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
고작 1년 중 1개월이지만 다사다난한 시간이었다. 연말의 홀가분함도, 새해라는 산뜻함도 없이 무기력하게 해를 넘겼다. 사건을 마주하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왜 우리는 이토록 치명적으로 실패했을까? 개인의 무능이 공동의 실패로 이어졌다. 공동의 실패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불건강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실패를 쳐다보지 못한다. 실패한 이들은 실패를 반성하기보다는 외면한다.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오만,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무지가 뒤섞여 지독한 논리를 만들어낸다.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자신만의 논리. 고립된 인간은 더욱 격렬하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전시한다.
우리는 소통에 실패했다. 명백한 사실관계의 전달이 호오의 문제가 되는 순간, 우리는 소통에 실패한다. 사실을 취사선택해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 나눈 대화의 모든 걸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소통은 정확한 기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의미 전달은 몇 가지 누락되는 내용이 있어도 온전히 이뤄진다. 문제는 공상의 논리를 대화에 들이미는 자세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갓난아이 때부터 배우는 게 소통이다. 부모님은 울음소리만 듣고도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알아챈다. 소통은 가능하다. 명확하지 않아도 맥락으로 정보를 파악해서 의미가 전달되게 하는 것. 표현만으로는 부족하고 전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조건이 맞으면 우린 외계인과도 소통할 수 있다.
지구에 외계인이 도착했다. 12개의 외계 비행 물체는 미국,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 상공에 등장해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독특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이 물체(헵타포드)는 특정한 시간 동안 정해진 방식으로만 소통한다. 언어학자 루이스는 미군의 요청을 받아 비밀리에 헵타포드와 접촉한다. 여기에는 물리학자인 이안도 동행한다. 둘은 언어와 물리학으로 체계를 분석해 헵타포드와 소통한다. 전 지구인이 그들에게 묻고 싶은 핵심 질문은 하나다. '당신들이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 그렇지만 이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질문의 개념부터 의도의 이해, 의식적인 선택인지 아니면 본능인지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가 의도한 바를 정확하게 전달해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역은 치명적이다. 저 미지의 존재들이 지구 침략에 앞서 도착한 정찰병인지, 친선을 위해 다가온 사절단인지 알 수 없다. 인간의 이해 범주를 벗어난 모양은 위압감을 준다. 그렇기에 한층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공포라는 감정에 오래 휘둘리면 본래 목적인 소통이 흐릿해지게 되니까. 더불어 언어를 전달하는 방식 또한 문제가 된다. 만약 체스를 통해 외계인들이 언어를 배우게 된다면 승리와 패배, 전투라는 개념을 습득할 것이 아닌가.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효율적으로 소통해 목적과 다음 행동을 예상해야 했다. 한시가 바쁜 상황 속에서 피로가 누적된 루이스는 무언가를 보게 된다.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바꾼다. 영화 속에서 짤막하게 언급되는 사피어-워프의 이론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잇는 지점에 있다. 연출적으로도 이를 훌륭하게 풀어냈다. 단지 기술적인 장치라고 생각했던 묘사가 오히려 변화한 사고체계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에 전율이 인다. 이보다 더 직관적인 표현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다. 언어가 사고체계에 영향을 준다는 전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든다. 현재의 내 모습은 내가 쌓아 올린 나의 말과 글이다. 이 사실은 더없이 공포스럽다. 행적 전부를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저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순간 마다 나는 고통스럽다.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언제나 자신의 단어들을 힘겨워한다.
조건이 되면 우린 외계인과도 무리 없이 소통할 수 있다.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상황을 토대로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단어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도구가 어떤 상황에서는 무기로 해석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통을 위한 대화의 해석에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는 사소한 조건이다. '미지 생명체와의 조우'라는 사안은 금방이라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지기 좋았다. 같은 도구라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선의를 담은 손길이어도 오역될 수 있는 것이다. 늦지 않게 상대의 마음에 내 마음이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어떻게 그 가능성을 믿을 수 있냐고? 다들 그렇게 사랑을 하니까. 그러니 사랑이란 관념을 믿는다면, 우린 소통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초개인의 시대에 관용이나 여유는 사라졌다. 사회에서 사랑이란 관념은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소통 오류는 고쳐지지 않는다. 차라리 외계인과의 소통이 더 수월해 보인다. 적어도 그들과 대화할 때는 반드시 상대방을 이해해보려고 할 테니까. 묘사된 외계인들은 대부분 우리와 다르게 생겼다. 어쩌면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더 대화에 노력을 들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세계관을 가진 존재라는 공통점만 두고 봤을 때 외계인이나 외국인이나 똑같이 익숙지 않은 언어로 소통해야 함은 분명하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상대방을 파악해서 적절한 어휘의 종류를 고르고 그들이 알아들을 법한 말을 한다. 상대방이 다르게 생겼으면 일단 그들의 대화 수준을 보고 핵심적인 단어 몇 가지를 중심으로 문장을 만든다. 상대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게 소통한다. 어찌 보면 그런 소통 방식은 인간이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주 가벼운 차원의 사랑이 아닐까?
사진 출처 : TMDB '컨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