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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아 Oct 25. 2024

귀신이 고칼로리 02

상아 경장편 소설

오래된 폐가에는 음기가 가득하다. 

그곳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되며 만약 발을 들였다면 최대한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신속하게 빠져나와야 할 것이다. 

그 안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행동은 무엇인가를 가지고 오거나 무엇인가를 두고 오는 것이며 두 행동을 전부 하고 말았다면 그 후에 일어날 모든 일은 당신의 책임이다.




딩동댕동 반가운 종이 울리자 해주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벌떡 일어난 하리가 힘차게 외쳤다.


“밥 먹으러 가자! 오늘 급식 쩔어.”


몇 분 뒤, 해주는 시끄러운 급식실 안에서 하리의 팔을 꽉 붙잡은 채 서 있었다.


“학교 왜 쉬었는지 물어봐도 돼?”


딱 봐도 어울리는 무리가 있을 것 같은 하리가 자신과 둘이서만 밥을 먹는 상황이 의아했으나 살갑게 말을 거는 하리는 그런 것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짧은 고민을 마친 해주가 물을 들이켜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꾸 이상한 게 보이고 나도 모르게 헛소리도 하고…. 몸이 많이 아팠어. 지금도 좋아진 건 아닌데 엄마가 걱정을 너무 많이 해서….”


“음. 시금치 안 좋아하나 보다. ”


젓가락을 깨작거리는 해주에게 농담을 던진 하리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가면 안 되는 곳을 갔네.”


“응?”


“병원도 가봤어? 교회나 절은?”


“병원…갔었는데 딱히 이상이 없다고….”


“너. 일단 잘 먹어야겠어.”


잘 구워진 미니 돈까스가 해주의 식판에 올려졌다. 야무지게 케첩까지 옮겨주고 뿌듯해진 하리가 또다시 해주의 목을 감싸는 흰 손을 툭 건드렸다.


“어떻게 하는 거야?”


어깨가 또 한 번 가벼워지자 해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증상이다. 알고 보니 별 게 아니었다면 그동안 내가 받은 고통은?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리는 대답 없이 식판을 비웠다.

밥을 한 번 더 받고 깨끗하게 해치운 뒤 매점에서 메로나 두 개를 집어 든 하리가 자연스럽게 운동장으로 향했다. 삼삼오오 모여 빙글빙글 운동장을 돌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 끼어들자 몸으로 느껴지는 평범한 순간의 특별함에 해주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난 메로나가 제일 좋더라.”


남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밀며 하리가 말했다.


“어떻게 했는지 물었지? 나는 귀신을 봐. 소리도 들리고 만질 수도 있어. 너한테 달라붙는 거 정도는 그냥 톡 쳐주기만 해도 사라진다고.”


취미를 소개하는 것처럼 여상스러운 말투였다.


“대신 귀신이랑 어떻게든 접촉하고 나면 배가 엄청 고파. 그래서 많이 먹는 거야.”


들을수록 궁금한 게 많아지는 답변이었다. 해주는 얌전히 하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무튼 내 눈에 보이는 이상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너 무슨 짓을 했어? ”


해주와 눈을 맞추고 있지만 그 너머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한 눈빛이었다. 이제 더 이상 차갑지 않은 묵직한 목소리는 해주가 저절로 이야기를 꺼내게 했다.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먹은 해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딱 기분 좋게 달았다.


“우리 집은 친가, 외가 어른들이 다 개신교라서 귀신이나 무속신앙 같은 건 안 믿거든. 그래서 내가 아픈 이유도 정확하게 몰라.”


점심시간은 길지 않았기에 해주는 최대한 요약해서 말하기로 했다. 긴 시간을 짧게 줄이려니 주마등처럼 장면들이 흘러갔다.


“그냥 나 혼자서 그 일 때문이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6년 전, 13살의 구해주는 그 나이대의 아이들처럼 방과 후에 문방구에서 군것질을 하고 교재가 든 가방과 함께 피아노 학원에 가던 평범한 소녀였다. 

겨울방학을 맞아 초등학생의 마지막 순간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던 친구들과 동네 뒷산에 올라간 날이었다. 두툼한 박스와 낡은 포대자루,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커다란 김장 비닐까지 온갖 재료들로 만든 어설픈 썰매를 타고 신나게 놀던 중 평소 이런저런 소문을 자주 풀어놓던 지민이 빨개진 손을 녹이며 말을 꺼냈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엄청 큰 집 있는 거 알아?”


워낙 유명한 흉가였던지라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용한 무당이 쓰던 당집이라고 했던가, 사이비 신도들이 머물던 집이라고도 하고 연쇄살인범이 숨어있던 곳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었겠다, 이제 곧 중학생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했던 아이들은 의기투합해서 그 폐가에 가보기로 했다. 겁이 많은 두어 명을 제외하고 해주를 포함한 네 명의 친구들은 씩씩하게 산을 올랐다.

15분 정도 걷자 잘 관리된 등산로가 사라지고 빽빽한 숲이 나타났다. 그 사이로 새카만 양옥이 보였다. 누군가가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묵직해 보이는 철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용감한 탐험대는 작은 정원을 지나 그을린 흔적이 있는 붉은빛의 나무 문을 열었다. 

쓰레기가 버려져 있고 지저분하게 풀이 자라 있는 외부와 다르게 건물의 안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먼지가 춤을 추긴 했지만 내심 기대했던 것들은 보이지 않아 다들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별거 없네. 무당이 살던 곳은 아닌가?”


가장 적극적이었던 서현이 입을 가리며 낡은 옷장을 열었다. 할머니 집에 있는 까만 자개장과 비슷해 보였다. 역시 텅 비어있는 옷장을 닫음과 동시에 쿵 하고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느슨하게 풀어졌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2층에서 난 소리 같아.”


“가보자!”


서현이 앞장섰고 복도 끝에 다다르자 가파른 나무계단이 보였다. 삐걱삐걱 비명을 지르는 계단에 아이들의 발자국이 하나둘 찍혔다. 무사히 2층으로 올라간 그들은 땀에 젖어 축축해진 손바닥을 닦았다. 2층은 두꺼운 커튼이 창문을 가리고 있어 1층보다 더 어두웠다.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갖고 있던 해주가 플래시를 켰다. 작은

빛줄기가 복도를 갈랐다. 자연스럽게 빛을 따라 고개를 돌린 아이들의 시선 끝에 커다란 거울이 보였다. 화려한 색색의 천이 감싸고 있었다. 거울에 몇 걸음 더 가까이 가자 긴장한 얼굴 넷 옆에 살짝 웃고 있는 얼굴 하나가 비쳤다.

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낯선 얼굴을 발견하지 못한 지민이 거울 오른편 방의 문고리를 잡았다. 거의 동시에 해주가 지민을 막았다.


“지, 지민아.”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가리키자 지민이 고개를 돌렸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터져 나온 비명과 함께 뒷걸음질을 치고 있던 서현을 선두로 달음박질을 쳤다. 먼지바람이 코와 목을 막는 것이 느껴졌지만 공포가 더 컸다. 가장 뒤에서 달리게 된 해주는 귓가에 들리는 웃음소리 때문에 더욱 공황 상태

에 빠졌다. 눈물이 가득 고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악!”


결국 해주는 1층 복도를 한 계단 남기고 넘어졌다. 문 앞까지 도착한 친구들의 얼른 나오라는 외침이 아득하게 들렸다.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지만 창피한 마음도 커서 이를 꽉 깨물었다. 해주는 툭하고 작게 뜯어지는 소리를 무시하고 빛을 향해 폐가를 빠져나갔다. 먼지를 뒤집어써서 엉망인 꼴로 숨을 몰아쉬는 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공포심 때문인지 정말 귀신을 봤다는 희열 때문인지 쿵쿵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기침을 하는 해주에게 친구들의 시선이 쏠렸다.


“해주야, 너 피 나!”


손바닥과 무릎이 엉망이었다. 두툼한 흰색 면바지는 찢어져 긁힌 상처를 보여주고 있었고 해주가 아끼던 코트에도 허리춤에 구멍이 나 있었다. 휴대폰 역시 여기저기 긁혀 상처투성이였다. 그제야 통증과 엄마에게 혼나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긴장이 풀린 다른 친구들은 금방 재잘거리며 무용담을 늘어놓았지만 해주는 골목에서 각자 집으로 헤어질 때까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온몸이 욱신거렸고 열도 나는 것 같았다. 긴장한 상태로 문을 열자 엉망진창인 모습으로 돌아온 딸을 발견한 어머니가 깜짝 놀라 주방에서 달려왔다. 본능적으로 폐가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는 걸 알았기에 부상은 썰매를 타다 다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고 나서 하루 이틀 정도 지났나? 처음에는 악몽을 꿨어.”


이제는 익숙한 꿈속 여자를 떠올린 해주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리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두운 방에 갇힌 것처럼 주변이 깜깜한데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고 점점 뜨거워지는 거야. 묶여있는 것도 아닌데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떨고 있으면 누가 속삭이기 시작해.”


죽어. 죽어. 다 되돌려 놓지 못하면 지옥으로 떨어질거다. 불구덩이에서 찢기고 또 찢겨 고통만이 가득한 시간 속에서 영원히 살아라!


기도문을 외우는 듯한 저주의 말을 듣다 보면 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매일 반복되는 악몽 탓에 아직 어린 몸은 하루하루 말라갔다. 온갖 병원을 돌아다녀 봤지만 해결책이 없었다.


“친척들이 다 개신교라고 했잖아? 근데 엄마, 아빠는 무교거든. 내가 악몽 꾸고 밥도 못 먹고 자꾸 아픈데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하니까 어른들이 엄마랑 아빠한테 교회 가라고 엄청 뭐라고 했어. 나도 매주 교회 가서 같이 기도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소용이 없더라고. 예배드릴 때 잠깐 괜찮아져도 집에 오면 그대로였어.”


“그럴만하지.”


해주의 작은 목소리를 집중해서 듣던 하리가 동의했다. 자신이 털어내 준 작은 귀신들보다 더 독한 귀신이 숨어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 여자만 보였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것도 보였어.”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볼 때나 버스 유리창 너머, 학교 교실 뒤편 창문 등 해주의 모습이 비치는 곳이라면 어디든 팔다리와 어깨에 알 수 없는 형체가 매달려 있었다.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기절하는 것도 주변의 반응 때문에 꾹 참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점점 친구도 없어지고 말도 잘 못 하게 되고 그랬지.”


“힘들었겠다.”


해주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어떤 때는 자신도 모르게 무당처럼 위험을 예지하기도 했다. 원래 평범하지 않은 것들은 거부감을 주기 마련이라 해주는 자연스럽게 고립되어 갔다. 마음의 병이 생기면서 증상이 나아질 가능성이 더욱 줄어든 셈이었다. 결국 3학년이 되기 전 휴학을 했고 차도가 없자 학교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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