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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Oct 30. 2024

버리지 못한 오래된 책들

아끼다 똥 되면 내다 버리려나


뒷베란다에 나란에 얹힌 아주 오래된 책들, 가만히 들여다본다. 버려야 하나 그대로 둬야 하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지가 어언 이삼십 년이 넘었다. 선택 장애가 심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주 오래 묵은 것들인데 큰 놈 방에서 꺼내 박스에 넣어두었다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장소만 옮겨놓은 지가 이미 오래다. 아들은 그걸 보고 또 한 마디 한다. 엄마 없을 때 처분할 거라고. 잡히면 우찌 되는 줄 알지!

 

 그러려면 며칠이 걸릴 텐데. 아무리 장골이라도 한꺼번에 들고나가기 힘들 것이고 수레로 옮긴다 해도 몇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하니 그것도 쉽지 않을 테고. 아무튼 여러 생각이 들지만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내 성격과 닮아 화가 난다.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쌓여갈수록 화도 쌓여간다.


 오래된 것들이 다만 좋은 것만은 아니고

 오래된 것들이 다만 나쁜 것만도 아니다. 얼마나 유용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 그러나 저것이 과연 유용할 가치가 있을까 묻곤 한다. 그렇다고 버린 들 잘했다고 손뼉 칠 일일까. 거기에 그냥 가만히 둬도 걸리적거리거나 불편한 것도 아닌데, 굳이 , 그래서 지금까지 저렇게 꿋꿋이 버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버리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 하나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건지도 모른다.


 비닐 같은 캠핑 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것을 다시 꺼냈다. 곰팡이가 생기고 썩으면 어쩌나 하고. 책벌레는 생기는 것을 보았다. 도서관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빌려왔더니 캐캐묵은 곰팡내에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아주 작은 벌레를 본 적이 있다. 저걸 어쩌나. 에프킬라를 뿌렸다. 빈대 하나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었다. 그랬던 적도 있었다.


 혹 책벌레 같은 것이 생길까 봐 통풍을 위해 다시 꺼냈다. 벽에 바짝 붙여 세워두고 넘어지지 않게 꾸욱 눌렀다. 장식품도 아니고 보물도 아니고 가보는 더더욱 아니다. 기증해도 받아주지 않는 그냥 캐캐묵은 쓰레기일 뿐. 그럼에도 무엇 때문인지 시원하게 버리지 못하는 이 불편한 집착증. 어이하리.


 예전 학교 다닐 때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길에서 산 책들도 많다. 그때는 한 권에 천 원씩 하는 아우렐리우스 명상록도 사고 소크라테스의 변명도 사고 고리끼의 어머니도 샀더랬다. 아버지한테 사전 산다, 문제지 산다 거짓말 지껄여대며 받아낸 돈으로 샀다. 알고도 속아주시던 아버지, 책을 산다면 빚을 내서라도 사 주셨던,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라며 스무 살 무렵 내 책을 훔쳐간 도둑을 나쁜 놈이 아니라 말씀하시던 아버지였다.


 지금은 저런 책들을 거금을 주고도 못 살 거 같은 감히 불안한 예감에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모를 일. 안 버린 게 잘한 일이라고 아직은 손뼉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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