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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포트 May 01. 2024

재택 프리랜서의 하루는 이상하게 간다

근로자의 날에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프리랜서니까요. 저는 특정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도, 함께 일히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물론, 일부 업무에는 마감기한도 있고, 진행되고 있는 일에 차질이 없게 해야 하기에 선택 권한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한다면 대부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꽤 자유로워 보이는 직업이지요.


제 많고 많은 페르소나 중에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번역가'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번역가'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백수'라는 친구도 함께 붙어있어요. 옆에 아주 조그마하게요. 한 마디로 말해서 일이 없을 때가 많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는데, 먼저 프리랜서에게 '일'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제가 방금 일이 없다고 했을 때, 여기서 '일'이란 저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을 뜻한 것이었어요. 그러나 저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이 없다고 해서 '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생각보다 저는 많은 '일'을 하고 있거든요. 예를 한 번 들어볼게요. 저는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고 난 뒤부터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제법 진지하게 하고 있어요. 주로 명상과 책을 통해서 말이죠. 그리고 글도 쓴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조금 가벼운 일상을 쓰기도 하고요, 지금 이 글처럼 브런치에 제법 진지한 이야기도 담아낸답니다. 이렇게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는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창의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법들을 많이 시도해 보고 있어요. 사실 예전에는 제 안에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많은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무엇이 계기였을까요, 퇴사가 계기였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어떠한 계기를 지난 다음부터 저는 예전의 제 모습과 비교해서 180도…는 아니더라도 한.. 120도 정도 달라진 것 같아요. 나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의력이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키는 일만 할 줄 아는 사람인지 알았는데, 그리고 그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재능과는 상관없이)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내 안의 것들을 밖으로 내보이는 과정을 저는 꽤 많이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들 다 쉬는(공무원 분들 제외) 근로자의 날에 무엇을 했냐고요? 먼저,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한 다음 명상을 했어요.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책을 읽었습니다. 이후에는 처리할 일거리가 있어 잠깐 하고요. 남들이 점심을 먹는 시간 조금 더 지나서 3시쯤에는 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난 다음에는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했어요. 자주 가는 산책길에 귀여운 강아지 두 마리가 있어서 같이 놀다가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카시아 나무를 보러 잠깐 들렀습니다. 아카시아 나무에게 볼일이 있었거든요. 저는 나무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직 덜 핀 아카시아 꽃 열송이 정도를 땄어요. 튀김을 해 먹으려고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따온 꽃송이를 식초물에 담가 두고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번역가'이기에 거래처를 확보하는 일을 해야 했거든요. 그 일을 하다가 조금 지친 저는, 브런치에 접속해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어요. 참 별 일 없지만 별 게 많은 하루이지요?


이대로 제 업무가 끝난다면 좋겠지만, 아직 저에겐 '할 일'이 더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아카시아 꽃튀김과 어머니께서 사 오신 삼겹살을 저녁밥으로 먹고 난 다음에,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올 예정이에요. 네, 맞습니다. 저는 프리랜서니까요. 끝났다 생각할때까지 끝내지 않습니다. 제 일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정하죠.


식초물에 담가 둔 아카시아 꽃송이


갓 딴 아카시아 꽃송이


오늘 간식을 제공해 준 고마운 아카시아 나무


내 산책길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는 강아지 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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