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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Apr 08. 2022

'큭큭' 웃다가 '끅끅' 울다가

[완독 일기 / 히말라야 환상방황]

히말라야 환상방황 / 은행나무

히말라야 설산 한가운데서 거머리가 무서워 부들부들 떠는 사람이 있다. 세계 이색 음식만 찾아 먹을 것 같은데 네팔 향신료 마샬라에 적응을 못해서 며칠 동안 달걀만 먹는다. 동네 개들에게 기가 눌려 돌담 위로 도망가 쪼그려 앉는다. 동네 주민이 나타나 구해줄 때까지. 동네 골목에서 숙소로 가는 중에 길을 잃는다. 돌아오면 제 자리, 돌면 또 제 자리. 종소리를 따라 가자 마음먹고 걸어가니 정작 소리의 진원지는 반대편에 있.  길치에 소리치이기까지 한 사람.


이런 사람이 「7년의 밤」 「28일」 「종의 기원」 「완전한 행복」 등의 소설을 썼다. 「완전한 행복」을 제외하고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모두 읽었다. 부들부들 떨면서. 「종의 기원」은 너무 무서워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각오를 다져야 했다. 그런데 작가도 무서웠나 보다.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겁이 났나 보다. 소설을 쓰면서 그 두려움을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히말라야 환상방황」에서 그 두려움을 읽었다.     

이 책은 2013년에 작가가 소설 「28일」을 마무리하고 난 후 떠난 18일간의 히말라야 여행기다. 후배 작가인 김혜나가 동행했다. 살면서 나라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저자가 처음 가는 해외가 히말라야라니. 소설을 쓰면서 소모된 감정을 채울 수가 없어 안절부절못하던 날들 가운데 택한 처방이 여행이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당시 암수술 후 38차례 방사선 치료를 받은 직후였다. 이 이야기는 2021년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히말라야에 가기 6년 전에 쓴 그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에서 눈먼 승민이 날아간 신들의 땅. 소설의 플롯 노트 마지막 장면 끝에 저자는 이런 지문을 써놓았다. ‘전사를 찾아서’ 그 플롯 노트를 다시 꺼내 본 순간부터 히말라야 외에는 어느 곳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가야지.

 

18일간의 여정은 예상대로 고되다. 책의 첫머리에 있는 라운딩 코스 단면도를 보자마자 기가 질린다. 작가가 곳곳에 유머를 남겨놓지 않았다면 헉헉대느라 책을 다 못 읽었을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혼자 읽다가 낄낄거림을 멈추지 못해 밖으로 나가서 진정을 하고 돌아왔다. 침대에서 읽다가 괴상한 소리로 큭큭 웃는 것을 보고 가족들은 황당해했다. 새벽 3시에 히말라야에 가고 싶다고 펑펑 우는 작가를 보는 남편의 표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글자로나마 안나푸르나에 오르면서 고산병에 걸리지 말라고 쉬엄쉬엄 웃긴 이야기를 해주니, 독자를 위한 작가의 친절에 망극할지어다.


그런데 왜 ‘큭큭’ 소리는 점점 ‘끅끅’으로 변하는 건지.


나는 모래바람 속에 서서 멀어지는 마르상디 강을 돌아보았다. 지금껏 길을 인도하던 거대한 존재가 내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22년 전 오늘, 어머니가 그리했던 것처럼. 이제부터 너 혼자 가는 거야. / 140p
이제 와 나는 울고 싶었다. 어머니가 떠났던 오늘, 이국의 쓸쓸한 강가에서 뒤늦게 목 놓아 울고 싶었다. 그러면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이 두려움에서 놓여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리지 않으면 고꾸라진다는 두려움, 고꾸라지면 죽는다는 두려움으로부터. / 142p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던 작가는 22년이 지나서야 어머니 기일에 히말라야 마르상디 강을 보며 결국 눈물을 보인다. 자신이 고꾸라지면 남은 가족들마저 넘어질 것 같아 끝내 눈물을 삼키고 버텨낸 그였다. 어머니 없이 동생들을 보살피며 산 세월, 어머니는 길을 안내해준 거대한 인도자였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아니 두려움을 숨기고 살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안나프루나에 와서야 그는 어머니를 보낸다. 이제 혼자 가는 거라고 자신을 일깨우며.


책의 중간에  ' 사관과 신사' 영화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OST를 찾아들었다. Up Where We Belong, 익숙한 가사와 멜로디.


The road is long, There are mountains in our way, But we climb a step every day. Love lift us up where we belong, Where the eagles cry, On a mountain high

Love lift us up where we belong, Far from the world below, Up where the clear winds blow … Time goes by, No time to cry


길은 멀고 산은 높아도 매일 한 걸음씩 가면 되는 거지. 암, 그렇고 말고. 저자의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것 같은 가사다. 한 대목만 제외하고. '세월은 흘러가고, 울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아니다.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 한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어머니의 기일을 맞은 날이라면. 고꾸라지는 것이 무서워서 달리기를 멈추지 못할 때는 울어도 된다. 그래야 멈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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