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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Aug 30. 2023

중국에서_ 1편

생일을 맞이하며


2016.06 어느 날

중국에 도착하고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친구가 아버지 통해 구해온 kf94 마스크를 쓰고 세관 통과를 하기 위해 줄을 섰다. 생각해 보면 마스크를 썼던 나 자신에게 왜 그리 오버를 하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웃긴 경험이었다. 심지어 실외도 아니고 실내에서 방역 마스크를 썼으니 ㅋㅋㅋㅋ 나는 이제 선배들이 추천해 준 훼이꿔로우를 처음 먹으러 가보겠다. 너무 설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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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의 나이에 떠난 중국 어학연수에서 처음 썼던 일기의 일부분이다. 중국에서 보낸 시간들을 돌아볼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 내 안에서 한 가지 고민을 두고 길고 치열하게 씨름을 했던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품고 갔던 중국에서의 시간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3개월간 동고동락하며 추억을 쌓을 생각과 다른 한편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고민이 어떤 식으로 내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이 교차했다. 일기도 감사 일기와 걱정 일기를 따로 쓸 정도였으니, 그때의 내가 유독 보고 싶은 오늘이다.

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상당히 들떠있는 상태였다. 감사 일기 대부분이 이러한 상태였음을 미루어 볼 때, 차분해질 때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내 고민들을 마주하기 싫었던 것이었겠다. 그리고 결국 마주했을 때 내가 그 뒤로 지나야 했던 수많은 자아성찰과 비판이 반복되었던 굴레들을 생각하면 누구 하나 쉽게 의존하기 어려웠던 타지에서만큼은 즐거운 순간들로 채우려고 했던 것이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이 가지는 영향력은 상당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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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 어느 날

오늘 오랜만에 A와 함께 산책을 했다.

그리고 A가 내게 말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성일이의 모습이 왜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건지 문득 궁금했어. 너는 훨씬 더 강하고 힘이 있는 사람인데, 스스로 자처해서 가벼워 보이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이 말을 듣고 방 책상에 앉은 지금, 혼란스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남에게 보이는 모습과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의 괴리가 계속 발생한다. 애초에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는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그 친구는  어쩌다 나의 그런 모습을 발견했을까? 그래도 나는 토끼보단 거북이가 되기로 했으니 천천히 내 갈 길을 가다 보면 정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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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덮어 놓고자 했던 고민들이 나의 행동에 불안정성을 더해줘서인지 그게 금세 나와 가까웠던 친구에게는 티가 났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대해 한창 노력하고 신경 썼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친구의 그 말에 상당히 충격을 받고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감정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불안이 차츰 안정되었을 때, 이 시간을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 하에 감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움과 추억들이 겹겹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중간중간 혼자만의 시간, 남과의 대화, 특정 상황들 가운데같이 쌓여갔던 고민의 흔적들이 내 안을 채워가고 있음을 체감하기 시작할 때 즈음, 중국 어학연수의 마지막 날과 나의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날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축하를 해주었고, 나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던 수박 껍질에 (다른 글에서 설명을 하겠다) 친구들이 롤링페이퍼를 적어주었다. 그때의 내가, 그 많은 사랑과 축하들을 조금 더 특별하게 여겼더라면 그 뒤의 시간들 가운데 더 많은 기쁨을 누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든다. 


7년이 지난 지금 24번째 생일을 맞이한 내가 중국에서 적었던 일기들을 다 읽어보며 알게 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나의 모든 일기에는, ‘나’만 존재했던 순간이 없다. 감사할 때도, 걱정할 때도 나만이 아닌 남이 들어가 있고, 홀로 있는 줄 알았던 상황에도 다른 상황과 환경들 속에서 나는 살아 있었다. A와 산책을 하고, B와 밥을 먹고, C와 싸웠다. 천안문을 갔었고, 천진을 갔었고, 상하이를 다녀왔다.


우리는 체인처럼 서로에게 엮여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정말 감사한 사실 한 가지는 우리는 내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만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통계 내에서 다음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사실을 깨달은 오늘, 내가 중국에서 썼던 일기는 이전과 전혀 다르게 보였다. 친구에게 나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그것을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부정적이든 의미도, 긍정적이든 의미도 아닌 정말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나만의 세상이라는 틀이 주어진 일기 속에 남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사실이 나만의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더욱 견고하다 못해 아름답게 해준다는 것을 오늘 깨닫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살아내지만, 결국 그 경험은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지금 내가 마주하는 한 사람을 결코 소홀히 대하지 못하게 한다. 그만큼이나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력이 있고, 어쩌면 경계해야 할 정도로 힘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결국 내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 되겠다.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 가득했던 중국에서의 시간 중 이틀을 나눴지만, 그 이틀이 40번 모여 80 일정도 되는 중국에서의 시간을 채웠음을 생각할 때, 만으로 23년 살아온 오늘 나는 지금 내가 살아내고 있음을 대견해 하기 전에 모든 상황에 대한 감사를 고백한다. 그리고 오늘 하루 스스로가 아쉽게만 느껴진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토닥여주고, 또 반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용납해 주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나 자신에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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