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나만의 시간'이라고 선언할 수 있을 만한 때가 별로 없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고, 커서는 일에 묶여있다. 그러면 오롯이 나의 행복과 관심사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오히려 은퇴 이후의 삶이 아닐까? 시간도 돈도 여유로운 시기. 인생 2막은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고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정인과 현숙 부부도 그랬다. 한 가지 경사가 더 있다면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새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 으레 그렇듯이 정인, 현숙 부부는 이웃집에 차 한잔 하자고 말을 건넨다. 정성스럽게 편지 써 문틈새로 밀어 넣는다.초대받은 이는 어김없이 '오후 네시'에 문을 두드린다.
처음 원작 소설을 읽을 때에는 은퇴한 노부부(에밀과 쥘리에트)의 일상에 뭐 특별한 사건이 있을까 싶었다. 그저 평온한 나날들의 연속 아닌가? 전원주택도 마련했겠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재밌게 지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옆집 사람이 오후 네시만 되면 찾아온다'는 내용만으로는 이야기의 전개 방향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적당히 친한 척하면서 살갑게 굴던 이웃이 알고 보니 이상한 사람이었다던가 하는 방식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사실 이웃이 찾아오는 게 뭐 별일인가. 오랜만에 이웃이 생겨서 좀 반가운가 보다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점점 에밀의 목소리에 이입이 되기 시작했다. 그가 느끼는 불편함이 불안감으로 증폭되어 가는 과정을 이해해 볼 수 있었다. 평생을 노력해서 마련한 안락한 공간인 집이 불안을 야기하는 장소가 된다는 점이 무척 불편했다. 더군다나 불안을 선사하는 이의 의도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도 말이다.
<세밀한 관찰력으로 그려낸 심리묘사>
원작은 유독 심리묘사가 디테일했던 소설이었다. 아멜리 노통브라는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켜켜이 변해가는 사람 심리를 그려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았다. 작가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묘한 불안감도 잘 짚어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관계의 단절이라는 주제는 여러 영화나 소설에서 반복되지만, 이 소설과 같은 상황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상황만 두고 보자면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그쪽은 아예 모르는 사람은 아니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지만 말이다. 여러 이유로 원작 소설은 초반부보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더 힘이 실리는 느낌이었다. 이런 종류의 미스터리를 다루는 영화는 미스터리 한 상황이 던져지는 초반부에 힘을 주고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하는 느낌인데, 이 소설은 달랐다. 에밀의 행동을 두고 마지막까지 곱씹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책은 긴 호흡으로 묵묵하게 설득한다. 그렇다 보니 영상화될 때 그 템포를 어떤 식으로 조절할지 생각해 보면서 영화를 보면 좀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섬세한 심리묘사가 주요한 포인트다 보니 미묘한 연기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소설 안에서 공간적 배경이 많이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보니,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로컬라이징도 궁금하다. 한국에서 '우리 집'은 주는 인상이 많이 다르니까. 힘들게 모아서 마련한 보금자리를 침범당한다? 예고편에서 보이는 분노에는 더 이상 궁지에 몰릴 수는 없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소설 속 문장의 행간에 담겨있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영화>
소통의 부재, 불통을 다루는 영화인데 해외 영화제에서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자막을 거쳐서 보는 입장인데도 반응이 있다는 건 연기로 감정을 충분히 설득해 냈다는 뜻일 것이다. 보편적인 감정과 독특한 사건, 미스테리한 이웃집 사람과의 신경전. 복합적인 상황이 빚어내는 일련의 이야기. 문장으로는 짐작만 하던 분위기가 영상으로 생생하게 재현될 때의 쾌감이 있다. 전원생활을 만끽하고자 내려간 정인과 현숙 부부가 겪게 될 고난은 재난처럼 다가오겠지만 말이다. 원하지 않던 미스터리 한 손님의 방문은 과연 어떤 이야기로 사람들을 이끌어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