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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아 Nov 08. 2024

귀신이 고칼로리 18

상아 경장편 소설

이 관계가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덫에 걸려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랑을 말하다가도 다음 날이면 죽일 듯이 달려드는 그 광기에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도움을 청해봤지만 사람들은 유난히 연인이나 가족 간의 갈등은 쉽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여자는 매번 출구를 바로 앞에 두고 뒤돌아서야 했고 서서히 포기를 배웠다.




바닥에 닿아있던 창백한 얼굴이 해주를 향했다. 여자가 두 팔과 두 발을 빠르게 움직이며 테이블 아래를 지나 가까워지는 너머로 바닥에 어두운 흔적이 새겨졌다. 불을 켜지 않아도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도희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하리는 해주의 한 걸음 뒤에 서서 여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영혼을 붙잡아 돌려보낼 기세였다. 해주는 그런 하리의 기운이 느껴지자 안심이 되었다. 


“보여주세요. 뭘 원하는지.”


여자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면서 손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갔다. 기도를 막고 있는 양말을 빼고 싶은지 고통스러움에 꺽꺽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피를 토함과 동시에 악취가 확 퍼져나가는 순간 형체가 사라졌고 잠시 휘청거린 해주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하리의 긴장한 손길이 해주의 등에 닿았다. 


“커억!”


해주가 목을 감싸며 숨이 막히는 소리를 냈다. 다급해진 하리가 곧장 능력을 쓰려는데 도희가 해주을 부축하며 하리를 말렸다. 해주는 금방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해주야. 잘하고 있어.”


고요한 방 안이 해주의 숨소리로 가득 찼다. 하리에게는 길게 느껴진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붉어졌던 해주의 눈동자가 돌아왔다.


“그 남자를 찾아야 돼.”


“하지만 어떻게? 동네를 다 뒤질 수도 없는데.”


도희가 난감한 반응을 보이자 해주가 손에 들고 있던 귀걸이를 쳐다봤다. 대충 코피를 닦아낸 뒤 해주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해주야, 어디 가는 거야?”


“돌려달라고 했어. 가까운 곳에.”


하리는 해주의 행동을 이해한 듯 말없이 뒤를 따라갔다. 도희도 허둥지둥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한 뒤 두 사람을 쫒았다. 해주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무작정 돌아다닌다고 범인을 만날 수 있을 리 없었다. 머리를 굴린 도희가 주변 가게에 들어가려는 때였다. 


“얘들아.”


해주의 부름에 도희가 몸을 틀었다. 하리는 이미 해주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저 사람….” 


아무렇게나 버려진 박스를 접어 손수레에 실은 남자가 중얼거리며 가까워졌다. 

덥수룩한 수염에 날씨에 맞지 않는 지저분한 남색 점퍼, 모자를 눌러쓴 남자에게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하리와 도희는 조금 긴장한 채 해주의 말을 기다렸다. 


“저 사람이야.” 


세 사람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남자가 얼굴이 보일 거리까지 다가왔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지 살핀 도희가 귀걸이를 들고 남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귀, 귀걸이 한쪽 어딨는지 알아요?” 


흰자가 더 많이 보이는 쳐진 눈동자가 휙 돌아갔다. 뻔뻔한 편인 도희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남자의 모습에 겁을 먹을 수밖에 없어서 쭉 뻗은 팔이 떨렸다. 


“돌려줘.” 


동시에 해주에게서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남자의 눈이 커졌다. 남자는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더니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허둥지둥 무릎을 꿇은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 줘!”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렸지만 해주는 남자와 단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해주는 대답 없이 남자를 내려다봤다.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남자는 급하게 주머니를 뒤졌다. 


“이, 이거면 되는 거지? 다, 다신 안 나타날 거지?!” 


던지듯 내려놓은 귀걸이는 새것처럼 멀쩡했다. 하리가 빠르게 귀걸이를 집어 들고 해주를 부축했다. 남자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벌벌 떨며 손을 비벼댔다. 


“이제 괜찮아, 해주야?” 


하리가 해주의 손에 귀걸이 한쪽을 쥐여주었지만 해주는 여전히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구해주?” 


“… 돌려줘….” 


낯선 목소리가 다시 한번 흘러나왔다. 도희는 설마 하는 얼굴로 귀걸이를 받아 들었다. 하리도 한 박자 늦게 이해하고 도희와 같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떨고 있던 남자는 자신에게 돌아온 귀걸이를 보고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왜, 왜…” 


“가져가야 해요. 안 그러면 끝나지 않을 거예요.” 


하리가 단호하게 말했고 망설이다 귀걸이를 받아 든 남자가 서둘러 도망갔다. 비틀거리는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남자를 응시하던 해주가 코피를 닦았다. 


“이제 됐어.” 


“해주야, 괜찮아?” 


살짝 미소 짓는 얼굴이 평소의 해주로 돌아왔음을 알려주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도희가 티슈를 꺼내 해주의 얼굴을 닦았다. 하리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렇게 끝내는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 자업자득이지!” 


도희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였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친구들을 데리고 아주 아주 배부른 야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좁은 방 안에 들어온 남자는 숨을 몰아쉬며 쓰러지듯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며칠째 씻지 못한 몸에서 악취가 났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배운 것도 없고 갈 곳도 없어 눈총을 받으면서도 버티고 있는 삶이 후회스러웠다. 그 저주받은 귀걸이! 

여자가 죽은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남자를 괴롭히던 꿈이 기어이 현실이 되었다. 술은 정말 조금 마셨고 모든 것은 실수였다. 평소보다 여자가 피를 많이 흘리는 걸 보고 도망친 그때부터 남자는 지옥을 경험했다. 

밤새 귀걸이 이야기를 하기에 잡힐 각오를 하고 노래방에 몰래 들어가기까지 갔지만 한쪽은 찾을 수 없었고 남은 귀걸이를 갖고 있어도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갖다 버릴 수도 없었다. 수사를 받을 때도, 폐쇄 병동에 갇혀 있을 때도, 운 좋게 조기 출소했을 때도 여자는 그의 옆에 있었다. 무언가를 찾는 듯 자신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끊임없이 틱틱거리는 소리나 끅끅대는 소리를 낸다. 

전과가 있고 정신도 온전치 못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폐지나 공병을 모으며 근근이 버티고 있던 그는 이제 다 끝났다는 아이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졌다. 부디 오늘 밤은 편하게 잘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남자는 잠이 들었다. 


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돌아왔다.


바닥을 기던 여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검붉은 색으로 물든 양말이 남자의 입 속으로 들어왔고 그가 발버둥을 쳤지만 여자의 힘이 더 셌다. 며칠 뒤 연락을 받지 않는 남자에게 밀린 월세를 받기 위해 방문을 열었던 집주인이 다급하게 경찰을 불렀다. 입 안에 들어있던 양말 수십 켤레를 꺼내자 반짝이는 귀걸이 한 쌍이 걸려 나왔다. 처지를 비관한 자살. 찾는 이 없는 시신은 그렇게 잊혔다. 




“하리야, 해주야.” 


입이 간지러워서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다급하게 들어온 도희가 곧장 하리와 해주의 자리로 다가왔다. 새로 나온 딸기맛 초코바를 먹고 있던 하리가 도희에게도 초코바 하나를 내밀었다. 


“그 남자 있잖아. 집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대. 근데 입 안에 양말이 들어있었다는 거야. 나 완전 소름 돋아.”


노래방에서 더 이상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소식까지 듣자 해주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잘한 행동인지 모르겠어. 어쨌든 사람이 죽었는데….” 


“죽어도 싼 놈이긴 했지.” 


도희는 대수롭지 않게 초코바를 씹으며 대꾸했지만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고 하리는 이미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귀신을 돕는 게 꼭 시원하거나 아름다운 결말로 끝나진 않더라고.” 


하리에게는 뼈아픈 기억으로 남은 사건이 떠올랐다. 호기심 가득한 친구들의 눈빛을 마주한 하리가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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