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에 날리는 낙엽들이 서서히 한 두 장씩 쌓여가기 시작하는 가을 초입이다.
아직 노란 은행잎의 모습은 이른 듯하다.
가을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가까이에서 예쁜 단풍잎 하나 찾기는 어렵다.
뭐든지 너무 가깝게 들여다보면 실망하고 후회하게 되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쳐다보는 것이 아름다운 것 같다.
낙엽 쌓여 있는 숲길도 좋고 은행잎 쌓이는 거리를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은 곳을 찾아
이번 토요일은 손녀와 <지폐 속의 숨은 그림 찾아가기>로 약속했다.
만 원짜리에 있는 명륜당과 그곳에 있는 멋진 은행나무을 보고,
천 원짜리에 있는 창경궁에서 일월오봉도를 찾고, 춘당지 인근의 가을 숲 길을
느껴 보기로 했다.
매주 일기와 독후감을 써오면 한편에 천 원씩 주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얼마나 철저하든지 3편을 써 올 때 천 원짜리가 없어 보너스라고 오천 원을 줘도 절대 안 받는다
약속이니 지키야 한다고 한다. 경제 개념도 시킬 겸 지폐 안 도안에 대한 것을
얘기해주곤 했다. 천 원, 오천 원, 만 원, 오만 원짜리 중 오만 원권의 신사임당에 대해서는
약간 반기를 드는 듯하다. 세종대왕이 오만 원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10시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으로 갔다. 처음으로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랑 여행하기로 했다.
건강하여 걸어 다니는 것도 싫어하지 않고, 떼쓰는 법은 아직 한 번도 없는 초1학년이다.
오늘은 할머니와의 여행이 기대된다고 말한다
처음으로 지상으로 다니는 지하철을 탔다고 한다.
지상으로도 가고 물속으로도 가는 지하철을 설명해 주며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으로 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 연극인들을 설명해 주고 오늘 지폐 속 도안에 나오는 것들을 찾기로 했기에 천 원. 만 원짜리 한 장씩을 꺼내 줬다.
명륜당과 창경궁을 가기로 했다. 언제든지 피곤하거나 싫으면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언제든지 말하면 사준다고 약속했다
혜화역에서 걸어 이십여분을 걸으면 성균관대학교 들어가는 입구 하마비부터 시작했다. 대궐의 담장과 기와를 유심히 살피는 것 같았다. 명륜당에 들어가니 마침 성균관 유생들의 행사가 있어 덕분에 실감 나게 잘 볼 수 있었다. 가방에서 준비해 온 메모지를 꺼내고 천 원짜리를 살피더니 돌멩이 위에 앉아 명륜당을 그리기 시작한다.
한자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는데 明倫堂이라는 현판을 제법 베껴 쓰는 것 같다. 어처구니도 그린다. 동재에 대해 설명해 줬더니 동재와 그곳의 나무까지 그린다. 동재, 서재등과 향관청등은 다들 문을 꼭 잠궈둬서 안을 볼 수가 없는 것이 흠이었다. 진사식당도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아뒀다. 은행나무는 아직 푸른 잎을 달고 있어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나무에 대한 것은 쾌 많이 들려준 것 같은데 생각과 다르게 관심이 별로인 듯해서 내 입장에서는 서운했지만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대충 12시가 다 되어 밥을 먹고 가자고 했지만 별로 배고프지 않으니 오뎅 쭈그리만 먹겠다고 한다
덕분에 나도 밥을 못 먹고 쭈그리 하나만 사들고 창경궁으로 향했다. 자기 동네보다 비싸다고 하나만 먹겠다고 한다. 그래서 베낭 안에 간식이 있으니 배 고프면 그걸 먹기로 했다.
24세부터 65세까지만 입장료를 받는 곳이라 공짜로 둘이 홍화문을 입장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주고 일월오봉도를 찾기로 했다. 옥천교가 왜 있는지부터 살펴보고 명정전까지 들어가자
어좌 뒤쪽에 있는 일월오봉도를 쉽게 찾는다.
환경전 쪽에서 노랫소리가 나 그곳으로 갔다. 3시부터 하는 무애를 리허설 하고 있었다. 햇살이 제법 내리쪼이는 가을날의 오후였다. 쪽머리가 신기한지 노트를 꺼내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꼭 무애를 보고 싶다고 해서 잠시 춘당지를 살펴보고 사진도 찍고 다시 오기로 했다.
가을 모습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창경궁이 덜 물든 단풍이지마 그래도 아름다웠다. 백송도 보고 뒤쪽에 있는 식물원도 봤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 춘당지가 보이는 넓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셀카도 찍고 서로 찍어주고, 간식도 먹고 신나 했다. 사진을 제법 잘 찍는다. 왜가리가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는 모습도 신기했다. 항상 있던 원앙이 가운데 정원에 숨어 보지 못해 아쉬웠다.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탐험하는 사진처럼 나오니 깔깔거리며 좋아한다. 한복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 보이니 부러웠나 보다. 다음에 경복궁 갈 때는 한복을 빌려 입고 가보자고 한다
2시 반이 되어 환경전 쪽으로 갔더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오픈 전 행사를 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니.
동영상을 계속 찍고 있어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 흥미가 있나 보다 했더니 너무 느리니 재미가 없다고 한다. 3시 반쯤 되자 가는 게 낫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와 그 옆에 있는 국립 어린이 과학관에 들려 보자고 한다. 시간이 너무 늦어 1층만 보고 오자고 했는데 너무 신기한 것이 많아 1시간여를 머물다 나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물어보니
명륜당이 가장 멋있었다고 한다. 자기 엄마 아빠랑 다니는 것과는 다른 방법이라 좋았다고 한다. 점심도 못 먹고 강행군을 했지만 피곤해하지 않고 즐거웠다고 하니 나도 보람 있는 하루였다. 다음 번에는 세종대왕을 보고 싶다고 해서 광화문으로 갈까 여주로 갈까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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