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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트로미스 Feb 17. 2022

청명한 하늘 아래 커피 한 봉지

우리 마을 산책

커피 한 봉지 사들고 가게 문을 밀고 나올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기분에 휩싸였다. ‘그렇게 좋으냐?’하고 내게 반문하고 말았다. 갖고 싶은 것을 얻어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인 건가, 아니면 오랜만에 뵙는, 말이 없는 사장님이 다른 때보다 한 톤 높여 길게 인사를 해주신 덕분인가? 어쨌든 오늘도 커피다운 커피를 못 마실까 봐, 갈 때마다 닫혀 있던 문이 오늘도 내게 열리지 않을까 봐 걱정하던 차였다. 아저씨가 별일 없어 보여 다행이고, 6개월 만에 이 집 커피를 마시게 됐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이 가게는 내게 아주 소중하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내 생활권은 집 주변으로 한정됐다. 가장 큰 걱정은 커피였다. 학교 근처에 있는 단골 가게에 가지 못하면서, 입맛에 맞는 커피를 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맛있는 커피를 마시겠다는 내 욕망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한정하여 커피 볶는 집을 찾아 헤맸다. 원래 이 집은 양갱으로 유명한 집이다. 블로그에서 커피도 맛있다는 평을 보고 확인 차 찾아갔고, 뜻밖에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내 마음속에 외침이 일어났다. “심봤다.” 때로는 운동 삼아, 때로는 마음을 달래려고, 산책하는 개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그 후로 1년 정도 그곳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가게 문에 커튼이 내려지고, 손잡이가 꿈쩍도 않는 것이었다. 전화를 해도 아저씨와는 통화를 할 수 없으니, 서서히 가지 않게 되었다. 괜히 화도 나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커피에 대한 나의 욕구를 해결해 줄 장소를 또 찾아야 한다는 것이 더 힘들었던 같다. 지인들은 인터넷으로 커피를 주문하라고 하는데, 좀체 미덥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대학 주변으로 커피를 찾으러 갔다. 그렇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드리운 어두움이 그곳이라고 비켜 갈 리 없었다. 간혹 커피를 샀던 카페를 찾아갔더니 주인이 바뀌어, 더 이상 커피 원두를 팔지 않는다고 하고, 원두로 유명했던 가게는 불 꺼진 채 좀체 문을 열지 않는다. 아마도 이 어려운 시기를 버티지 못한 모양이다. 결국 찾아간 곳은 원두가 좀 더 비싼 가게였다. 질 좋은 원두인 것 같긴 한데 뭔가 쓸데없이 디테일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이 가게는 버텨 낸 모양이다. 원두가 더 비싼 가게도 있었지만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간혹 박물관이나 학교를 갈 때마다 근처의 원두 가게에서 커피를 사 오기도 했지만, 코로나19로 멀리 나가는 일이 좀처럼 없으니, 항상 찾아가던 소중한 가게가 아쉽지 않을 리 없다.      

2월에 이렇게 추운 날이 있었나 싶었다. 그래도 태양이 중천에 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다.  한 낮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가게로 찾아갈 마음이 들었지만, 걱정이 앞섰다. 커튼이 걷힌 것을 보았을 때, 창밖으로 불빛이 비춰 나온 것을 보았을 때, 반가움에 마스크 사이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문손잡이를 돌려 가게로 들어섰다. 여느 때처럼 별 말이 없이 커피를 주문하고, 늘 하던 대로 양갱 하나를 더 넣어주신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더니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하고 인사를 건네신다. 괜히 쑥스러워 눈도 못 마주쳤다. 아저씨도 내가 반가웠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안도가 밀려왔다.       

유난히 추운 날이라 파란 하늘이 더 푸르러 나를 감동시킨다. 얼음 사이로 졸졸 흐르는 개천의 풍경은 생기가 넘친다. 봄이 오려나보다. 키 큰 하얀 새며, 청둥오리들이 물 위를 떠돌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평화롭다. 눈과 입가에 숨길 수 없는 웃음이 번진다. 북한산 쪽으로 이어지는 개천 길을 바라보다가 더 걸을까 생각도 했지만 곧바로 돌아섰다. 얼른 집으로 가서 커피를 마셔야겠다. 내 커피 사랑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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