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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Dec 08. 2023

픽업 아티스트 말고 픽업 트럭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군대는 세상만사를 다 모아 둔 듯, 정말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집합체라 할 수 있겠다. 제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그로 인해 다른 인격으로 성장한 이들이 모인 곳인데 그럼에도 그들 모두 이것 하나만큼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허세.


그것이 다만 남자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군 간부들 중 종종 보이는 여군들의 허세 또한 남자들의 그것 못지 못하다. 군대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나 보다.


입대 후 나 또한 선임들에게 적잖이 허세를 부렸더랬다. 그 나이 또래들이 으레 그렇듯 내 허세에도 이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는데 사실 그 당시 나는 이성 경험이 거의 전무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가 나가서 누구를 헌팅 해서 놀았다느니 누구와 그렇고 그런 짓을 했다느니, 생에 한 번 겪어보지도 못한 일들을 마치 소설 쓰듯 지어내어 선임들을 즐겁게 하고는 했다. 입대 전 넘치는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이용한 시청각 자료가 꽤 나 도움이 되었다.


일병 때 일이다.

일병 말호봉이라 하면 상병 진급을 눈앞에 두어 마냥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높다고는 할 수 없는. 때문에 아직은 선임들의 말을 우습게 들을 수 없는 애매한 위치의 계급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내 경우에는 일병 말호봉이 되었음에도 분대 내 막내의 위치에 있었기에 타 분대에 속한 동기들보다 그 정도가 더 했다.

명분은 연초에 있던 혹한기 훈련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이었으나 그저 분대 왕고가 중대장을 졸라 받아냈을 뿐인 분대 외박으로 우리 중대 본부 여섯 명은 부대 밖으로 나와 영동 시내로 향했다.


부대 주변에는 영동 대학교가 있었다. 삼 월이었기에 이제 막 개강한 대학교 신입생들과 그들을 이끄는 선배들도 영동 시내에 나와있었다. 우리 분대 여섯은 괜히 들떴다. 들떠봐야 군바리. 결국 피시방에서 하루 종일을 보냈다.


해가 저물고 슬슬 배도 고파져 우리는 피시방을 나섰다. 길거리는 영동 대학교 신입생들로 붐볐다. 오랜만에 보는 또래 여자들이 반가웠으나 그렇다고 시선을 던질 수는 없었다. 우리는 대한민국 카스트 제도 최하위에 속한 군바리였기에.

그때 선임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야, 너 가서 헌팅 해 와.”


이런 문도 같은 선임을 봤나… 싶었다.

외박을 나와서는 서로 말을 놓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기에 나는 반말로 되물었다. 그에 선임이 이렇게 말했다.


“들었잖아. 뭘 되물어. 가서 헌팅 해오라고. 너 잘 한다며. 이거 명령임.”


그 말에 다른 선임들도 내게 기대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평소 부려 놓은 허세들도 있고 또 암만 외박을 나왔다 해도 명령이라고 하니 불복할 수는 없고. 게다가 이 속이 왜 이런지 나 또한 혹시나? 하고 기대가 되었다.

나는 그녀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입을 떼기도 전에 여성분께서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되물었으나 무리의 리더 격으로 보이는 그녀는 단호했다. 그녀는 이제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부대 내에서 부려 놓은 허세라도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군복 상의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며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럼, 번호라도 주시면 안 될까요, 주기 싫으시면 아무 번호라도 손바닥에 적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게 명령이라서요. 사람 한 명 살린다고 생각해 주세요.”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결국 그녀는 한숨 한 번 내쉬고 펜을 건네받아 내 손바닥 위에 번호를 적었다. 나는 감사합니다. 사람 살리신 거예요.라고 말하며 선임들에게 돌아갔다.

기대에 찬 선임들 다섯은 내게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다 같이 노는 건 싫다고 하고 나한테 번호만 주던데?”라고.


2009년 신부동 내 친구들처럼 들뜬 선임들은 와… 오… 하며 제각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전화를 해보자는 둥, 다시 한번 권해 보자는 둥 떠들었다. 나는 헌팅을 명령한 선임을 콕 집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다 괜찮은데 너 하나 때문에 같이 못 놀겠대.라고.



영동 대학교 그분.

딱 10년이 지났네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나 보고 계신다면 그땐 참 감사했습니다. 사람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는 살려 주셨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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