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일기 / 아무튼, 인기가요]
일단 질문부터 해보자. 작가에 대한 팬심만으로 책을 읽는 것이 가능한가? 친구들이 서태지와 015B를 들을 때 헤비메탈 공연장을 누비던 나에게 인기가요는 친숙하지 않은 장르다. 게다가 아이돌에 입문하기 시작한 초딩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다들 아시지 않는가? 억장 무너지는 거)을 안다면 오마이걸과 이달의소녀에 목 메는 글을 읽는 것이 어떻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집어들었다. 「아무튼, 인기가요」(제철소, 2020)의 서효인(시인, 출판사 대표, 편집자) 작가에 대한 애정만으로.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다. 서재, 술, 메모, 스릴러, 택시, 계속, 잡지, 비건, 떡볶이 등 내가 지금까지 읽은 것만 20여 권. 모두 기꺼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렇다면 서효인 시인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인 인기가요가 나에게도 같은 행복을 줄지 어쨌든 읽어나보자.
‘아무튼’ 시리즈의 기획 의도에 이만큼 충실한 작품이 또 있나 싶을만큼 작가는 이 책에 인기가요에 대한 애정을 원없이 담아냈다. 출판사에서 판을 깔아주니 옳다구나 하고 축제를 즐기는 모양새다. 칼럼, 라디오, 팟캐스트 등을 통해 서효인 시인이 인기가요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라니 새삼 놀랍다. 아, 덕질은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작가는 여자아이들의 앨범을 들은 소감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주 생명체들 전부 알고 모조리 소름 끼쳤으면 좋겠다(68p)’ ‘시방 나는 거의 온몸이 닭살인데, 당신은 어떤가’ 나는 여자아이들과 오마이걸 멤버의 얼굴과 이름을 매치시키지 못한다. BTS 멤버가 6명인지 7명인지 자주 헷갈린다. 이런 나에게 작가는 닭살이 돋지 않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샌가 나는 오마이걸의 ‘Dolphin’을 연속듣기로 듣고 있다. 또 어느 챕터를 읽은 후에는 ‘So What’ 뮤직비디오를 넋을 놓고 보고 있다.
새삼 깨닫는다. 이래서 시인이구나. 이래서 작가구나. 단어와 문장과 문단에 담긴 시인 특유의 섬세한 애정 표현이 나를 유혹한다. 오마이걸이 처음 데뷔해서 5~6년간 이렇다 할 인기를 얻지 못할 때도 작가는 ‘입덕’을 후회하지 않고 열심히 그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오마이걸이 정상에 오른 어느 날의 감회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시간의 다정한 목격자가 되어 영광이다”(p.24). 그 6년동안 작가는 “뭐? 오마이걸? 아이돌? 도대체 너는…” 이하 생략하겠다.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언어로 작가의 덕질을 비웃었을지 짐작이 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인기가요에 대한 사랑고백이자 무언가를 다정하게 견뎌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다정한 견딤은 노래를 매개로 풀어내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에도 녹아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추억하며 학교 폭력을 이야기하고, 오마이걸 챕터에서는 기다림과 고마움이 키워드가 된다. YG패밀리에 대해서는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씁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아내와 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눈물이 왈칵 나기도 하고, 직장인의 비애를 말할 때는 ‘나도 그랬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게도 된다.
‘좋은 것을 보는 행복함이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한다(P. 39).’
여기서 좋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니 인기가요든 떡볶이든 술이든 요가든 누군가에게 좋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관심 밖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무튼 시리즈를 눈여겨 보는 이유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의 태도, 나아가 그 사람이 궁금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기가요를 좋아하는 서효인 시인이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얼마나 유쾌한 사람인지 말이다. 그는 가요 한 곡이 재생되는 ‘겨우’ 3분의 시간을 ‘무려’ 3분의 시간이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제 답할 차례다. 작가에 대한 팬심만으로 책을 읽는 것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