐라도 되긴 한다’는 늦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보냈다.


자전거 위 세상은 단순하지 않았다. 달리는 속도에는 그만큼의 저항이 있다는 것, 오르내리막의 경사에서는 기어를 변속해야 한다는 것, 달리기 시작하면 한 방향으로 계속 달리려는 힘을 가진 그를 제어도 해야 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균형과 중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삶이라는 길을 걸으며 힘들 땐 누가 내 손을 잡고 길을 알려주었으면 싶을 때도 많았다. 지금도 한 번씩은 이어지는 나의 방황에 누군가 마침표를 결정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난다. 약해지려는 마음이 날 때마다 앞을 보면서 간다. 겨울엔 여름에 무성했던 잎을 벗어 본심을 드러낸 나무를 보며 달린다. 계절 따라 다른 모습이라고 본심을 잃을까. 오히려 헐벗었을 때 무성함에 가렸던 그의 강한 심장을 보는 것이다. 뱃심 하난 두둑해서 눈바람도 끄덕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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