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일상은 반복 운동이다. 의식하는 행동부터 무의식 층위의 행동들까지. 숨을 쉬는 일부터 시작이다. 심장은 일정한 리듬으로 혈액을 보낸다. 혈액은 핏줄을 따라 순환하며 온몸에 산소를 공급한다. 이 끊임없는 무의식의 사이클을 통해 우리는 의식적 활동을 한다. 무의식으로 자동화된 생체 시스템은 의식에 여유를 줬다. 무의식이 생존을 담당해 주니 우리의 의식은 막연하게 남아있는 시간을 고민한다. 어떤 이유를 덧대어 이 간극을 채워나가야 할까? 순간들이 무수히 쌓여 드리워진 시간의 선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더 나은 자신의 모습, 추락하여 파멸하는 자신의 모습, 과거에 박제된 기억 속의 내 모습, 오지 않은 미래의 한 장면 속 내 모습. 당신은 어떤 순간을 경유하고 있는가? 인생의 궤적 속에 어느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가?
히라야마는 공용화장실 청소를 하는 청소부다. 자신이 직접 제작한 물품들을 들고 다니며 청소할 정도로 책임의식이 있고, 출퇴근 길에는 카세트테이프로 팝송을 듣는다. 평상시엔 과묵한 편이다. 뒤늦게 일터에 도착한 동료를 보고서도 볼멘소리를 내뱉지도 않는다. 이 일이 그렇다. 경우 없이 구는 사람들이 워낙에 많아야지. 히라야마는 그저 묵묵하게 닦고, 치우고, 다음 화장실로 떠난다. 이따금 벤치에 앉아서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낙이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퇴근해서 목욕하고, 저녁 먹고 가볍게 반주까지. 잠들기 전에는 책을 읽는다. 이 사람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안내한다.
쓸데없는 말을 피하는 히라야마는 얼핏 관계를 단절하려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거진 일주일 동안 그의 옆에 붙어 다니는 것처럼 관찰해 봐도 도통 입을 열지 않는다. 영화는 우리를 히라야마를 바라보게끔 만든다. 말을 하지 않으니 그의 행동에 집중하게 된다. 크게 드러나지 않는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띈다. 이런 사소한 행동은 말이 섞이면 알아채기가 어렵다. 이런 건 히라야마가 부지런히 하루의 일과를 해내는 모습을 지켜본 끝에 알게 되는 특징들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서 시선을 옮기다 보면 결국에 달도 보이기 마련이다. 영화는 그렇게 우리를 히라야마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안내한다. 그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처음엔 깊은 호수처럼 보였는데 다시 보면 눈물에 빛이 맺혀있다.
히라야마는 그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할 뿐이다. 이유나 배경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염려 섞인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다. 잘 곳이 있고, 소소한 취미가 있고, 일도 나쁘지 않다. 소리 내 웃을 정도로 즐거운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눈물 펑펑 흘리는 슬픈 일도 없다. 과하게 자신이 정해둔 선을 넘어가지 않으면서도 기준으로 돌아오려고 한다. 그런데 돌이켜볼 때 묘하게 마음이 헛헛해진다. 잘 알지는 못해도 체화될 정도로 애쓰는 이 삶이 그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보여서. 문득 측은해지기도 한다.
그의 일상은 봤는데, 일생을 알 수는 없었다. 히라야마의 과거는 가려져 있다. 영화는 그 남겨진 서사까지 궁금해하게 만들지 않았다. 의아한 선택이다. 보통의 영화라면 그 지점에서 이야기가 더 나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사건의 여지가 만들어졌으니까. 새로운 사람들의 욕망에 맞춰서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가는 쪽이 자연스럽다. 이 사람이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들춰보게 되는 전개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그렇게 나아갈 때에 끊어낸다. 마치 그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게 잘못된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일생보단 일상의 시간으로 기준을 맞춰 편집했다. 정해진 시간에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편집점은 어디까지나 히라야마의 루틴이다.
히라야마는 호기심보다는 관찰하기에 어울리는 캐릭터였다. 행동의 이유를 궁금해하기보다는 그 순간의 표정과 행동에 더 집중했다. 작중에서 히라야마는 조카한테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을 건넨다. 그 말이 말이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표현 같았다. 구태여 사족을 덧붙여 생각하지 말고 보이는 대로만 생각을 하라고. 그런데 일상을 관조하기란 참 어렵다. 반복 운동은 리듬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어떤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듣기 위해서는 순간을 만끽해야 한다. 멈출 수도 늦출 수도 없는 일생.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담겨있고, 우리는 그 순간을 믿어야 한다. 기쁘거나 슬퍼하는 순간의 한 때를.
사진 출처 : TMDB '퍼펙트 데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