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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Apr 17. 2022

색채를 빼앗긴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의 전쟁일기

[완독 일기 / 전쟁일기]

    

전쟁일기 / 이야기장수


전쟁은 우크라이나 그림책 작가인 올가 그레벤니크의 그림에서 색채를 빼앗았다. 올가 그레벤니크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아내이자 딸이다. 

「전쟁일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부터 연필 하나로 기록한 전쟁일기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의 작품을 접한 경험이 없었다. SNS(@gre_ol)를 찾아봤다. 화려한 색감이 가득했다. 꽃과 나무가 가득한 정원 곳곳에 아이들과 여우 가족이 있다. 





작가의 인스타그램((@gre_ol))에 있는 그림

    

위의 그림이 아래의 그림으로 바뀌었다. 전쟁이 그렇게 만들었다.     

    

「전쟁일기」 중 한 장면


폭격이 시작되고 지하실로 대피하면서 그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그림노트와 연필을 챙긴다. 그리고 전쟁이 일상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기록한다. 전쟁 첫째 날 가장 먼저 기록한 것은 아이들의 이름, 생년월일, 자신의 전화번호였다. 노트가 아닌 아이들의 팔에.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무서운 사실이지만 그 생각으로 미리 적어두었다(96p).’ 


일기에는 지하실에서 지낸 이야기들이 그림과 짧은 글로 담겼다. 아이들은 지하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게임을 하며 어울려 논다.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을 아는 아이는 초콜릿 한 개를 오래오래 먹는 방법을 알아낸다. 임신부들은 출산일을 기다린다. 이 이야기들을 연필 하나로 기록했다. 연필이 지나간 자리마다 두려움이 묻어있다.


지하실에서 지낸 지 9일째 되는 날 그는 아이들을 위해 도망가기로 결심한다. 계엄령이 내려진 우크라이나에서 남자들은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작가의 엄마는 우크라이나에 남아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를 돌보기로 한다. 올가는 두 아이만 데리고 국경을 넘었다.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쳐 현재는 불가리아에 있다고 전한다. 이제 그와 아이들은 난민이 됐다.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사진을 오래 바라본다. 두려움 가득한 눈. 이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보는 작가의 사진에는 두려움과 함께 의지가 보인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떻게든 사랑을 이야기하겠다는 의지. 가족과 헤어져 아이들만 데리고 국경을 넘은 모든 여성들이 하루빨리 안온한 삶을 찾기를 기도한다. 아내와 아이들과 헤어져 전쟁의 한 복판에 남겨진 남자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한다.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오기를 기도한다.     


덧붙여서, 작가가 마지막 일기를 쓴 지 한 달도 채 안돼 내 손에 책이 쥐어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책은 문학동네 임프린트인 '이야기장수'가 펴낸 첫 책이다. 이 책을 내기까지 이야기장수의 편집자 및 스태프들이 얼마나 애를 썼을지 짐작이 된다. 하루라도 빨리 올가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보냈을 시간을 상상한다. 그런 애씀이 고마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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