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일기 / H마트에서 울다]
엄마가 커다란 원의 한가운데서 긴 줄을 잡고 서있다. 그 줄의 끝은 딸이 잡고 있다. 딸은 지름의 가장자리를 빙빙 돌면서 달린다. 바깥을 향해 에너지를 뿜어대면서. 어떻게든 튕겨나가려고 애쓰면서. 원의 한가운데서 엄마는 딸이 튕겨나가지 않게 온 힘을 다해 줄을 당긴다. 지름은 점점 커지고, 줄은 더 팽팽해진다. 하지만 엄마가 꼭 잡고 있으므로 지름이 커질망정 딸이 튕겨나가진 않는다. 그러다가 엄마가 줄을 툭 놓는다. 엄마의 구심력을 믿고 달렸던 딸은 고꾸라지기 일보 직전이다. 휘청거리면서 멈춰 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어디로 가야 하나.
「H마트에서 울다」는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미셸 자우너의 에세이다. 지독한 잔소리로 사랑을 표현하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10대를 거쳤다. 그 사이 모녀 사이에는 온갖 감정이 오간다. 애증이다. 대학에 가서 물리적인 거리가 생긴 후 모녀 관계는 회복되는 듯했다. 이제 겨우 사랑을 꺼내놓기 시작하려는 때 둘은 헤어진다. 영원히.
저자는 미국의 아시아 식재료 전문 슈퍼마켓인 H마트에서 만두피를 집어 들며 엄마를 생각한다.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엄마는 이제 세상을 떠나고 없다. 그리고 묻는다. 엄마가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저자의 엄마는 (한국 엄마답게) 음식으로 사람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는 한국 음식이 수십 가지 나온다. 지금 바로 옆에 앉은 사람에게 한국 음식 10가지만 얘기해보라고 물을 때 나오는 대답, 그 음식이 이 책에 있다. 한국 음식과 음식 문화에 대한 저자의 표현은 정확하다. 어설프지 않다. 그건 저자의 엄마가 자신과 딸의 관계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엄마가 돌아가신 후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나는 엄마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주야장천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너한테서 항상 김치 냄새가 날 거야. 그 냄새가 네 땀구멍으로 배어 나올 테니까. / 361p
이렇게 말했던 엄마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죠리퐁 과자 안에 들어있는 종이 스푼으로 과자를 떠먹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었고, 참기름은 계량해서 넣는 것이 아니고 적당히 넣는 것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독립한 딸의 집에 가서 갈비를 재우며 “갈비를 좀 재워놓고 가면 엄마가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은 고향의 맛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딸이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엄마가 없는 지금 저자의 고향은 어디인가?
저자는 엄마를 잃은 후에 그의 모국어인 한국어로 절규한다.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태어나 처음으로 한 말 ‘엄마’.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거부했던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기록한다. 뉴욕 자신의 집에서 엄마 없이 혼자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를 담그면서.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인지 생각하다가, 다시 내 딸에게는 어떤 엄마인지 생각한다. 우왕좌왕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분명한 건 엄마가 나에게 먹인 음식들이 나를 만들었고, 내일 아침 딸에게 해줄 음식이 그 아이의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