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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함다행 Jul 13. 2022

나는 내 아이가 무서운 엄마였습니다.(3)

적어도 아이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사실 병원에서 돌아와서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한 2주 정도의 기억이 흐릿하죠. 

분명 매주 아이와 정신과 상담을 가고, 약을 받아오기도 하고, 바지런히 움직였지만, 기억은 흐릿합니다. 아마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가장 오래 노력했다고 믿었던 육아가 실패했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 아이를 내가 아프게 만들었으니,
 적어도 아픈 걸 낫게는 해줘야지. 

분명 태어날 때 내 아이는 잘 웃고, 뭐든 궁금해하고, 무언가를 요구하고 싶을 땐 요구하고, 그러면서도 돌진할 수 있는 힘이 있던 아이였습니다. 눈만 마주쳐도 빵긋 빵긋 웃던 그 아이를  무표정하고, 남들이 자기를 괴롭혀도 그냥 자기 안으로 숨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건 바로 저였습니다.  제가 제 아이를 무서워하면서, 나 자신을 망가졌다고 폐품 취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난 망가졌지만 넌 망가지지 말라며 아득바득 욕심을 부렸던 시간들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죠. 

사실 머릿속은 엄청 복잡했습니다. 

우선 마음이 많이 아픈 따님의 응급조치는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죠. 정신과를 계속 다닐 것인가, 아니면 심리치료를 할 것인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제가 따님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적어도 제가 제대로 된 엄마의 자리로 갈 때까지, 아이가 지지받고, 응원받으며 맘을 터놓을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담시간이 좀 더 긴 심리치료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정신과보다는 상담 시간도 길고 아이가 좋아하는 미술이나 행동으로 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그다음엔 어떤 선생을 만날 것인가 였습니다. 

행동이 크지 않고, 조용조용하며 인내심이 있었으면 좋겠었습니다. 내 아이는 맘을 여는데 오래 걸리는 아이였으니까요. 그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주실 분이었으면 좋겠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원하는 것과, 아이의 성향을 가감 없이 체크하면서 하나하나 정해나갔습니다.  내가 알던 내 아이를 자꾸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의 판단은 틀릴 수 있으니까요. 그저 지금 내 아이 모습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게 가장 먼저니까요. 

 그렇게 아이의 문제가 일단락되고 나서는 제가 문제가 되더군요. 제가 제대로 된 엄마가 되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고민을 한참 하면서 전 작은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는 것을. 


 고백하자면 전 평생 미루고 미루었던 일이 있습니다. 

제가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사건과 그 당사자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일에 대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늘 미루고 미뤘습니다.  왜냐면 별 의미 없다 생각했거든요. 감정을 분출한다고 해서 과거가 뿅~! 바뀌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잘 살핀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어차피 있었던 과거, 그냥 묻어두고 내버려두면 멀쩡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아파서 피를 철철 흘리는데 어떻게 아이를 제대로 키울까 싶더군요.  그래서 저를 먼저 돌봐주기로 했습니다. 


사실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지독하게 큰 감정들이 저를 묶고 있을 것 같았고, 어마어마한 상처들이 감당이 안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몇십 년간 묵힌 감정이고 몇십 년간 돌아보지 않았던 곳인데 어떻게 가야 할지, 얼마나 봐줘야 할지 예측도 안되고, 걱정되었습니다. 제가 그 상처와 감정에 압도당할까 봐 겁이 났죠. 그래서 늘 엄청난 쇠사슬로 꽁꽁 묶어두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 봉인을 풀 때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 봉인을 풀지 않는다면, 내 아이에게 제대로 된 부모가 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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