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여행기] 02-그래서 내 짐은요?

by 강라헬

도착했다.

환승지인 모스크바에서 1시간 50분이라는 대기 시간이 무색하게도, 비행기는 모든 승객 탑승을 확인하자마자 예정보다 20분이나 일찍 이륙했다.

비행기가 전속력으로 날아가는 듯했고, 나는 처음 느껴보는 구토감이 치밀어 올랐다.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고, 식은땀이 흘렀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몸을 일으켰다가, 결국 제일 뒷좌석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조금 살 것 같다.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비행을 했고,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는 환승까지 3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원래 환승 시간보다 1시간 10분이 더 생긴 거다. 환승 게이트까지는 사실상 공항의 끝과 끝.

3시간이나 남았으니 여유를 부려보려는데, 이상하게도 나만 빼고 모두가 내달리고 있었다. 왜일까.

저 사람들은 누가 봐도 '빨리빨리'와 '눈치' DNA가 탑재된 한국인들이 아닌가. 나는 그들을 믿고 함께, 신나게 내달렸다. ​그러나 그 무리는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순간 너무나 당황했지만 표지판과 블로그에서 봤던 기억을 더듬으며 차근히 길을 찾아갔다. 그런데 애매한 미로 같은 길과 방향 지시판은 자꾸 비상구 같은 곳으로 안내하는 통에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또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때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무작정 뒤따라갔더니, 다행히도 환승 구역이 나왔다.

​'휴, 다행이다.'

​한시름 놓으니 긴장이 풀린다. 이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지연되거나 연착되지 않기를, 그렇게 다시 한번 바라고 또 빌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비행기는 무사히 모스크바 상공을 떠나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오전 9시.

드디어 나 홀로 해외여행의 서막이 올랐다.

​말도 하나 안 통하는 곳에 왔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어차피 너희나 나나 영어권이 아니니 서로 영어 못한다고 욕하겠니… 여차하면 번역기 돌리면 되지 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생각으로 왔지만, 떨리는 순간은 있었다. 바로 입국 심사.

준비한 영어 문장을 다시 한번 외우듯 읊조리며 심사관 앞에 섰다. 여권을 보여주자마자 심사관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바로 통과란다.

​'어랏? 끝인가? 왜죠?'

​맞다. 끝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관문을 싱겁게 통과하고, 공항에서의 마지막 관문인 수하물 찾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 번호가 뜨고 문이 열렸다. 하나씩 떨어지는 캐리어를 보며 내 것은 언제 나오나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있어도, 문이 닫힐 때까지 있어도 나의 캐리어는 보이지 않았다.


​"설마……. 에이, 그럴 리가 없지……."


​불안함에 들숨과 날숨이 가빠진다.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기 시작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총 세 개. 1번 구역에 없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으로 다리를 옮겼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

2번 구역에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고 3번 구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둥 뒤, 이미 멈춰 버린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나의 피치빛 캐리어가 '까꿍!' 하듯 나를 반기고 있었다.


​'오예! 감사합니다!'


​짜릿했다. 흥분으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콧방울이 벌렁거렸다.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려 있었다. 둠칫둠칫, 기쁨의 어깨춤을 추며 나는 즉시 어깨를 짓누르던 짐들을 캐리어에 욱여넣었다.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음, 이 냄새!

​부다페스트의 공기였다. 잘 도착했다는 기쁨과 이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즐거움을 마음속으로 포효하며, 버스표를 끊었다. 부다페스트의 버스 교통권은 공항 밖에 있는 자판기에서 구매할 수 있다. 언어를 영국 국기로 선택하고, 지시 사항에 따라 표를 뽑았다. 마치 뽑기처럼 작고 길쭉한 종이가 나오는데, 버스에 타서 입구에 있는 펀칭 기계에 넣어 펀칭하면 된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