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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rdan 조르단 Aug 02. 2022

[SMILE]#07. 우연한 그림과의 만남, 신문섭 님

그림은 목적이 아니라 제 삶의 일부이거든요.


때로는 따스한 만남의 자리, 때로는 옆 테이블에서 두 시간 째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의 감상이 문득 궁금해지는 공간, 혹은 열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이십여 분의 미묘한 시간을 달래는 쉼터……. 타닥타닥 잘 볶인 커피 콩이 벌어지는 즐거운 소리와 대화 소리, 느긋한 향기가 가득한 카페에서 연필과 두툼한 붓펜이 종이컵 위를 간지럽게 긁는다. 커피 대신 그림이 가득 채워진 컵 속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지는 여기는, 문섭의 비밀스러운 작업실이다.



 


반갑습니다날씨가 무덥네요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 신문섭입니다. 2020년까지 뉴욕에서 활동하다 작년에 한국으로 귀국했어요. 현재는 서울에 자리를 잡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술을 계속 공부해야겠다.’,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이 일을 직업 삼아야겠다 결심한 건 고등학생 때였어요. 그 당시엔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청소년기에 꿈을 정했지만 미술 공부를 시작한 건 28살 때랍니다. 재밌죠? 


작가님의 작품 활동 중에 컵 드로잉이라는 게 정말 인상 깊고 멋있었어요작가님을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하잖아요커피 컵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음, 시작은 정말 평범했어요. 카페에 들르면 종종 매장 모습을 스케치하곤 했는데, 그날 마침 가지고 다니던 저널을 안 가지고 온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그냥 다음에 해야겠다.’ 했을 텐데 그날은 유독 뭘 그리고 싶더라구요. 


그런 날이 있죠준비물은 없는데 지금 당장 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그릴 만한 데가 없나 찾다가 눈에 들어온 게 제가 마시던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었어요. 

카페 로고와 패턴이 프린트되어 있었는데 제 그림과 잘 맞을 것 같아서 거기다 커피를 준비하는 바리스타분들과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 제 모습을 그렸죠. 

“그날은 유독…….” 그날따라 무엇이든, 어디에든 그리고 싶었다. 시작은 그만큼 우연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린 그림을 바리스타님께 선물로 드렸어요. 그런데 정말 너무나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계속 해봐도 재밌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컵에 그림을 그린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컵의 모양이나 소재크기 등 모든 것이 다르고시간도 한정적이잖아요컵 드로잉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을까요이야기를 듣다보니 저도 한 번 해보고 싶어졌거든요.

아무래도 컵의 소재에 따라 재료를 선택해야 돼요. 그리고 곡면에 무언가를 그려야 하니까 접근 방법도 좀 달라야 하죠.


그러고 보니 컵은 그릴 면이 둥그네요둥근 면에 드로잉을 잘할 수 있는 작가님만의 팁이 있을까요?

팁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많이, 다양하게 그려보는 게 답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컵드로잉을 할 때 크게 영감을 받는 두 가지 요소는 컵에 프린트된 카페 로고와 매장 정체성이에요.


이럴 수가교과서를 중심으로 열심히 예습과 복습을 하면 된다는 답을 들은 것 같아요매장 정체성은 무슨 의미인가요인테리어나 분위기 같은 요소들을 말하는 건가요?

광범위하게 볼 수 있어요. 캐릭터를 사용하는 매장이라면 그 캐릭터라든지 대표 이미지부터 말씀하신 인테리어도 해당되겠군요. 좀 더 넓게 보면 카페가 위치한 동네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카페의 위치에 따라서 들르는 사람들의 연령대나 취향분위기가 다 다르겠네요그럼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를 담으면서도 문섭 님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어요.

어, 이 질문 어렵네요. 하하하. 음……. 스토리텔링? 어떤 그림이든 그릴 때 ‘어떤 이야기를 그려볼까?’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쩐지 한몸처럼 함께 다니고 있는 도구들. 애착이라기보다는, 일체감이다.


혹시 애착이 있는 도구가 있을까요아무래도 미술 용구니까 닳거나 소모되어서 아주 오래 쓰진 못하겠지만작가님 손에 잘 맞아서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쓰시는 제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흑백재료로는 샤프와 붓펜, 그리고 만년필이 있고 색재료는 워터브러시와 수채화 팔레트가 있어요. 

이 재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림을 그리든 안 그리든 항상 가지고 다녀요.


이번 조르단의 신제품 울트라라이트의 앰버서더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주셨잖아요이름은 Joe와 Dan으로 지어졌어요저희는 작가님을 Joe와 Dan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웃음캐릭터 작업 의뢰를 받으셨을 때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는지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디자인하셨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처음에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 가장 중점을 두고 싶었던 이미지가 바로 ‘가족’, ‘따스함’이었어요. 이 두 가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동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는데 미어캣이 떠올랐어요. 동물 캐릭터를 만드는 게 아니라서 미어캣의 외형과 이미지를 기본으로 Joe를 디자인했죠. 처음엔 치아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몸 색도 파란색으로 하고 굴곡도 강하게 주고 했는데, 작업 과정을 거치다보니 치아가 되었더라고요. (웃음) 


막연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아이디어 스케치(상단), 현재의 모습이 되기 직전의 Joe(우하단).


Dan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북유럽을 떠올릴 만한 동물을 고민해보다가 ‘순록’을 주제로 디자인했어요. 북유럽의 시크한 매력을 담고 싶어서 일부러 약간 소심하면서도 무덤덤한 표정을 선택했는데 이게 아주 마음에 쏙 들었어요.


하나의 브랜드나 제품콘셉트를 캐릭터화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요조르단도 어떤 캐릭터가 완성되어 올지다른 사람들은 조르단을 어떻게 이미지하고 있을지 많이 궁금했는데, Joe와 Dan을 작업하실 때 어떠셨나요조금 어려운 점이 있었을까요?

사실 많이 어려웠어요. 칫솔이라는 제품을 이야기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인데 조르단의 경우엔 ‘칫솔’, ‘노르웨이’ 같은 몇 가지 굵직한 키워드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잡혀있지 않았거든요. 무엇보다 조르단이 지금까지 구축하고 보여준 이미지에 제가 그리는 캐릭터의 느낌이나 온도가 잘 어울릴지가 미지수였어요. 

참고를 해보려고 북유럽에 관련된 이미지들도 많이 찾아보고, 다른 칫솔 브랜드도 조사하긴 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았죠.


실은 작가님의 시안을 기다리면서 저희도 조르단’ 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멤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봤는데 저희들도 쉽지 않더라고요그러면 결국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요?

결국요? 그냥 그리고 싶은 이미지들로 그렸어요. ‘하면서 고쳐나가면 되지.’ 하면서요. 다행히 조르단 측에서 마음에 들어하셔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작가님이 생각하는 Joe와 Dan의 매력 포인트가 있을까요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나숨겨진 의미가 담겨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음……. 전 외형적인 부분보다는 Joe와 Dan의 관계가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해요.


과연 스토리텔링을 작품세계 키워드로 꼽으실 만한걸요. Joe와 Dan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었나요?

그런가요? (웃음) 둘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졌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라는 설정이예요. 그래서 내향적인 Dan이 무표정으로 Joe 의 활동을 항상 함께하는 것이 포인트죠. 그래서 Dan의 동작이나 표정들은 시크하게 그려고 했어요. 시크한데 가만 보면 할 건 다 하는. 소위 말하는 반전매력 캐릭터라고 할까요?


내가 만들어낸 것들이 ‘실재’가 되었을 때의 충만감과 감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조르단 하우스도 직접 방문해주셨잖아요어떠세요작가님의 애정이 담긴 Joe와 Dan이 세상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지금의 기분생각마음이 궁금해요.

늘 그렇지만 제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실제로 그분들의 삶에 들어가있는 걸 보는 순간은 언제나 감동적이에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자부심이 들기도 하고요. 물론 이번에도 그랬어요. 그림에 관한 부분이야 늘 아쉬운 마음이 있죠. 제가 더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요. 다음에는 더 잘할게요. (웃음)


프리랜서이시기도 하고직급이나 단계라는 게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창작활동을 하고 계시잖아요삶의 우선 순위도 작가님이 스스로 결정해야할 것 같은데 작가님은 삶이나 일에서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와, 아까부터 든 생각인데 질문들이 깊네요. (웃음) 전 한번도 삶과 일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림을 그린다는 건 이미 온전히 제 삶의 가장 큰 부분이 되었거든요. 저는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이루고 나타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했어요. 


그림이 다른 가치들과 같이 순위에 놓이는 게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이 그림인 거군요.

맞아요. 그래서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보여지는 행동들은 매 순간마다 달라져요. 엄밀히 말하면 제 가치관은 제 종교로부터 형성되었는데 이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너무 멀리갈 것 같아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좀 쉽게 얘기하자면 ‘변하지 않는 가치’, ‘사람들과의 올바른 관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모처럼 여유가 생겼을 때그림을 그리지 않을 땐 어떤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나요

간만에 여유가 생기면 평소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컵드로잉을 해요. 엇. 결국 그림을 그리네요. (웃음) 그밖의 여가 활동이라면 사진 촬영이에요. 사진도 2005년부터 찍기 시작했으니까 꽤 오래된 취미생활이네요.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일을 하다 보면 부담감이 생기거나불안할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그럴 땐 어떻게 마음을 정리하는 편이에요슬럼프가 온다면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음, 저는 새로운 것이라고 해도 결국 기존에 있던 것들을 취합해서 재창조하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부담감은 잘 느끼지 않는 편이예요. 

제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보았던 것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만드는 거니까 슬럼프가 오면 억지로 붙잡고 매달리기보다는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쪽을 택해요.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생각에도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조금 여유를 가지고 나면 작업이 잘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을 재창조하는 것…….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해요창작은 아무 것도 없는 백지에서 시작하는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신선한 관점이라는 생각도 들구요한발짝 뒤로 물러선다면 다른 일로 관심을 돌리거나 하는 걸 말하는 걸까요?

그 방법은 딱히 정해져있진 않아요. 나가고 싶을 땐 나가고, 종일 침대에서 노닥거리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전시를 가기도 하고……. 그냥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다고 느끼는 걸 따라가죠. 답을 하다 보니 ‘나 너무 쉽게 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웃음)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나 답게 살아야지.’ 하는 이야기를 하잖아요문섭 님은 자신의 어떤 점이 문섭 답다고 생각하세요?

오……. ‘나 다움’을 문장으로 정의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듯해요. 아마 이것도 제 신앙에 기초한 가치관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그럴 거예요. 

그런 저를 잘 나타내는 표현이라면 아마 ‘흘러가는 대로’ 가 가장 적절할 거예요. 미술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난 이후로 변화가 필요할 때마다 어쩐지 상황이 자연스럽게 저를 이끌어주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요. 목표를 세우긴 하지만 과정과 결과는 ‘흘러가는 대로’라고 할까요. 


이건 정말 사소한 궁금증인데문섭 님도 인물이나 캐릭터의 표정을 그릴 때 자기도 모르게 그 표정을 따라하곤 하시나요?

완전요. 캐릭터의 표정이 곧 제 표정입니다. 



짧지 않은 프리랜서 생활을 하셨잖아요많은 프로젝트나 의뢰가 있었을 것 같은데최근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나 목표가 있다면 듣고 싶어요.

최근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은 전시예요. 규모가 큰 작품을 해보고 싶거든요. 목표라면 아주 오래된 꿈이자 제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하게 된 계기인데, 디즈니나 픽사에서 캐릭터 콘셉트 디자이너로 일해보고 싶어요. 

아, 하지만 솔직히 이 꿈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거나 준비를 하는 건 아니라서 막연한 꿈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좋겠어요. 

그래도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문섭 님은 조르단 제품을 사용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있다면 어떤 제품인지어떤 부분이 좋은지아직 없다면 어떤 제품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왜 그 제품이 끌리는지 알려주세요!

아, 조르단 제품은 최근에 계속 쓰고 있는데 그린클린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우선 디자인이 정말 제 취향이에요. 심플한 디자인인데 그립도 편하고, 형태가 예쁘거든요. 쓰다 보니 느끼는 거지만 모의 퀄리티도 좋아서 푹 빠졌답니다. 다른 제품들도 한 번 씩 다 써보려구요. 


내가 사랑하는 일에 푹 빠질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 그것이 새삼스럽게 행복해질 때가 있다.

이번엔 늘 하던 질문을 좀 바꾸어볼까 해요최근에 문섭 님이 행복하다고 느꼈던 일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네요
마음에 들었던 공간에 갔다든지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었거나즐거운 해프닝이 있었다든가……. 무엇이든 좋아요.

뜬금없지만 작업을 모두 마치고 입금 내역을 확인한 뒤 그 달의 생활비 계산이 다 끝났을 때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돈이 들어와서가 아니라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제 삶이 참 감사하고 행복했거든요.

늦은 나이에 시작한 그림쟁이의 삶이지만 스스로만이 아니라 주변의 많은 도움과 관심으로 계속해서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는 걸 생각하면 행복하기 충분하잖아요.




문섭 님은 삶에서 미소란 건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기쁨의 나눔, 행복의 나눔이라 생각해요. 미소라는 단어를 읽자마자 행복해졌어요. 정말요. (웃음) 




[Jordan Smile Talk Project]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의 ‘미소‘, ‘웃음’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프로젝트입니다. 작은 미소들이 모여 큰 웃음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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