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일기 /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겁을 잔뜩 먹고 책을 폈다. 난 운명적 문과니까.
수학자 하디가 말한 ‘하찮은 수학’조차 내게는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수포자라는 뜻이다. 과학이라고 별반 다를까.
1~3장(인문학과 과학, 뇌과학, 생물학)은 내 나름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예를 들면 입자가 어떻게 생명과 의식을 만들어내는가라는 질문. 돌이켜보면 국민학생이던 시절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존재하는 게 너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신의 영역이려니 생각한 때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유전자의 일이라니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전향은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 패턴의 변화로 생긴 현상일 수 있다(96p).
이 문장을 읽고 여러 사람이 떠올랐다. 좀 웃기기도 하다. 세상을 뒤엎을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도 결국은 시냅스 연결망에 따라 움직인 거라니. 하지만 공익과 반대되는 행동조차도 이런 논리에 따라 명분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저 웃고 넘길 이야기만은 아니지 싶다.
4~6장(화학, 물리학, 수학)은 글자만 그저 머리에 욱여넣었다. 아무리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과학자의 설명이라도 어려운 건 어려운 거다. 그나마 유시민 작가도 굳이 이해하려 하지 말라고 하니 위로가 된다. 신계의 학문을 인간이 어찌...
게다가 힐베르트에 따르면 수학은 ’ 기호와 논리로 하는 천재들의 지적 유희‘라고 했으니 내가 수포자인 것이 그리 부끄러운 일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쪼록 천재들이여 신나게 즐기시고 우리에게는 달콤한 꿀만 주실지니...
이 책은 과학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정의 내릴 것인지 묻는다. ’ 우주에는 그 무엇도, 우주 자체도 영원하지 않다 ‘고 말한다. 그러니 영원히 살 것처럼 주먹 꽉 쥐고 살지 말고 조금 마음을 풀어놓아도 되겠다. 물론 나는 아직 삶이 두렵고, 죽음이 두렵고, 생길지도 모를 모든 나쁜 일들이 무섭다. 비록 인간이 우주의 먼지에 불과할지라도 지금 여기 실재하는 나는 (나 자신에게는) 또 하나의 우주다. 나라는 우주를 알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멈추면 안 될 것이다.
지식이 얕은 나는 앞으로도 유시민 작가처럼 인간과 신계의 언어 사이를 오가며 “이건 이런 거래요, 저건 저렇답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에게 의지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