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일기 / 전쟁일기]
전쟁은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인 올가 그레벤니크의 그림에서 색채를 빼앗았다. 올가 그레벤니크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아내이자 딸이다.
「전쟁일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부터 연필 하나로 기록한 전쟁일기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의 작품을 접한 경험이 없었다. SNS(@gre_ol)를 찾아봤다. 화려한 색감이 가득했다. 꽃과 나무가 가득한 정원 곳곳에 아이들과 여우 가족이 있다.
위의 그림이 아래의 그림으로 바뀌었다. 전쟁이 그렇게 만들었다.
폭격이 시작되고 지하실로 대피하면서 그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그림노트와 연필을 챙긴다. 그리고 전쟁이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기록한다. 전쟁 첫째 날 가장 먼저 기록한 것은 아이들의 이름, 생년월일, 자신의 전화번호였다. 노트가 아닌 아이들의 팔에.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무서운 사실이지만 그 생각으로 미리 적어두었다(96p).’
일기에는 지하실에서 지낸 이야기들이 그림과 짧은 글로 담겼다. 아이들은 지하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게임을 하며 어울려 논다.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을 아는 아이는 초콜릿 한 개를 오래오래 먹는 방법을 알아낸다. 임신부들은 출산일을 기다린다. 이 이야기들을 연필 하나로 기록했다. 연필이 지나간 자리마다 두려움이 묻어있다.
지하실에서 지낸 지 9일째 되는 날 그는 아이들을 위해 도망가기로 결심한다. 계엄령이 내려진 우크라이나에서 남자들은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작가의 엄마는 우크라이나에 남아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를 돌보기로 한다. 올가는 두 아이만 데리고 국경을 넘었다.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쳐 현재는 불가리아에 있다고 전한다. 이제 그와 아이들은 난민이 됐다.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사진을 오래 바라본다. 두려움 가득한 눈. 이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보는 작가의 사진에는 두려움과 함께 의지가 보인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떻게든 사랑을 이야기하겠다는 의지. 가족과 헤어져 아이들만 데리고 국경을 넘은 모든 여성들이 하루빨리 안온한 삶을 찾기를 기도한다.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져 전쟁의 한 복판에 남겨진 남자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한다.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오기를 기도한다.
덧붙여서, 작가가 마지막 일기를 쓴 지 한 달도 채 안돼 내 손에 책이 쥐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책은 문학동네 임프린트인 '이야기장수'가 펴낸 첫 책이다. 이 책을 내기까지 이야기장수의 편집자 및 스태프들이 얼마나 애를 썼을지 짐작이 된다. 하루라도 빨리 올가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보냈을 시간을 상상한다. 그런 애씀이 고마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