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일기 /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사건 사고 현장에 군중이 모였다. 나도 그 가운데 서서 웅성웅성 말을 보탠다. 들을 말 듣고, 보탤 말 다 보태고 돌아선 내가 화들짝 놀란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내 어깨를 치면서 ‘여기 좀 보라’고 했을 것이다. 다만, 기척이 약해서, 군중의 소리가 너무 커서 감지하지 못한 것이리라. 아니면 나의 오감이 한 방향으로만 열려 있었거나.
용산 참사, 세월호, 변희수 하사와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 앞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소리 높였던 나는 왜 천안함 생존장병에게 무관심했을까. 나는 당시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또 거짓말한다, 또!’ ‘천안함으로 정치 공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배가 사람이 먹고 자고 일하는 생활공간이자 일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배를 보고 있을 때 저자는 배에 탔던 사람을 주목했다. 천안함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사회는 그들에게 ‘패잔병’ 낙인을 찍었다. 영웅이 되지 못했다며 모멸감을 주었다. 전사한 동료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배의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 것뿐인데 그랬다.
군인은 국가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다. 군인에게 요구되는 애국심과 희생정신은 애사심처럼 소속된 단체에 개인이 가지는 마음일 뿐이다. 노동자에게는 역량을 발휘해 소속 단체의 이익에 기여할 의무가 있다. 동시에 노동자이기에 누릴 권리도 있다.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도 그중 하나다. 노동자는 재난재해 상황에서 보호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천안함에 들어가 사망한 전우의 유품을 찾아야 하는 생존장병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까. 관심 장병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워 정신과 치료조차 받지 못한 그들에게 명예로운 군인이 되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책의 표지 그림 제목은 ‘Wind from the Sea’다. 이 책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등 돌리고 서 있던 나를 뒤돌아서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