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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Apr 20. 2024

25살에 깨달은 것

3편_주어진 것들 ;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내 인생의 목표는 너와의 현상 유지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로 가득한 세상에서, 지금을 유지하고 싶다고 외치는 주인공의 고백은 참 고결했다. 그리고그 한 마디는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모두가 꿈꾸지만, 저마다 다른 이유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형태를 바꿔가는 고결한 마음가짐이 내 안에는 어떻게 남아 있는지 들여다보게 한다.



그전에 모두가 꿈꾸는지 궁금하다. 나와 대화가 잘 통하고, 취향이 같고, 사고의 흐름이 비슷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과의 시간이 심지어 즐겁고 기대가 된다. 내일을 기대하기도 전에 오늘 함께 보내는 시간이 주는 풍성함이 어느새 우리를 내일로 데려다주는 것이다. 



운명을 믿는가. 운명은 찾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가만히 있어도 찾아오는 것일까. 처음 만난 사람과 같은 신발을 신었고, 두 사람의 지갑에는 미처 가지 못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이 똑같이 들어 있고, 좋아하는 음악, 책, 영화가모두 비슷하다. 내가 어느 날 마주친 누군가가 나와 이런 데칼코마니를 이룬다면, 나는 운명으로 받아들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위에 적은 생각들이 남녀 주인공(무기, 키누)의 말, 행동, 배경음악, 시각적인 연출이 되어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왔다. 너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사랑에 관한 것이 아니어도 삶을 살아가면서 누적된 경험들이 형성한 나의 <이상>이, 언젠가 두 주인공처럼 마주하는 <현실> 앞에서 점차 변모해 갈지, 아니면 끝까지발버둥을 치며 다듬어 갈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게 한다. 



한 컷에 천 엔이, 세 컷에 천 엔으로 바뀌었을 때 남자 주인공 무기는 현실과의 타협을 선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키누와 함께하는 삶을 온전히 그려내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 결단을 한다. 그의선택에 그녀는 응원을 하지만, 점차 현실을 살아가며 전에 좋아하던 것들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모습을 볼 때 그녀의 마음에 복잡한 감정이 몰아쳐 온다. 무기는 우리의 현상을 유지하기에는 이 방법이 최선이겠지 생각을 했겠지 싶다.



바쁜 일상에 치여 무기는 생각과 집중을 요하지 않는 것들을 통해 남는 시간을 보낸다. 좋아하는 작가의 발걸음을 따라연재물을 읽어가던 취미는 흐려진 초점으로 같은 모양이 그려진 동그라미를 이어 붙이는 타임 어택 게임으로 바뀌었다. 삶은 책임이고, 욕조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어른의 말을 따라 책임을 지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몇 년이 흘러 삶에 익숙해질 때쯤 즐거움을 찾지 못했는지 점차 그녀와의 대화에서도 생기를 잃어간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헤어짐을 결심한 시점도 비슷했고, 둘의 관계는 끝이 난다.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모이고 모여 두 사람의 삶을 담아낸 만큼, 모든 순간에 정말 많은 생각들이 내 안에 스쳐갔다. 분명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경험에 빗대어 생각을 했다면,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확률적으로 수많은 다양한 해석이 있겠다. 나도 마찬가지로 내 경험에 빗대어 무기의 입장에서 영화를 봤다. 정확히는 무기의 삶을 살고 있는 나를바라보는 키누의 관점을 보려고 애썼다. 



나를 소개한다면 나는 이상적인 사람이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하는데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정말 감사하게도그 이상을 내가 실현해 간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이 내 앞에 주어진다. 나 스스로가 아닌 내게 주위의 모든 환경과 그를 이루는 요소들을 [주어진 것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데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을곁들일 뿐이다. 



무기의 삶에 빗대어 나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모순적이게도 현실에 맞추어 이상을 개정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이상을 보다 마음 편히 이루기 위해 잠시 미뤄두고 현실을 살아가는 내 모습을 키누가 무기를 바라봤던 모습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나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다. 



내게 이상을 이뤄가는 것은 마라톤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완주를 하겠다는 일념 하에 나는 열심히 달린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통해 나는 내가 바라보는 이상을 이뤄가는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진다. 때로는 이상을 이뤄가는 듯한 내 모습에 만족을 하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누군가에게 본이 되어 격려를 하기도 한다. 같이 이상을 이뤄갈 수 있다고 얘기하며 내가 트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갖고 계속 달린다. 키누가 무기를 바라보는 눈빛을 봤을 때, 마치내게 묻는 것 같았다. 



‘이 마라톤은 왜 시작했어? 너는 어느 코스를 달리고 있어?’



<현실>과 <이상>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위에서 바라보면 현실인 것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이상이 될 수 있다. 이둘을 나누는 기준은 거시적으로 봤을 때 문화로 시작을 한다. 간단한 예로, 우리나라는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을 좇아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이상적이다, 낭만적이라고이야기한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고, 너무 보편적이어서 객관적인 사실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시적으로 본다면내게는 예외적이고 변수처럼 여겨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이상이라고 여기지 않아도 되는 현실적인 모습들임을 깨닫는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업으로 삼고 가정을 꾸려온 아버지의 아이는, 아버지를 보며 자신도 하고 싶은 일을 평생 할 수있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지지해주는 아버지를 만난 것이 축복이라고 여기지만,  아이의 할아버지가 어땠는지는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아버지의 모습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아버지가 지켜온 이상이, 아이에게는 당연한 현실일 수 있지만 분명 나이가 들어가며 주변 사람들을보게 되면 본인이 사뭇 다른 현실을 살아간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돌아볼 때 어쩌면 나는 이제껏 현실이라는 마라톤을 달려왔다. 현실을 달림에도 내가 이상적이라고 여길 수 있던것은 내게 [주어진 것들]이 불어 넣어주는 생기가 내가 내 삶을 구성하는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건넨 도움의 손길이 내 삶에는 희망이 가득하다고 생각을 하게 했고, 내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것들이 갈증을 해소해 주는 시원한 생수처럼 나의 삶에 활력을 돋게 했다. 



내 스스로가 의지적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상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닌, 내 삶을 지탱하는 모든 요소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지친 날이면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었다. 달리 말해 나는 이상적인 사람이기 보다, [주어진 것들]을 잘돌아보고 알아보는 사람이다.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내 삶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언제든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듯하다. 



운명이 있겠지, 인연이 있겠지 생각을 하는 것은 결과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이 객관적인 기준을두고 나뉘는 것이 아니듯, 이 또한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영역이다. 그러나 추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사람이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이 한편으로는 모두 상대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다. 정답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정답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어진 것들]을 돌아보며 살아갈 때 마주하는 상황들을 나의 일부라고 여기는 삶이 내가 바라는 삶이겠다. 



영화의 결말은 시간이 흘러 각자 연인과 함께 들린 카페에서 마주치고 서로를 지나가며 돌아보지 않고 흔들었던 손 인사와 함께 각자의 집에서 잠깐 서로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그래도 미련 없이 서로를 응원하며 잘 끝났다고 생각을 하고, 누군가는 그 뒤로 결국 다시 만나지 않을까 생각을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인 이유는 결국 언젠가는 지는 꽃이지만 꽃다발을 받았던 때를 떠올리며 좋은 기억을 회상한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는지는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을 하고 싶다. 내가 누군가에게 꽃다발을 준다는 것은 이 꽃말의 의미를 담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는데 초점을 두고, 꽃다발은 언젠가 시들기 때문에 더 자주 꽃을 챙겨주며 언젠가는 한 지붕 아래서 꽃을 키우는 순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사람이 분명 다시 만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뒤에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대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멈췄다. 이제껏 달려왔던 마라톤을 돌아보며 현실을 살아왔음에도 내가 누렸던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를표한다. 과감하게 이 코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코스를 달려야 하는 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작년 하반기 대학원에 입학한 이후로, 점차 많은 내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기에 이 영화를 통해 확실히 삶을 전보다는 다른 태도로 대해야 함을 안다. 새로운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해 기권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도전해야 한다.



남자 주인공 무기가 이상을 유보하고 현실을 택했던 것도 삶의 일부이고, 나도 지난날 살아온 내 삶을 존중하며 이제는지난날 나의 삶을 [주어진 것들]이라고 표현하며 새로운 시작을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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