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9.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병실 복도에 진한 소독약 냄새가 가라앉아 병실을 가득 채웠다. 문이 열릴 때마다 스치는 바람이 바닥을 훑고 지나가며, 인영의 가슴에도 그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아침이면 그녀는 침대 난간을 닦고, 막 잠에서 깬 남자의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조심스레 닦았다. 남자가 인영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 절실함이 있었다. 인영은 남자의 눈빛을 바라보며 생애 처음으로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당신 아니면 못 살아요. 당신이 있어야 내가 살 수 있어요."
남자는 입버릇처럼 비슷한 말을 인영의 가슴에 넣었다. 병원 문을 나서려다가도 남자의 말에 발이 덜컥 걸렸다. 인영은 잠든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처음 그를 만났던 곳은 친구의 손에 떠밀려 나간 빵집에서였다. 따뜻한 빵이 익는 냄새가 코 안으로 파고들 때쯤 남자가 다급한 행색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인영은 따뜻한 우유를 한 모금 입에 물고 남자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일이 바빠 이제 왔다고 이야기하던 남자는 인영 앞에 앉아 차가운 물컵 안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제야 왔구먼요. 요즘 일하느라 바빠가지고 통 시간이 안 났는데, 오늘 시간이 난 게 그쪽 만나려고 그랬는 갚서. 그나저나 우리 결혼하면 혼자 계신 우리 아부지 같이 모셔야 항게. 그런 줄 아소."
대뜸 남자 입에서 쏟아지는 말에 인영은 머금었던 우유를 뱉어낼 뻔했다. 겨우 목 아래로 넘긴 인영이 입을 열었다.
"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빵을 허겁지겁 먹고, 우유를 단숨에 들이켰다.
"일이 바빠 가야항게. 다음에 또 봅시다." 그렇게 말하곤, 다급함이 어깨에 걸린 남자가 빵집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별 이상한 놈이 다 있네. 친구 이놈 머리끄덩이라도 잡아야 쓰것다."
그렇게 인영은 남자를 까맣게 잊었다. 대신 더 바쁜 하루들을 쌓아 올렸다. 시골에서 올라온 동생의 학업을 돕기 위해 공장 일을 늘렸고, 몸은 점점 피로에 잠겼다. 공장주는 인영의 재능이 아까워 볼 때마다 인영을 설득했다.
"네 인생이 먼저여야지. 동생이 아무리 급해도, 네가 잘 돼야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녀?"
인영은 고개를 저었다.
"동생을 제가 안 돌보면 누가 돌본다요. 이제 고등학생 되는데 공부 놔불믄 시집도 제대로 못 가요. 엄마 대신 제가 해야제. 말이라도 고맙당게."
공장주는 혀를 찼다.
"그래도야. 네 인생이 먼전디. 그라믄 니만 앞길 막혀븐당께. 오메. 아까워서 어쩌."
인영은 공장주의 말에도 큰 눈을 깜빡이며 동생의 재능과 앞으로 미래가 얼마나 창창할지 떠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의 세계에는 오직 '책임'이라는 한 단어만 남아있었다. 인영은 어릴 때부터 물질(바다에서 하는 일)을 하러 나간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동생을 위해 자신의 학업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온 동생은 곧바로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인영은 동생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 더 바삐 손 발을 움직였다. 그러던 사이 남자와 빵집이 천천히 그녀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손이 매웠던 그녀에게 공장주는 많은 일을 맡겼고, 그녀는 더 바쁜 일상을 이어갔다. 새벽마다 잠을 줄여가며 일했고,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미끄러질 만큼 피곤했지만, 발을 멈출 수 없었다. 동생의 학비를 내야 한다는 마음이 자신의 숨보다 더 절박했다.
어느 날 인영은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게 깜빡 잠이 들었다. 연탄을 갈지 못한 채 시간이 깊어갔고, 방바닥 틈으로 은빛 연기가 스며들었다. 인영은 눈꺼풀이 돌처럼 무거웠고 손발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천천히 그녀의 빛이 꺼져갈 때쯤 방문이 열리며 동생의 목소리가 울렸다.
"언니! 언니 눈떠봐!"
학교에서 돌아온 동생이 인영을 급하게 깨웠다. 인영을 방 밖으로 겨우 빼낸 동생이 동생 주겠다며 인영이 담갔던 동치미 국물을 인영 입 안으로 들이부었다. 차가운 공기와 동치미 국물이 인영의 얼굴을 타고 내렸다. 기침과 함께 정신을 차린 인영이 동생의 얼굴을 마주했다. 눈물로 가득 젖어있는 동생의 얼굴을 보곤 인영은 속으로 다짐했다. '이 아이를 위해 나는 살아야 해.'
가난은 곰팡이처럼 천천히 그녀와 동생 옆에 피어갔고, 피어난 곰팡이를 조금이라도 지우려는 인영의 노력은 새벽잠을 줄여가며 일을 하는 일상으로 이어졌다. 동생이 대학에 붙자 인영은 마치 모든 걸 해낸 듯 벅찼다. 합격 통지서를 손에 쥔 순간, 인영은 모든 것을 이뤄낸 듯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이제 네 인생은 탄탄대론께. 걱정 말고 공부만 하면 되제. 언니가 있잖아."
"이제 언니도 언니 인생 살아야항게. 고마워. 언니 아니었으믄 나는 어찌 됐을랑가 몰라."
둘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들의 손 사이에서 묵은 세월이 녹아내렸다. 인영은 그제야 가슴이 조금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처음으로 이제는 자신 만의 길을 이제는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의 방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친구의 숨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인영이 있당가. 글씨. 네가 만났던 그 사람 있잖아."
"누구. 누구 말여?"
"그 있잖아. 네가 만난 그놈. 빵집."
"그놈이 왜?"
"글씨. 간판 달다가 사다리서 떨어져 불었다. 오늘내일한단다. 멀쩡한 데가 하나도 없대. 병원서 니만 찾는다더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영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 순간부터 그녀의 발길은 다시 누군가의 인생으로 향했다.
"아니. 그놈이 왜 나를 찾아."
"나도 모르제. 처음 만난 날 혼자 반해블었는 갚서."
"뭐. 어쩌라고. 이 참에 콱 디져블제."
"곧 죽는 단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한번 가봐. 어찌 될지 모릉게."
친구의 말에 소개받은 날 머리채를 휘어잡지 않은 게 후회됐다. 꽉 쥔 손을 내려다보던 인영이 옷을 주섬 주섬 입고 친구를 따라 방을 나섰다. 인영은 몇 번이나 병실 문 앞에서 발을 돌렸다.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오래전 빵집 그 남자가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결국 그녀는 문고리를 잡았다. 문이 스르륵 열리자 소독약 냄새와 함께 창백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붕대에 감긴 몸, 숨소리마저 희미했다. 인영은 그 자리에 굳은 채 한참 남자를 내려다봤다.
"어쩌다 이리됐소. 잘 살제. 근다고 나랑 또 뭔 원수가 졌다고. 나를 찾고 그라요."
그녀의 목소리가 깔렸고, 말끝이 허공에 흩어졌다. 의사는 남자가 오래 버티기 힘들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남자는 곧 죽을 거라는 의사의 말과 달리 나날이 건강해졌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피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말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여, 저런 새댁 보기 드물어." 인영은 남자 곁에 앉아 낮게 말했다.
"이제 댁도 다 나았으니까, 각자 길을 갑시다. 죽을 사람 소원 들어준다는 생각으로 했응께. 갚을 필요 없고. 좀 안 다치게 조심하면서 사소. 나도 찾지 말고."
"당신 없으면 나는 이제 못 사는 거 알잖아. 나보고 어찌 살아가라고. 나는 당신 정말 사랑한당께. 내가 진짜 잘 할랑게. 나한테 와요. 아니 와 줘."
무릎까지 꿇고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인영은 자기도 모르게 읖조렸다. 인영의 책임감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무언가가 탁 하고 건드려져 터졌다. 책임감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것도 사랑일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후 남자는 참새처럼 인영의 방에 드나들었다. 그리고 인영의 동생이 떠난 자리에 남자가 파고들었다.
그들의 쪽방에는 가난이 먼저 들어와 앉았다. 쌀독은 텅 비었고,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그 사이 인영의 배가 조금씩 부풀기 시작했다.
"오늘도 속이 안 좋당가. 잘 먹어야 애도 잘 크지."
남자의 말에 인영은 웃지 못했다.
"뭐 먹을 게 있어야 먹지. 쌀 떨어진 거 안 봤소? 돈을 벌면 좀 가져와야제"
남자는 인영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배가 부풀면서 공장에 나갈 수 없게 된 인영은 아이를 위해 집안 살림을 하며 남자가 돈을 벌어오길 매일 같이 기다렸다. 그러나 남자는 무에 그리 쓸데가 많은지 오늘은 큰형이 급해서 줬다고, 다음 날은 동생들이 굶고 있다는 말을 하며 돈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런 말들이 하루, 이틀, 그리고 몇 달을 채웠다. 인영의 팔은 점점 가늘어졌고, 임신 여섯 달이라 하기엔 배도 작았다. 그리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말라갔다. 그럼에도 남자는 말라가는 인영을 보지 못했고, 인영은 결국 하혈을 하며 병원에 실려갔다. 바닥이 묽게 번지는 걸 보면서도 인영은 소리 대신 이를 악 물었다.
"괜찮을 거여. 괜찮을 거여."
남자의 괜찮을 거라는 말에 인영은 눈을 꼭 감았다. 잘못되기만 해 봐라. 인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들 것에 실려 병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주 작은 아이를 낳았다. 의사는 인영에게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넣을 돈이 있냐고 물었다. 인영은 고개를 떨군 채 남자를 찾았다.
"돈은 좀 구했소?"
"해보고는 있는디. 다들 도와줄 생각을 안 혀."
"그동안 돈은 벌어서 다 어따 썼는데. 내 딸 잘못되기만 해 봐."
"내가 알아서 할랑게. 그냥 좀 쉬소."
그렇게 나간 남자는 한참 뒤 새벽녘에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아이를 잘 묻어줬다는 이야기를 하며 인영을 꽈악 껴안았다. 그 말에 인영의 시간이 멈췄다. 자신이 몸을 바쳐 도왔던 사람들에게 한 푼도 빌리지 못하고 아이를 찬 바닥에 묻고 돌아온 남자의 손이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 차마 인영은 딸을 어디에 묻었는지 묻지 못했다.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그날 이후, 인영은 '딸'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인영은 딸을 가슴에 묻고,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딸'이라는 한 글자가 입속에서 금기처럼 굳어버렸다.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하루를 이어갔다. 곧 도시의 팍팍한 삶을 정리하고, 남자의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시아버지가 살고 있는 낡은 시골집이었다. 그나마 방이 여러 개 있었고, 나무를 때야 하지만 따뜻한 방이 있었다. 그 사실이 그저 감사했다. 인영은 매일 같이 정갈한 식사를 차려냈고, 남자도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아 집안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인영이 자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며 매일 같이 구박했다. 시아버지의 푸념과 호통이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인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을 가득 퍼 시아버지 상에 올렸다. 밥알들을 볼 때 눈앞이 하얗게 눈물로 번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인영이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주면서 아이를 잘 키우리라 마음먹었다. 아이를 돌보고, 시아버지의 푸념을 매일 같이 들으면서도 인영은 고운 상을 매일 같이 차려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남자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갈이 깔린 마당을 아작아작 밟고 들어왔다. 가을 냄새가 잔뜩 깔린 어느 오후였다.
"기분 좋아 보이네. 뭔 일 있소?"
"내가 글씨. 자네한테 선물이 있다니까."
"뭔 디 그려."
인영은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아궁이에 밀어 넣으며 미심쩍은 얼굴로 남자를 바라봤다.
"자네가 딸이 없어 속상했잖아. 내가 딸을 하나 데려왔지. 오늘 오거든."
"뭐라고? 뭔 소리여. 뭔 딸."
"큰 형 딸이 학교 가야 한대서. 내가 딸 삼아 데려오기로 했어. 형은 이제 장가가서 살아야항께. 내가 키워야제."
인영은 잠시 말을 잃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귀에 '딸'이라는 단어만 메어리처럼 울렸다. 이름 모를 아이가, 딸의 자리를 차지하러 오는 것이다. 남자는 큰형 딸을 데려온 것이 인영을 위해서 그런 양 한껏 부푼 목소리를 말을 이었다. 그리고 끝내 딸을 데려오는 대가로 700만 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그 당시 시골집 한 채와 땅 가격이 합산해서 300만 원 정도였단다.). 인영은 어이가 없어 한참 동안 남자를 바라보며 쏘아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마루에 앉아 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남자는 마루에 앉아 앞으로 열어나갈 사업 생각에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그날 저녁, 인영은 한참 동안 아궁이 앞에 서 있었다. 불이 꺼진 부엌, 식은 아궁이, 찬 기운이 발끝을 덮었다. 그녀는 더 이상 울 수조차 없었다. 눈물이란 것도 이제 다 말라버린 듯했다.
위 이야기는 소설이다. 하지만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었다. 내 나이 서른이 훌쩍 넘은 어느 겨울날, 처음으로 어머니는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놓으시더니 내게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나는 그날 이후, 오래도록 그 이야기들을 곱씹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왜 그리도 어머니가 내게 차가울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시골 아버지는 어머니께 한 번도 사과하지 않은 데다, 딸이 지금까지 어디에 어떻게 묻혔는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여전히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하시는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침마다, 그리고 나를 볼 때마다 "내가 언제 딸 필요하댔어?"라는 말을 했던 어머니의 말들이 그제야 이해 됐다. 어쩌면 시골 아버지가 나를 데려올 때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더라면 어머니는 집안 사정상 시골 아버지의 행동과 말을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데려온 후에도 돈이 필요할 때마다 친부에게 손을 벌리던 시골 아버지는 끝내 내가 돈을 대가로 교환한 딸이라는 사실을 어머니께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그 사실을 내가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세상 빛도 보지 못한 딸을 오랫동안 마음 안에서 잃고 살았다. 그 상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그 딸의 자리를 허락 없이 꿰차고 들어온 또 다른 딸인 나를 매일 마주해야 했다. 그녀는 평생 그 아이를 추모하며 살았고, 그 슬픔은 미움의 옷을 입고 내게 흘러왔다. 그래서 어머니는 때로 따뜻하다가도, 겨울바람처럼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 딸에 대한 미안함, 시골 아버지의 타인들만 돌보는 선함과 상관없는 착함, 그리고 그런 사람인 줄 알면서도 택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속상함이 내게 전가되었다는 걸. 내가 나빠서, 내가 나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어머니 안에서 일어난 갈등들이 가장 약한 대상이었던 내게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 묘하게 해방감을 느꼈다.
돌아보면 어머니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말은 거칠었지만, 마음은 유난히 보드라웠다. 굳이 돌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챙기고, 먹이고, 걱정했다. 그리고 그 품 안에서 나도 돌봄을 받았다. 게다가 어머니는 나를 데려왔을 때 내 동생을 자신이 돌보지 않아(데려오지 않아) 사이비 종교라고 말하는 곳에 몸과 마음을 의탁했을 거라는 생각에 죄책감까지 느끼셨다. 자신이 책임지지 않아도 될, 책임지지 않아야할 많은 부분에서 그녀는 책임의 돌들을 스스로 짊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때 네 동생을 같이 데려왔어야 했는데.. 그게 참 미안하고 그래."
그 말에 오래된 후회가 묻어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결혼하겠다며 데려온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서도 애틋한 마음을 가지셨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으니, 내가 사랑을 더 많이 주고 싶다고, 줘야겠다고 말이다. 그녀가 내게 보였던 과거의 태도와 말과 달리 그녀는 다양한 부분에서 책임감과 수치심, 죄책감을 느껴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나조차 제대로 키우지 못해 놓고 다른 사람들을 돌봤어야 한다고 하는 그녀를 볼 때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나는 자라는 내내 내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자라서는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울증을 앓았다.). 그러다 심리 공부를 하면서 그녀가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공의존자(돌보는 자=코디펜던트)로 자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내면에 깊은 '공의존'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걸. 그녀는 늘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며 살아왔고, 그 돌봄의 방식이 상처가 되어 내게 흘러왔다는 걸 알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느끼는 죄책감과 수치심, 죄의식들이 그녀로부터 전해진 심리적 유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유산 안에는 내 감정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는 뿌리 깊은 수치심과 죄책감이 들어있었다.
그녀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가 살았던 시간과 공간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깊이 심취하게 된다. 그녀를 이해하고 싶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듭할수록 그녀에 대한 슬픔이 깊게 베어 든다. 그리고 이제야 그녀가 책임을 물어야 할 상대가 내가 아니라 시골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릴 때 나는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내가 조금 더 예쁘게 태어났으면이라는 과한 목표들을 세워놓고 그녀의 행복과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마음 구덩이는 내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 역시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삶을 벗어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를 통해 부정적 감정들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내게 계속 뭔지도 모를 것들을 책임지라고 말하는 원가족(친인척 포함)들을 볼 때면 당황스럽다 못해 당혹스럽다.
어제 오전, 스팸함에 문자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발신인은 시골 아버지였다. 약 3 년 전 즈음 스팸 차단을 눌러놓은 덕에 가끔 스팸 함에 들어있는 문자를 발견한다. 어제는 들어오자마자 발견해서 안타까웠다.
"살아있으면 열락주라" (원문 그대로다. 정정 없이 기재.)
문장은 짧았지만, 그 안에 낯선 무게가 있었다. 한참 동안 문자를 바라봤다. 손 끝이 떨렸고, 가슴 안에 오래된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살아있으면 연락을 주라니. 무슨 뜻일까. 사실 이 분들에겐 이미 훌륭히 자란 자식들이 있다. 그러니 굳이 내가 그들의 삶에 다시 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문자가 훅 하고 들어오곤 한다. 나는 문자를 받고 한참 동안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왜 원 가족들의 연락이 반갑지 않은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어제 하루를 사용했고 오늘 새벽을 꼴딱 세우면서 감정을 소모했다. 그리고 어젯밤 남편에게 말했다.
"나. 아버지가(친부) 돌아가셨다고 연락 와도 장례식장에 가지 않으려고. 원래는 가려고 했는데. 괜히 가서 얼굴 붉힐 사람들이랑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끊었던 관계들이 다시 이어질 것 같아. 그걸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이제 내가 그런 것들을 감당할 힘이 없네.. 그러니까 오빠도 내 아버지 장례식 갈 생각 말어."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마치 오래된 사슬 하나가 조용히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아직 요양원에 계신 친부 장례식까지 마음으로 준비하며 그를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기도로, 마음으로, 그리고 나의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니까. 기도드리고. 천국 가서 만나면 되잖아. 천국 가서 보세. 이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안심되는 말인지 몰라."(왜곡된 회피형 크리스천은 이렇게 마음이 편하다.)
떠나보냄 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 그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에 놓일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삶을 돌아본다. 그녀가 타인을 책임지기 위해 그녀 자신을 버렸던 만큼 결국 그녀 역시 누군가에겐 가해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완전히 잃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스스로를 지키지 않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상태에서 행하는 모든 배려와 사랑은 모래 위에 쌓은 집처럼 언젠가 반드시 무너지고, 잃게 만든다. 만약 그녀가 뒤늦게라도 시골 아버지께 책임을 묻고, 자신을 존중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떠날 거라고 확실히 말했다면 오늘 그녀 삶이 훨씬 윤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쫓기듯, 누군가를 피하듯이 시골에 파묻혀 시간을 삭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자신 만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전가한 책임들에 둘러싸여 스스로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책임을 돌려주는 연습 부분을 쓰면서 내가 져야 하고, 돌려줘야 하는 책임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게 반드시 뭔가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석연하다. 언젠가 장로님이 전화를 주셨다.
"며느리 역할 잘하고 있어?"
"네, 선물도 많이 보내드리고 잘하고 있죠."
"그거 말고 직접 찾아뵙고, 잘해드리고 하는 거. 며느리 역할 하는 거 말이야."
장로님의 말을 듣고 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내게 주려고 한 책임이 무엇인지 한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차마 묻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끔 물어야 할 것들도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말을 삼키곤 한다. 그럴 때면 내 안에 무언가 툭하고 끊어지지만, 내가 한 번만 참으면 되니까.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삼킨다(정말 많은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면서 마음이 녹는다.). 왜 시어머니, 시아버지 역할이라는 건 없고, 며느리의 역할 만 존재할까. 시어머니의 역할이 존재하더라도 왜 부정적인 느낌에 가장 먼저 사로잡히게 될까. 역할들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내면에서 무언가 조각난다. 그리고 내 인생도 지키지 못해 오늘을 맞이하게 된 내가 이제 와서 누구를 책임진다는 말인가. 사실 오늘의 나는 내 남편의 인생을 굽이치게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안에 자리 잡고 살고 있는 내 인생에게 작은 평안과 위안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산다. 이제 더 이상 나를 소모하면서 타인을 지켜낼 만한 내면의 힘(정신적, 육체적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다.
오늘의 글을 쓰면서 나는 이제야 그들에게 그들의 삶을 돌려준다. 내 삶은 내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잘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잘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라고. 그리고 그들이 나를 잊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최근에 한 생각 중에 이런 생각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위한다며 봉사활동을 많이 하지 않던가. 그러니 알코올성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신 친부를 대신해 내게 전화와 문자를 하시는 분들에게 선한 봉사활동을 권해드리고 싶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을 위해 가진 것들을 태워(시간, 열정, 힘, 돈) 돕기도 하는데, 필요하다고 말하는,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충분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선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말이다. 사실 친부는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분들이 책임을 느껴서 내게 전화를 하고 책임을 벗고 싶어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봉사를 하면 세상의 복이든 하늘의 복이든 쌓는 일이니까. 불쌍해서 돕는 거든, 자신을 위해 돕는 거든 그 자신을 위해 좋은 일이다. 그래서 뭔가 할 수 없는 내가 대신 져줄 필요 없지 라는 마음으로 내려놨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욕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필요한 건 나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착한 사람이 아닌(누군가에게 착하다고 들을만한 사람) 선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하고 싶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도록(책임지도록) 놓아두는 것 그것이 오늘의 내가 해야 할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읽었던 지나영 교수님(닥터지하고)의 책에서 봤던 엄청난 글귀를 글을 읽은 그대에게 주고 싶다.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대할지는 네가 가르치는 것이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곳과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무료 서비스가 아니다."
이 말을 방 이곳저곳에 붙여놓고 지난 4년을 매일 일어나서, 자기 전 읽었다. 내가 나를 존중하는 연습, 타인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을 하면서 나는 이제야 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가끔 타인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꼭 기억하길 바란다. 인영이 남자에게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당신을 버릴 거야."라고 말하고 모든 것을 놓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소설 속 인영이든, 나든, 당신이든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의 존중을 결코 받을 수 없다. 그러니, 나는 나를 존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글을 적고,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나눈다. 그리고 기록들을 통해 매 순간 다짐한다. 타인의 필요를 발견했더라도 '필요했으면 진작 샀겠지. 이미 했겠지.'라는 마음으로 감정을 떠나보낸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하나님 저 사람을 축복해 주세요. 치유해 주세요.'라는 말로 타인과 나의 삶에 경계를 긋고,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킨다. 이 방법이 생각보다 좋으니 꼭 사용해 보길 바란다. 이제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드디어 살아가고 있다.
2부 9.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참고 자료
1. 지나영 교수님 책 참고
목차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6.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