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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함다행 Dec 01. 2022

나밖에 들어가지 않는 방

인생이 늘 암울하지 않은 이유


가질 수 없는 보물     

어릴 때 오락실에서 하는 게임들은 늘 즐거웠다. 신세계가 펼쳐진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 혹은 심부름하고 강탈하듯 받은 동전을 모아 오락실에 가려고 애썼다. 비행기 게임을 하건, 격투 게임을 하건 오락을 좋아했던 것에 비하면 게임 실력은 안 좋은 편이었다. 왜냐면 새로운 게임이 있으면 그 게임을 건드려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그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 파고드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었다. 비행기 게임도 왕까지 가기 위해서 적 비행기의 패턴을 외우는 친구들이 늘 신기했다. 격투 게임도 스킬마다 다 분석해서 이 캐릭터의 이 기술은 저 캐릭터에게 잘 먹혀 뭐 이런 걸 애들끼리 떠들고 있으면 난 늘 '저걸 기억하는 게 신기하다. 저렇게 철저하게 파고들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이런 성향은 커서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늘 중간만 하곤 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중간이나 가면 다행이었다. 음악은 듣는 걸 너무 좋아해서 늘 끼고 살았지만, 제목을 외우지 않아서 노래방 가면 늘 탬버린 담당이었다. 왜 노래를 안 부르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목이 아파서 그렇다고 말하지만, 아는 노래 가사가 나오면 가장 먼저 흥얼거리곤 했다. 게임에서는 누군가와 합을 맞추려면 캐릭터의 스킬을 분석하고 연습해야 했기에 그냥 늘 솔로 플레이했다. 솔로 플레이가 불가능한 게임은 그냥 접었다.

온갖 취미에 흥미를 느끼면 시작했었다. 그래서 수많은 재료가 모여있는 방이 우리 집에는 있다. 가족들 그 누구도 들어가지 않고, 나도 늘 문을 닫아놓는 공간이다. 왜냐면 나에게 이방은 정리에 취약한데 장비 욕심은 있는 나의 욕심이 너무 확실하게 느껴지는 공간이자 나의 정신 없는,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그런 끈기 없음의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 모든 것은 내가 만족할 만큼만 하고 끝이었다. 남들보다 잘하는 사람들은 끈기 있게 무언가를 파고들었고, 그게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끈기에 집착하다     

그래서 끈기에 집착했었다. 내가 뭔가 쉽게 그만둘 때마다, 스스로 호된 비난을 자신에게 날렸다. 그리고 그 집착은 아이를 낳고 나서도 지속되었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끈기 없는 행동을 하면 눈에 거슬렸다. 무언가 꾸준히 하지 못하는 것 같으면 아이를 계속 시키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었다.     

6살 때 아이는 1년여 다니던 태권도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태권도 관장님께 여쭤보니 첫 고비라고 잘 넘기고 다니게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2달 가까이 매일매일 꼬시고 또 꼬셨다. 나중에는 나도 지치고 짜증이 올라왔다. 그런데도 아이가 첫 고비에서부터 그만두면 끈기를 배울 수 없을 것 같아서 매일 화내며 꼬시는 이상한 행동을 하곤 했다. 아이는 점점 태권도라는 말에 질려갔고, 나 역시 질리고 있었다. 그때 날 구원해준 건 다니던 부모 교육 선생님이셨다.    

 

끈기는 불안의 다른 말     

아이와의 관계가 태권도로 인해서 점점 흔들리는 것이 걱정되어서 부모 교육 선생님에게 여쭤봤다.

"두 달간 딸 태권도 보내느라 매일매일 꼬시고 설득하다 보니 너무 지쳐요"

"어머니는 태권도로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끈기요"

"그러면 끈기가 목적이고 태권도가 도구인 건데, 끈기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태권도뿐인가요? "     

선생님의 그 말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끈기를 가르치는 도구가 태권도라면, 태권도가 아닌 다른 것으로도 아이에게 끈기를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달은 그날 곧바로 집에 가서 따님에게 태권도에 관해서 이야기한 끝에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계속 끈기와 관련된 문제에 지극히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태권도는 그만둘 수 있었지만, 조금만 끈기가 없어 보이면 불안함이 올라왔다. 스스로 끈기는 다른 도구를 써서 가르칠 수 있다고 스스로 안심시켰지만, 늘 불안하고 예민했었다. 결국 끈기가 나의 불안을 자꾸 건드리는 이유를 찾고 싶어졌다.    

 

과연 그것은 누구의 말인가요?     

끈기라는 문제가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끈기는 나에게 불안감이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끈기가 없으면 안 되는 거야~" 라고 반복적으로 외치는 것 같았다. 그 외침이 어디서 나오는지 찾고 찾고 또 찾는 지루한 과정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그날도 우리 딸이 나의 불안을 건드린 날이었다. 반복적으로 불안이 건드려지는 끈기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던 그날 아무도 집에 없는 낮에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틀려고 컴을 켰었다.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에 복잡해진 생각들을 좀 풀어놓으려고 컴 앞에 딱 앉았는데, 갑자기 기억 속 한목소리가 올라왔다.

"아휴... 우리 둘째는 다 좋은데 끈기가 부족해서 걱정이야. 나중에 밥 벌어 먹고살까 몰라...""사람은 한 우물을 파야 해. 안 그러면 성공 못해~"

"넌 왜 자꾸 이렇게 변덕스럽니? 애가 끈기가 없어."

갑자기 몰아치듯 들리는 그 목소리는 나의 부모님들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점점 작아지려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부끄럽고, 끈기가 없어서 나중에 밥 벌어 먹고살지 못하면 어쩌나 라는 불안과 함께 끈기 없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껴안고 낑낑대는 어린 내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이는 너무너무 안쓰러웠다. 애가 호기심이 많을 수도 있고, 기질적으로 새로움 추구가 강할 수 있는 것인데, 왜 그걸 부족하게만 봤을까, 너무너무 속상해졌다. 그래서 상상 속에서 그 부끄러워하는 아이를 찾아갔다. 그 아이는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이불속에서 눈만 보이고 있었다. 그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주 부끄러웠어? 나중에 밥 벌어먹지 못할까 봐 겁났구나?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내가 장담할 수 있어. 너 잘살 거야. 왜냐면 살아봤거든. 너 잘살 거야. 넌 끈기가 없는 게 아니고, 새로움 추구가 강한, 호기심이 진짜 강한 아이야. 그래서 넌 취미도 되게 다양하고, 뭐든 궁금한 건 꼭 해내고 말더라. 그러니까 너 지금도 충분해. 괜찮아."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안아주는 상상을 하고 눈을 떠보니, 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결국은 해낸다.     

정말 신기했던 건 그 부끄러워하는 아이를 만난 경험 뒤로, 끈기라는 문제가 훨씬 덜 거슬리게 되었다. 끈기가 불안을 건드리는 방아쇠가 되는 빈도수가 훨씬 줄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평화를 찾았다.

 그리고 우리 딸은 6살 때 그만둔 태권도를 7살 12월에 다시 들어가서 중학생인 지금 3품을 따고 4품에 도전 중이다. 우리 딸이 태권도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내가 그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4, 5학년 때 3품 땄을 거 아냐~! 완전 아까워!!! 그걸 깨닫고 나니 사실 힘들 때도 있거든? 그런데 그때마다 내가 그만둬서 얻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참게 되더라. 꼭 4품까지 딸 거야!"

결국 아이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끈기를 배웠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끈기 없는 사람이 아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끈기 역시 한 분야에서 이것에 호기심 가졌다가 저것에 호기심을 가지면서 얼마든지 한 우물을 팔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서히 믿기 시작했다.     

내 부모님은 내가 끈기가 있길 원해서 혼내셨지만, 나는 끈기를 거기서 배우지 못한 채 오히려 공포만 배웠다. 내 딸은 끈기는 다른 것으로도 가르칠 수 있다며 포기했던 태권도로 끈기를 배우고 있다. 어쩌면 삶이란 이래서 재미있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원한다고 가르칠 수 있지 않고, 내가 원치 않는다 해서 상대방이 얻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각자의 속도와 방식에 맞춰서 각자 얻어야 할 때 얻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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