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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이 Sep 18. 2023

장르 선택, 나에겐 좋아하는 장르와 잘하는 장르가 있다


※ 당사자의 모든 글은 ‘소설 쓰기’를 기반으로 한다.

※ 당사자의 글은 정답이 아니다, 누구나 쓰는 방식이 다를 수 있고 글에 대한 철학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약간의 강압적인 표현은 당사자의 생각이 그만큼 확고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사실 당사자는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글에 어떤 장르들이 존재하는지 잘 모른다. 기존에도 많았던 장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다양하고 세분화되는 모양인데, 당사자는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쭉 소설만 써왔으니, 소설에 국한해 장르를 다룰 수밖에 없다. 소설에 관심 없는 분이라면 이 글이 도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또 웹소설은 당사자의 능력 밖인데, 비슷한 부류인 줄 알았던 웹소설은 무엇보다 ‘가독성’이 중요한 분야라 비교적 문장을 길게 뽑아내는 당사자와 상성이 맞질 않았다.




장르를 분류해보자


장르는 글 자체에도 많지만, 소설이라는 하나의 분야만 놓고 봐도 굉장히 다양하다. 대충 로맨스, 판타지, 추리, 과학, 힐링 등이 있는데, 이중 어떤 장르를 써야 할까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당사자의 이야기가 참고될지 모르겠다. 일단 당사자는 개개인의 ‘배경 지식’‘경험’ 그리고 ‘상상력’을 토대로 장르를 나누고 있으며, 이유는 아래와 같다.


<과학><역사><종교>와 같은 분야는 그 장르가 소설임에도 사실을 기반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완전히 새로운 과학, 우리가 전혀 모르는 역사,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종교 이야기는 보통 새로운 세계관이라는 점에서 판타지로 분류될 확률이 높다. 때문에 이 같은 장르는 작가의 첨언이 어느 정도 포함될지언정 기본 베이스는 사실이어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건 작가의 ‘배경 지식’이다.


<장미의 이름>은 기호학을 주제로 작성된 소설이다. 해당 작가인 <옴베르토 에코>는 실제 기호학자로써 기호학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나갔는데, 스스로의 전문성을 살려 가장 자신 있는 장르를 선택해 글을 쓴 셈이다. 그렇다면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이런 사실 기반의 장르에 도전할 수 없는가? 그건 아니다. 예를 들어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에서 약간의 기호학을 다뤘다. 하지만 댄 브라운은 기호학이 아닌 미술 전공자이며, 이를 기호학과 매치시켜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냈다. 물론 다빈치 코드를 쓰기까지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수준의 사전 조사는 거쳤을 것이다. 결국 사실 기반의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면 그만큼 배경 지식이 중요하며, 철저한 사전 조사는 필수라는 걸 알아두면 좋다.


<성장><힐링><일상> 같은 장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우여곡절을 겪기 마련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유독 인생이 쉽게 풀리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찌르는 듯한 성장통이나 고난 뒤 찾아오는 힐링을 완벽히 이해할까? 쉽지만은 않을 것이며 그렇다 하더라도 진짜를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결국 어떤 우여곡절을 토대로 ‘경험’이라는 걸 해본 사람이 이와 같은 장르도 더 잘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상처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이야기에 더 쉽게 공감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책으로 예를 들어보자.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은 우리나라 대표 힐링 소설이다. 해당 소설은 제목처럼 편의점을 배경으로 사건이 진행되는데, 이때 작가가 편의점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다면 이만한 힐링 소설을 창작해 낼 수 있었을까? 직접 발로 뛰어보진 않았어도 손님으로서 보고 느낀 바가 있으니, 너무나 흔한 나머지 진부할 수 있는 편의점으로 베스트셀러까지 만들어냈을 것이다.


<판타지><로맨스><추리> 같은 상상력으로 창조되는 장르도 있다. 판타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로맨스와 추리까지 상상력이 필요할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세 장르 모두 사실을 기반으로 창조되는 건 맞지만 위에서 설명한 과학이나 역사처럼 전문적인 지식까진 필요 없으며, 경험은 글에 약간의 생동감을 더해줄 뿐 주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이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작가의 ‘상상력’인 셈인데, 약간은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보겠다.


최근 들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 <Boys Love> 장르는 말 그대로 남자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이다. 해당 글을 쓰는 대부분의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분들이 남자간의 사랑을 실제로 지켜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그런 분들도 있겠지만, 소수일 것이고 대부분은 머릿속에서 창조된 이야기를 써 내렸을 것이다.


또 <허주은> 작가의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 소설이다. 당시 조선은 어린 소녀를 매년 중국에 공녀로 바쳐야 했는데, 양반들이 딸을 지키기 위해 천한 신분의 소녀들을 납치면서 이와 같은 제목이 탄생했다. 여기서 사실은 공녀라는 제도뿐이고 그 외 배경과 사건, 인물은 작가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재구성됐다. 심지어 허주은 작가는 한국인이지만 캐나다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책도 영어로 출판되어 한국어로 번역됐다.




본격적인 장르 선택

소설 장르가 어느 정도 분류됐다면 이번엔 쓰고 싶은 장르를 선택할 차례다. 과정은 쉽다. 스스로의 강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에 맞는 장르를 선택하면 된다. 그래서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면 글을 쓰기만 하면 되지만, 대부분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것이므로, 무턱대고 잘하는 것만 골라 장르를 선택하는 건 옳지 않다. 이 경우 글을 쓰면서 괴리감을 느끼기 쉽고 최악의 경우 글을 포기할 수도 있어서이다. 당사자로 예를 들어보자.


당사자는 성장기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가정 폭력을 당했고 정신이 불편한 형제가 있었다. 웃는 날보다 괴로운 날이 많았고, 살고 싶은 날보다 살기 싫은 날이 더 많았다. 성인이 되어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는 마케팅을 공부했고 이를 생업으로 삼으며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여기까지 보면 당사자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일상><힐링><성장> 소설과 잘 어울릴 듯 보인다. 하지만 나는 싫었다. 굳이 아픈 기억을 들춰가며 글을 쓰기에 당사자는 글을 쓰는 과정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결국 당사자의 선택은 상상력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첫 번째로 완성한 소설이 로맨스였다.


로맨스 소설은 어째서인지 진입장벽이 낮아 보였다(낮아 보였다는 거지 실제로 낮다는 말은 아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장르인 데다 판타지, 추리, 과학, 일상 등 다양한 장르와 혼합도 잘 될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고 덕분에 230페이지 정도 분량을 뽑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재미가 없었다.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공통점을 찾고 동일한 감정을 품으며, 그 감정을 격양시키는 과정이 지쳤다.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인물에게 휘둘려 쓸모없는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는 느낌이었달까.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뒤, 눈을 뜬 장르는 판타지였다. 당사자는 부끄럽게도 평생 판타지의 매력을 모르고 살았다. 당연했다.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를 본 기억도 없었다. 무슨 책이든 읽어야겠다 싶어 접한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는 내게 제대로 된 판타지를 알려주었고, 그건 마치 몰랐던 세상에 눈을 뜬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 눈을 뜬 갓난아기가 판타지라는 창조적인 영역을 다룰 수 있었을까? 없었다. 당사자의 두 번째 소설이 종교와 판타지를 엮은 글이었는데, 고작 100페이지 분량을 조금 넘게 쓰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가장 많이 맞닥뜨렸다. 주제가 종교라는 점에서 배경은 실제 문헌을 참고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전부 창조해내야 했다. 상상력이 부족한 당사자에게 이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 해도 어려웠고, 그때 깨달았다. 나는 판타지에 재능이 없구나.


고민이 가장 깊었던 시기다. 완결까지 힘겨운 싸움이었음에도 해당 장르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판타지에 문외한 당사자가 얼마 만에 제대로 된 판타지를 엮어 책으로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이때 ‘좋아하는 장르’와 ‘잘하는 장르’가 갈리기 시작했는데, 깊은 고민 끝에 당사자는 결국 잘하는 장르를 선택했다. 일단 잘하는 것, 그나마 자신 있는 분야로 작가의 반열에 올라야 좋아하는 장르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약 없이 길어지는 준비 과정과 경제적 무능함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타협은 했다. 최근에 완성한 소설이 <추리> 장르인데, 추리는 사실적인 면이 존재하면서도 사건과 인물을 엮는 과정에서 적당한 창조력도 필요했다. 그래도 따지자면 판타지보다 현대소설에 가깝지만 당사자는 이 조차 행복했고, 덕분에 세 편의 소설 중 가장 즐겁게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작가지망생이라면 누구나 <쓰고 싶은 장르>가 있다. 그러나 <자신 있는 장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직접 써봐야 아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장르를 스스로 추론해 봐도 개인적인 감정이 포함되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당사자가 장르를 분류해 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스로의 강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장르를 선택하면 보다 쉽게 글이 써질 지도 모른다. 에세이를 고집하던 작가가 소설에 재능을 보일 수도 있고, 로맨스에 집착하던 작가가 과학 소설을 막힘없이 써 내려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로의 강점은 타인에게 배워도 조언을 구해도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그러니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너무 자주 막힌다면, 막혀서 제대로 완성된 글 하나 없다면, 장르를 바꿔보는 걸 추천한다. 쳐다보지도 않았던 장르가 고민 없이 술술 써지면 그때부턴 <자신 있는 장르>가 <좋아하는 장르>로 바뀔 수 있다.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고의 장르 선택하기

위에서 장황하게 풀어낸 내용을 조합해 보면 결국 좋아하는 장르든 자신 있는 장르든 직접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나 바쁘다. 당사자처럼 매일 글에 집중할만한 에너지도 없을 것이고 그만한 여유나 상황도 갖춰져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당사자가 찾아낸 방법이 단편을 써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소설, 그러니까 종교와 판타지를 엮은 소설을 완결내고 나서 당사자는 추리 비슷한 장르의 단편에 도전했다. 사실 내게 맞는 장르를 찾기 위해서는 아니었고, 주변에서 단편으로 완결 연습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조언해서 써봤다. 이미 두 번의 장편을 완성한 내게 그 말은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언이니 해봤다. 그 당시 나는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였고 어떤 조언이든 거르지 않고 전부 받아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편은 당사자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빠르게 치고 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실력을 평가받기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장편만큼 힘들지 않으니 성취감도 없었고 무엇보다 필력, 문장력, 스토리텔링에 도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내 생에 두 번의 단편은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지만 단편을 써봄으로써가 아닌 단편 장르를 추리로 선택함으로써 얻은 건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현대 소설에 강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단편이라지만, 아무리 쓰고 싶은 대로 휘갈겼다지만 너무 막힘없이 써졌다. 이전부터 구상해 놨던 내용이고 스토리텔링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시간이 단축되긴 했다. 그래도 하루 구상하고 이틀 쓰고 닷새 퇴고하여 총 여드레가 걸렸다는 건, 1만 자 미만이라 해도 지나치게 빠른 속도였다.


주변의 평가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장편보다 좋았다. 완성된 두 가지를 보여줬을 때 주변인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그때 든 생각이 ‘의외로 단편에 재능이 있나?’였고, 그 길로 바로 판타지 단편에 도전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당사자는 단편에 강한 게 아니라 현대 소설에 강한 것이었으므로. 그래서 선택한 세 번째 소설이 추리 장르였다. 판타지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당사자가 쳐다보지도 않았던 장르에 흥미를 찾은 것이다.


이처럼 재능 있는 장르는 굳이 써보지 않아도, 스토리만 구상해 봐도 다른 장르보다 막힘없을 확률이 높다. 긴가민가하다면 써보는 것이 제일 확실하다. 그러고 나면 주변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추천하는데, 본인의 작품을 볼 때 갖추기 힘든 객관성을 주변인들은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우리는 누구나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사이에 두고 딜레마에 빠진다. 글뿐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순간들을 심심치 않게 맞닥뜨리곤 하는데, 이럴 때마다 당사자는 늘 좋아하는 쪽을 선택했다. ‘감정적’인 인간이 좋아하는 것에 끌리는 건 어쩌면 본능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끊임없이 스스로와 타협하며 설득했다.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이성의 편을 들어주는 건 두드러기가 날 만큼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당사자는 후회하지 않는다. 장르를 바꿔 연재를 시작하고 그 과정이 1년 지속되는 동안 한 번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당연했다. 잘하는 쪽은 성장도 빨랐고 만족감도 컸으니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눈물이 날 만큼 힘든 적도, ‘난 안 될 거야’ 같은 깊은 좌절감에 빠진 적도 없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좌절하지 말자. 당사자가 생각하기에 세상에 재능 없는 사람은 없다. 아직 재능 있는 일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평생 글과는 인연이 없을 줄만 알았던 당사자 역시, 어쩌다 시작한 글이 이렇게까지 절발해질 줄 몰랐고 이렇게까지 많은 재능을 보일지 몰랐다. 글을 잘 쓴다는 말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당사자는 재능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지금 이 재능이 자랑스럽다.




❋ 2023.09.18 글은 매주 '월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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