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다
전세사기 피해기록 시리즈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건 형사고소뿐이었다. 집주인에게 돌려받을 수 있는 재산도 없고,
압류를 걸자니 그럴 만한 유체동산이 부족해서 생각해 낸 건 형사고소였다.
사람들을 기만하고 사기를 펼치는데 제대로, 법대로, 죗값을 치르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모임에서도 형사고소 이야기가 나왔고 이미 진행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도 더 미룰 수가 없어서 집과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형사고소를 진행하기로 했다.
경찰서에 가려니깐 오만 생각이 들었다.
전세사기 피해를 뉴스로 접할 때만 해도 남 일이라고 여겼었다.
겪어보니 집주인이 작정하고 사기를 벌이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약한 입장에서
완전히 안심할 수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태평했을까? 아쉬움과 후회가 많이 남았다.
경찰서에 방문했을 때 그 위용에 압도되어 있었다.
바삐 움직이는 경찰들과 갖가지 이유로 방문하여 설움을 토로하는 방문객 사이에서 소란스럽고 무서웠지만 우리는 집주인의 아름다운 감방생활을 그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 날, 아무나 경찰서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방문객만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이 따로 있고 교통과에서 접수를 한다는 기막힌 사실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딱히 경찰서에 갈 일도 없고 경찰과 대면할 일도 더더욱 없으니 모를 만도 했다.
형사고소를 접수할 수 있는 곳은 2층에 따로 있었고, 번호표를 뽑고 어색하게 앉아있다가
차례가 되어서 접수원을 마주했다. 접수원은 우리에게 고소장을 건네주었고 양식에 알 맞게
작성하라고 안내했는데 고소 이유를 육하원칙으로 상세하게 쓰라고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고소인 성명과 주소, 피고소인 성명, 고소 취지 칸들을 하나하나 채우고 나서 제일 중요한
고소 이유를 육하원칙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심장이 쿵쿵 뛰었지만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글을 쓰는 중에 접수실이 제법 소란스러웠다. 옆을 보니 사기를 당한 할머니 한 분이 억울하여
분통을 터뜨리고 계셨는데, 듣자면 지인에게 거액을 빌려주었지만 들고 튀었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그녀의 곡소리를 듣고 있자니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내 일처럼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고소장을 제출하자 접수원은 그것을 복사하고는 담당 수사관에게서 따로 연락이 갈 것이라고,
다른 날 관할 서에 출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셨다.
다수의 피해자가 생긴 전세사기 형태라서 타 피해자분도 고소를 진행했을 때 우리의 고소장과 묶여서
같이 진행이 되느냐고 물어보니 피해자가 같아도 고소 진행 방식이 서마다 달라서 아마 따로따로 진행이
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이는 추측이나 예상이라서 확실하진 않았다.
경찰서에 나왔을 때 이미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아 사위가 어둑했다.
가을이 시나브로 저물고 겨울이 됐다는 체감이 확 들었다. 추위에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아직 해결된 건 없지만 이상하게도 속이 후련한 느낌이었다.
집에 불행이 찾아왔지만, 무너지지 않고 우리의 계획대로 잘해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행운이 남아있었다. 그건 나를 믿어주는 가족과 분노에 불타는 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