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손글씨 1
철자법도 띄어쓰기도 어렵다고 느끼면서 자꾸만 틀리던
드디어 지워지지 않고 지울 수도 없는 잉크로 글을 쓰기 시작한
책이나 공책 위에 검게 번지는 잉크로 난감했던
짧았던 펜의 시대를 지나 각진 모나미 볼펜을 사용하기 시작한
연필이나 볼펜을 끊임없이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던
정신 사납다고 꾸중하던 선생님에게 볼펜을 빼앗기던
그래도 깊은 습관이 되어 볼펜만 잡으면 자동적으로 돌리던 시절.
그랬던 시절이 지나갔다.
이랬던 시절도 있다.
예쁜 공책으로 만들어진 일기장을 마련하여 꽤 자주 일기를 쓰던
방황하는 자아의 성장과 변화에 놀라면서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학교 공부에 대한 무수한 고민과 계획과 후회가 아롱지던 시절.
짝사랑하던 여학생으로 고달파진 마음을 애써 어루만지던
신에 대한 의심과 성찰, 우정에 대한 다짐과 좌절로 뒤척이던
어느덧 일기장을 가장 중요한 '친구'로 여기게 되었던 시절.
친구에게, 또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공들여 손 편지를 쓰던
친구나 여학생이 보낸 편지를 일기장에 소중하게 간직하던 시절.
그러했던 시절도 지나갔다.