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Q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nderer Oct 29. 2024

어른들의 대화법이란

영화 '히트맨'

 나는 현대사회에서 누릴 수 있게 된 현대인들만의 유희가 역할극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시대에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고, 어디네 몇 째 정도로 신원 확인이 확실한 시대였으니까. 타고난 신분으로만 살아가는 일이 허용되었다. 역할극을 할 수 있던 건 정해진 직업으로 특정한 사람들만 할 수 있었고, 특정한 장소에서만 허용되던 일이었다. 본격적으로 다른 인물로 살아볼 수 있게 된 지가 얼마 안 됐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수많은 캐릭터를 접한다. 미디어가 다음 세대의 인물을 점지한다. 매 순간 새로운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우리는 그들의 행동 양식을 모방한다. 새 거는 항상 재밌다. 우리는 심지어 가상 인물의 태도도 모방할 수 있다. 역할극을 즐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윤리적으로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연기를 통해 몇 배의 삶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할극은 수많은 오락 중에서도 가장 큰 만족감을 주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페르소나를 만들고 그에 맞게 연기하는 것. 우리가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일터도 그렇다. 실제 하는 일의 경중과는 별개로 말이다.


 게리 존슨은 대학 교수다. 뉴올리언스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동시에 부업으로 가짜 청부살인업자로 활동하기도 한다. 안다. 생뚱맞은 이야기다. '가짜 청부살인업자'라니? 실력이 없다고 가짜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게리의 부업은 시간제 잠복 수사관 일이다. 청부살인을 의뢰하려는 의뢰인들에게 접근해 살인을 교사하는 그 순간을 증거로 수집하는 일을 한다. 이전까지는 그런 일을 보조하는 위치였지만 일이 생겨서 직접 청부살인업자 연기를 하게 된다. 걱정과 한숨으로 출발했지만 게리는 생각보다 연기를 잘했다. 그는 온갖 범죄 정보를 이야기하면서 의뢰인의 마음을 흔든다. 분장까지 철저하게 해 속을 수밖에 없게끔 구상한다. 의뢰인들은 자연스럽게 돈봉투를 내밀면서 자신이 이 일에 진심임을 터놓는다.


 대개 살인 청부를 의뢰하는 이들은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영화는 우선 이런 킬러를 고용하는 일 따위는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의뢰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개의 이유로 소통에 실패한 인간들이다. 킬러를 다른 이름으로 '해결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지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그 이름은 정확하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인생이 꼬여있고 이걸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니까 핵심은 갈등이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대화를 해볼 수 있지 않았겠냐는 물음다. 이게 성숙한 사회의 표상이니까. 사회에서 배제할 것이 아니라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식은 현대적인 관념이다. 적어도 지금은 벗어날 수 없는 신분과 계급을 정하는 일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는 아니니까. 동등한 위치에서의 소통이 대화다. 그러니 제대로 된 대화를 하게 된 지는 그리 오랜 되지 않았다.


 영화에서 핵심적인 소재로 활용하는 청부살인이라는 행위는 배제와 격리의 알레고리다. 가짜 청부살인업자, 범죄를 인정하게 만들어 증거로 활용하는 전 과정은 결국에는 대화를 회피한 인간들이 택하는 비겁한 방법이라는 논조가 깔려있다. 이런 독특한 관점을 통해 이야기의 전개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한편 이렇게 역할극을 즐기던 게리는 큰 딜레마에 처한다. 일로 만난 사들 중에서 매력적인 의뢰인을 발견한다. 의뢰를 사주하게 해야 했지만, 게리는 의뢰인이 청부살인을 사주하지 못하게 막아서고 위장 신분으로 데이트를 즐긴다. 대학교에서 재미없는 주제로 강의하는 게리는 별로지만 잭은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잭으로 활동하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게리의 삶은 줄어든다. 그럼에도 그 연기를 포기할 수 없는 건 평소와 다른 반응, 호의와 관심사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리는 영화에서 안경을 쓰고 나온다. 멋진 페르소나인 잭으로 변신할 때는 안경을 벗고, 스타일을 바꾼다. 점차 게리의 상태일 때도 안경을 벗기 시작하면서 그는 바뀌기 시작한다.  순간을 잘 집중해 보면 게리의 본심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보인다.


 굉장히 오랜만에 나온 어른들의 영화 같다. 적당히 의도를 숨기고 대화로 대부분의 상황을 풀어나간다. 자연스러운 욕망의 표출을 전제하지만 대화를 기반으로 깔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접근이다. 그러다 보니 사건이 훨씬 더 일상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이런 분위기는 감독인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주종목이기도 하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그냥 사회에서 지워버릴 수 없다. 도저히 다른 사회 구성원과 어울릴 수 없을 때나 사회와의 격리조치가 취해진다. 교도소라는 섬으로. 청부살인이라는 방식은 그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중요한 건 커뮤니티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우린 어떤 식으로 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냐는 질문 아닐까?


사진 출처 : TMDB '히트맨'

매거진의 이전글 모래와 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