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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메리 Nov 18. 2023

5. 잠적했던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전세사기 피해기록 시리즈입니다



근저당 하나 없는 깨끗한 다세대 주택이라고 생각했고, 구름 같은 푹신한 신혼 생활을 기대했으나

갭투자 사기꾼에게 잡혀 전세사기를 속절없이 당하고, 청약 아파트에도 못 들어가게 생긴 지금의 신세.


청약에 당첨될 때만 하더라도 이제 새집에서 살 수 있다고 기뻐했는데

그 꿈은 못되고 늙은 사기꾼이 모두 가로채버리고 말았다.

정말 미래는 더 이상 없는 걸까?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집주인에게 끊임없이 연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집주인 쪽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엔 지인의 연락이었는데 어째서 소송을 했냐고, 잘못이 없다는 식이었다.

그리고 연락이 된 집주인은 말을 되는대로 쏘아붙였는데

잠적했던 그전 시절이 그나마 나았다고 착각할 정도로 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다.


"보증보험으로 돈을 받았으면 되는 걸! 가입도 안하고 뭐했나?!"


뻔뻔하게 대답하는 집주인의 주댕이에 그냥 펀치를 날리고 싶은 기분.


진작에 보증보험을 가입하려고 움직였지만, 깡통전세였기에 애초에 기회를 날렸다.

가입도 반려당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집주인을 회유하는 것뿐.


전세금반환 소송 이후 승소판결이 나고 재산조회를 진행해 보았지만

땡전 한 푼 없는 알그지 상태였다.

기대한 것과 달리. 집주인의 본인 집도 압류된 상태였고 건질 것 하나 없는 사람.


통장이나 유채자산에 압류를 넣을 순 있지만, 최저생계비 이하이면 압류도 못 하고

돈만 나가므로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라서 변호사님도 권유하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여러 번 말했다. 그 돈은 애초에 우리 것이고 돌려받아야는데

언제 줄 거냐고 추궁해 보아도 그 늙은이가 되풀이하는 대답은 이것 뿐이었다


"돌려줄 돈 없으니깐 그냥 경매로 받으세요!"


뭐 이런 뻔뻔한 대답이 있을까?

어차피 우리 돈이고 당신이 먹은 거 아니냐고, 이런 식으로 하면 형사고소 할 수밖에 없다니깐


"공갈협박 하고 있네! XX! 어차피 나는 4000만원가지고 변호사 선임했으니까,

해볼 테면 해보슈!"


화살을 우리에게 돌리는 인간 말종이었다.

4000만원이 있으면, 그 돈으로 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니까 '그건 내 마음이야' 라면서 약올리듯이 우리를 우롱했다


여태껏 집주인에게 사과 한 마디 받지도 못했고, 악독한 욕만 돌아왔을 뿐이다

탄원서를 받고 있다는 정보를 듣긴 했지만, 그게 사실이고

보증금을 돌려줄 생각 없이 교묘하게 법의 테두리를 벗어 날 노력만 하고 있다니 허탈했다.

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해지는 느낌만 들어서 우리는 집주인과 전화를 그만두었다.


남편과 차분히 다음 플랜을 의논해 보았다.


센터에서 피해자 인정을 받고 난 이후에 받는 혜택으로 경매 과정을 도움받을 수 있다.

남편 퇴근길에 부동산에 들러서 우리 집 시세 조회를 해보았다.

현재 8천~1억 사이. 애초에 1억 3천5백에 들어왔다니까 중개인은 놀라기만 하였다.

옆집은 1억에 집을 내놨었으나 아무도 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결국 우리가 셀프 낙찰 하고, 전세사기 피해자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 잔금을 치르든

뭘 하든 해결을 봐야 하고, 피해자끼리 형사고소를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그런데 심경이 복잡하고 속이 아파서 더 이상 머리도 굴러가지 않았다.

 

상상 속으로 그 사람을 수없이 죽이다가도 정말 죽어버릴까 봐 겁이 나서 번번이 그만두었다.

얼마나 무책임한 결말인가.

구걸하듯이 울면서 매달리며 돈을 달라고 소리치는 상상도 했지만,

그 상상 때문에 도리어 내 마음만 상처받을 뿐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눈물이 나서 울다가도 정신 차리자고 되뇌며 공부를 하는데

집중도 되지 않고 출구는 보이지 않고 음울하고 화딱지 나는 일상의 연속에 놓여있을 때

거의 다 나았다고 자신했던 우울증이 시커먼 그림자를 이끌고 성큼성큼 집 안으로

그리고 사악하게 웃으면서 내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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