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산책하기
겨울 끄트머리가 너무 길었나 보다.
두툼한 코트를 벗지도 못하고 있던 어제였는데 갑자기 봄이 반가운 손님으로 찾아왔다.
쏜살같이 가지 말고 좀 느긋하게 머물다 가기를 바래본다.
아침 등교 때마다 사진으로 보는 9살짜리 손녀딸의 치마 길이가 짧아졌다.
자꾸만 치마를 집어 올린다고 한다. 봄바람이 치마단을 올리나 보다.
창가에 긴 꼬리를 하늘로 올리고 고양이가 햇살을 받고 있다.
봄을 맘껏 즐기는 듯 기분이 좋나 보다. 깊숙이 들어온 햇살을 찾아 강아지도 꾸벅꾸벅 졸고 앉아 있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낸다고 하는데 그냥 봄빛 찾아 공원으로 들어가 본다.
자외선 탓인지 벌써 얼굴이 따갑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도 상큼한 맛이 난다. 가운데에 있는 분수도 덩달아 신바람이 난 듯 물을 내뿜는다. 그 곁의 호수에는 봄 햇살에 윤슬이 유리에 반사된 듯 반짝거린다. 아직 산책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우중충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화사한 봄옷으로 바뀔 것이다.
벌써 개나리꽃도 봄 내음을 품고 있다. 한껏 부풀어 있다.
용트림하듯 뒤틀린 커다란 버드나무는 가는 줄기를 늘어뜨리고 있다.
연두색 싹을 벌써 자랑스럽게 내놓고 바람에 춤을 추고 있다.
파마머리를 한 용버들의 치렁치렁한 가지는 더욱 멋져 보인다. 한 컷 멋을 부린 것 같다.
바닥에는 벌써 아주 작은 아이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이른 봄 야생화를 보려면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허리를 굽혀 영접해야만이 인사할 수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하는데 이 아이들도 그러나 보다.
꽃다지는 노란 꽃을 내밀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세상 구경한다. 아마도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하나 보다.
연보라색 작은 꽃을 피운 봄까치꽃도 곁에 있다. 이 아이들은 큰개불알풀이라고 불렀다. 종자가 개의 고환을 닮아서 이름 붙여졌다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동물들의 모습을 보고 이름 붙이는 걸 좋아했는지 동물 이름이 들어간 꽃 이름이 참 많다. 봄까치꽃은 예쁜 이름으로 바꿔 불리는 자신들이 자랑스러운지 고운 자태를 더욱 뽐내고 있다.
울타리 가에는 벌써 잎들이 다 나오고 있다.
움츠리고 있던 사철나무에도 작은 순을 내보이고, 찔레 순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낮볕이 반가운지 다들 실눈을 뜨고 있다. 어느 순간 활짝 핀 모습으로 놀라게 할 것이다.
노란 꽃들을 가득 안고 서있는 산수유는 햇발을 즐기고 있다.
야트막하지만 큰 나무들이 서 있는 곳들의 봄은 더욱 부산스럽다.
숲속의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이 볕살에 숨을 쉬기 시작한다
메말라 있는 활엽수들 사이로 초록이 많아져 간다. 지금보이는 초록 잎들은 부지런한 귀룽나무 잎이다. 귀룡나무 싹이 돋는 숲속은 봄이 됐음을 가장 먼저 알려준다.
하얀 구름처럼 뭉게뭉게 꽃이 나올 귀룽나무는 나무 중에 가장 부지런하다.
부지런한 귀룽나무처럼 올해도 부지런하게 시작해 봐야겠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봄이지만 그래도 꼭 붙잡고 함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