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원 Jul 23. 2023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올리는 이유

《AI 이후의 세계》


"SNS는 사유의 공간을 축소하고, 온라인 검색은 개념을 습득하려는 의지를 감소시킨다."

1) 시기적로도 시의적으로도 적절한 타이밍에 따끈따끈한 책이 하나 나왔다. 올 5월에 나온 이 책의 공동저자는 각각 미국 전 국무장관(키신저), 구글 전 CEO(슈밋), MIT 학장(허튼로커)을 지낸 세 명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2) 디지털은 우리의 문명을 경이로운 지경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맥락적 개념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문맹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개념을 이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어찌 보면 지식의 소유마저 비효율적인 구태다. 무한 스트리밍 시대에 음원을 소장할 이유가 없듯이 지식도 구태여 힘들게 기억해 놓을 필요가 없다. 필요한 지식이란 단지 어떻게 정보를 찾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기능적 지식뿐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검색엔진에 물어보면 된다. 그러면 검색엔진은 곧바로 AI를 이용해 답을 준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생각의 많은 부분을 AI에게 위임한다.

3) 하지만 정보는 그 자체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정보가 의미 있게 쓰이려면 문화와 역사라는 렌즈를 거쳐 이해돼야 한다.

4) 정보에 맥락이 더해질 때 지식이 된다. 그리고 지식에 철학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지혜가 된다.

5) 저자들은 인공지능 운명론을 반박한다. AI의 도래는 불가피한 미래이지만 우리에겐 아직 주도권을 쥐고 AI를 통제하여 인간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미래를 조성할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SF영화에 나오듯 인간을 말살하는 킬러 AI를 걱정하기보다 실생활 속에서 우리의 인지에 영향을 주는 소셜미디어의 알고리듬이 더 큰 위협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기술과 공생하는 인간, 호모 테크니쿠스 Homo Technicus 라는 명명을 한다.

6) 호모 데우스니 호모 심비우스니 걸핏하면 호모 머시기스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이지만, 단지 유튜브 영상추천 알고리듬 정도만 걱정해도 되는 걸까?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처럼 기계가 인간을 소탕하고 배양하는 끔찍한 디스토피아는 정말 영화 속 이야기에 불과할까?

7) 반대로, 챗GPT가 골치 아픈 생각을 그 어떤 지식인보다도 잘 대신해 주는 이 편한 세상에 뭔 데카르트 계몽주의 같은 소리냐고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진도 음악도 보고서 ppt도 AI를 쓰면 퀄리티를 훨씬 높일 수 있는데, 프로그램 하나 돌릴 줄 모르고 직접 손으로 쓰고 앉았다면 선사시대 가내수공업으로 돌도끼 깎는 거랑 뭐가 다를 것이냔 말이다. 기술적 진보는 좋은 것이며, 뭘 자꾸 규제하려들지 말고 뭐라도 더 잘 이용하려들어야 한다는 그런 시각이다.

8) 글쎄, 내 생각은 매우 심플하다. 우리의 사고를 대체할 더 멋진 것들은 더욱더 곧이어 나타날 것이고, 그러기에 그것들을 더욱더 잘 써먹으려면 맥락 전체를 이해하는 우리 이성의 끈을 더욱더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9) 이 책의 저자들은 AI의 도래를 미래의 일로 상정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AI는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은 부정할 게 아니라 직시해야 할 대상이다. 냉혹한 현실은 이렇다. 인간은 AI를 이길 수 없다. 문제는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이용하느냐 이용당하느냐이다. AI에게 이용당하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이용하는 자가 돼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유와 철학을 탑재해야 한다. 찾아진 답을 주문하는 게 아니라 답을 찾는 과정 자체를 우리 몫으로 유지해야 한다. 보정사진 한 장에 인생을 다 담지 말고 때로 더보기 버튼을 눌러 긴 글도 읽어봐 버릇해야 한다. 사유를 축소하는 알고리듬의 공간에 이런 글을 쓰고 올리는 이유다.

#AI이후의세계
#헨리키신저
#에릭슈밋
#대니얼허튼로커
#윌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