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일기 /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집을 구할 때 고려해야 할 우선순위는 저마다 다르다. 무엇을 중요시하는가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다르다. 역세권(전철역까지의 거리), 편세권(편의점까지의 거리), 초품아(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 등. 나에게 우선순위는 도서관이다. 도세권이라고 해야 할까. 집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을 때 차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3~4개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한 번에 여러 권을 빌릴 수 있고, 상호대차 서비스도 유연하게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마다 소장 도서가 다르므로 이 도서관에 없으면 저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도 필요하다. 특히 아이가 유치원에 다닌 3년 동안은 도서관이 방과 후 문화센터 역할을 했다. 돈 한 푼 안 내고 말이다.
팬데믹에도 내가 사는 지역의 도서관은 꾸준히 시민들과 함께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는 임시 휴관을 하기도 했지만 도서관 서비스가 아예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이메일로 대출을 원하는 도서 목록을 보내면 다음날 도서관 정문에서 받아갈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하루 걸러 한 번씩 이메일을 보내고 책을 받으러 다녔다. 돌이켜 보면 당시에 도서관 안에서 일하는 사서들의 고단함을 상상했던 기억이 난다. 이메일을 접수하고, 책을 찾아서 굵은 노란 고무줄로 묶음을 만들고, 위에 대출한 사람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놓는다. 도서관 로비에 커다란 테이블을 여러 개 놓고 그 위에 책들을 진열한 후 책을 찾으러 오는 사람에게 사인을 받고 넘겨준다. 덕분에 나와 내 아이는 코로나 시대에도 원하는 책을 거의 대부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도서관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 했는데 장황했다. 이렇게 사랑하는 도서관에 불이 난다면? 종이가 타들어가는 것처럼 내 마음도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 것이다.
서가들은 벽난로의 연통 노릇을 하고 책들이 스스로 연료가 되어 화마에게 먹이를 잔뜩 제공하고 있었다. / 44p
수십만 권의 책이 불타오르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은 1986년 로스앤젤레스 중앙도서관 화재 사건을 중심으로 도서관의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화재 당시를 설명하는 장면은 (지나간 이야기임에도, 현재는 재건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속을 태운다. 저자는 기록들을 찾아보고, 관련 인물들을 찾아 인터뷰한다. 그리고 책이 불타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 실제로 책을 태워보기도 한다. 한 번도 책을 태운 경험이 없어 ‘이래도 되나?’싶은 마음과 긴장된 마음을 안은 채 태운 책의 제목은 「화씨 451」. 화씨 451은 실제로 책이 불에 타는 온도를 뜻한다.
7시간 반 동안 계속된 로스앤젤레스 중앙도서관 화재로 70만 권에 이르는 책이 불타 없어지거나 손상을 입었다. 불만 종이를 없앤 것은 아니다. 화재 진압을 위해 뿌린 물에 종이가 상해 복구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책이 사라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는 "책을 쓰는 것은 도서관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전한 저항 행위다. 기억의 지속성을 믿는다는 선언(120p)"이라고 말한다. 한 생명이 이 땅에서 사라져도 그에 대한 기억이 지속된다면 그 생명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책과 도서관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도서관이 불타버렸으니 결국 70만 권의 책 안에 담긴 우리의 기억이 소실된 것 아닌가. 소실된 기억을 되살리려는 로스앤젤레스 시민들과 도서관 사서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봉사자들은 길게 늘어선 채로 연기 자욱한 건물 안에서 문밖까지 손에서 손으로 책을 전해 날랐다. 이 긴급한 순간은 로스앤젤레스 시민들로 살아 있는 도서관을 이룬 것 같았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시민들은 공유된 지식을 보호하고 전달하는 체계, 서로를 위해 우리 스스로 지식을 보존하는 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도서관들이 매일 하는 일이었다. / 53p
저자는 도서관 방화범으로 지목된 해리 피크가 과연 진짜 방화범인지 추적하는 한편, 도서관에 대한 모든 것, 그야말로 All that library를 이 책에 펼쳐놓았다.
도서관이 책 보관 장소가 아닌 주민들을 위한 오락과 교육의 장소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서 이야기는 특별할 것이 없다. 이 주장을 한 인물이 100년 전에 살았다는 것 외에는. 현재 도서관이 지식의 집합체이자 지역 커뮤니티 센터로서도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서관의 미래를 내다본 주장임에 분명하다.
도서관 발송부 직원들은 대출 동향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오프라 윈프리가 언제 어떤 책을 추천했는지 같은 것. 왜냐하면 ‘도시 전체에서 동시에 요청된 ‘그’ 책을 수십 권 포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도서관에서는 책을 빌려간 사람이 디프테리아나 발진열 같은 감염병에 걸리면 도서관에 알려야 했다. 책을 소독한 후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2차 대전 당시 도서관 사서들은 해외로 파견된 미군 가족들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당시 배치된 장소를 말하는 것이 금지돼 있던 군인들은 편지에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단서를 남겼다.
가족들은 단서 해독에 도움을 받기 위해 도서관에 전화를 걸었다. 한 사서는 "우리는 ‘남자들이 머리를 똑바로 빗어 넘기고 다니는 지역이 어딘가요?’ 혹은 ‘사람들이 코걸이를 하는 곳이 어딘가요?’ ‘여성들이 품이 넉넉한 치마에 흰색 앞치마를 두르고 다니는 나라가 어딘가요?’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 252p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전자책 대여 시스템인 오버드라이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도서관을 이렇게 설명한다.
오버드라이브는 책 대여의 미래일 수 있지만 도서관의 미래와 동의어는 아니다. 도서관은 우리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모이는, 공동체에 소속된 물리적 공간이다. … 오버드라이브는 우리의 책들을 보여주는 곳이 되고, 도서관은 마을 광장에 더 가까운, 집처럼 느껴지는 공간이 될 것이다. / 365p
도서관 휴관일이 매우 싫은 이용자로서 마음이 새까매지는 독서였다. 물론, 도서관 재건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나와있으니 너무 실망은 하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